눈꽃 세상에서 생각한 것들 2

자신의 선택을 믿을 권리

by 심루이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엄청 외로워질 때가 있는데 아무것도 쓰지 않는 시절이 그렇다. 내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느낌이랄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혼자여도 외롭지 않을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


일 년에 한 달 정도, 스스로를 몹시 한심하게 여기는 시간이 찾아온다. 삿포로 여행 직전이 그랬다. 그런 시기를 만나면 예전에는 극복하려고 했었다. 지금은 그냥 내버려둔다. 한심과 자책의 끝까지 가본다. 바닥에 닿으면 다시 스스로를 조금 사랑하고 싶어진다는 걸 알아버렸다.


가끔 풍경이 아닌 여행자의 표정을 관찰하며 걷곤 하는데 여행자들은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은 얼굴이다. 여행을 왔으니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혹은 돈을 많이 들였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까. 기대보다 감흥 없는 풍경에서 오는 타격 때문일까.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조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일 수도. 맞아, 여행은 아주 피곤하고 귀찮은 것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은 요상한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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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택을 믿을 권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은 안 해도 괜찮으니까 츠츠루는 자신의 선택을 믿어도 될 권리가 있어. 그 선택이 실수였다거나 설령 실패했더라도 인생을 사는 데에는 의미가 있을 거야.


홋카이도 배경의 넷플릭스 시리즈 <퍼스트러브 하츠코이>에서 엄마 야에가 아들 츠즈루에게 하는 말. 자신의 선택을 믿어도 될 권리가 있어. 힘들었던 한 해, 쉽지 않았던 여행을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하고 싶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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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여름까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아내이자 좋아하는 서비스 대표님이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병명은 낯설었지만 평균 생존기간은 잔인했다. 뇌종양 중 가장 공격적인 형태로 평균 생존 기간 12-14개월. 항암 도중 그분이 출연한 세바시 강연 주제는 '만약 여러분이 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였던가. '내년 여름까지만'이라는 일곱 글자가 선명하게 마음을 두드렸다. 강연에서 그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온 이 문장을 언급했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다.'


여름의 풍경이 쉬이 떠오르지 않는 장소에서 눈보라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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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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