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부지런한 여행자

두 세배 기쁘고 두 세배 슬픈

by 심루이

어떤 예감

아빠가 처음 휘청거린 건 태어나서 처음 양파를 썰던 일흔둘의 어느 무더운 오후였다. 70년을 넘게 살았지만 계란 프라이도 하지 못하는 아빠에게 요리를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하고 조리 교실이란 걸 열었더랬다. 매주 우리 집에서 계란프라이, 카레, 된장찌개 같은 간편한 음식을 함께 만들었는데 칼질을 하던 아빠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중심을 잡지 못했다. 양파가 매워서겠지, 칼질이 서투르니까, 요즘 날씨가 기력 없을만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떤.예.감을 무시하고 그냥 그렇게 넘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예감은 조금씩 발톱을 드러내는 맹수처럼 아빠의 일상을 침범했다. 조금 늦은 깨달음과 두 번의 수술을 거치며 알게 되었다. 마음껏 걸을 수 있는 자유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 유진목 시인이 언젠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젊다는 건 내게 허리와 목과 무릎이 있다는 걸 잊고 사는 거라고.


아빠는 그 사실을 잊고 살 수 있는 시간을 영원히 상실했다.

KakaoTalk_20251221_230129432_02.jpg @홋카이도 후라노

한 끼의 밥

아빠의 외출이 불가능해진 지난여름 이후 우리가 한 일은 매주 주말 무언가를 사들고 부모님을 찾아간 것이다. 그 주에 발견한 제일 맛있는 것을 포장하거나 바지, 헤어 커트 가위, 면도기 등 아빠에게 필요한 각종 물품들을 바리바리 챙겼다. '이게 요즘 제일 핫한 음식이야'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끼니의 배달 의존도가 높아졌기에 배달앱 할인 카드도 발급받았다. 등산, 여행, 공연 등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던 활동들은 모두 사라지고 우리 사이에는 오.로.지 밥이 남았다. '식구'의 원래 뜻,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에 충실한 시간.


당구도, 마라톤도, 모임도 사라진 아빠의 시시한 시간에 우리의 주말 방문은 유일한 낙이 되었다. 아빠의 바람은 더 자주, 더 길게 우리를 보는 것. 부모와 자식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른다. 내 세상의 일주일은 너무나 빨리 사라지고 아빠의 일주일은 한없이 더디다. 아빠가 집에서 혼자 보내는 적막한 시간들을 종종 상상한다. 꽤 마음 아픈 일이다. <늙은 아버지의 나날>이라는 웹툰을 보다가 슬퍼서 창을 닫아버렸다.


평생 처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뒤늦게 여유와 재미를 찾나 했더니 건강을 잃어버리고만 클리셰. 그 진부한 스토리가 우리 집에 찾아오다니, 원망으로 마음이 터질 것 같은 날들이 흐른다. 거대한 두려움이 나를 덮친 후 마음과 행동이 다른 날들이 이어진다. 아빠를 향한 염려와 애정과는 별개로 어떤 말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하면서도 두려워서 전화를 걸지 못한다. 이상한 시간에 걸려 온 전화에 심장이 떨어진다. 아빠가 계단에서 고꾸라져 버린 모습이 백 번이고 눈앞에서 다시 재생된다. 그 장면을 지우고 싶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도리질을 치다 엉엉 울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라리 몰랐으면, 차라리 못 봤으면 하는 일들. 나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다.

홋카이도 비에이 (2).jpg @홋카이도 비에이

다섯 단계와 기록의 힘

엘리자베스 로스가 말한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은 아빠의 병을 받아들이는 나약한 내 마음과도 같다. 아빠의 병을 발견한 처음, 이제 더 이상 아빠가 예전처럼 걸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했다. 매주 주말 아빠를 부르며 친정 문을 열 때마다 아빠가 예전처럼 빠르게 걸어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어김없이 실망했다. 평생을 건강에 신경 쓴 아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분노했다. 괜찮아질 거야, 낙관 후에 찾아온 건 우울과 무기력함이었다. 친정에서 매주 한 끼의 식사를 하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고작 두세 시간이 주는 상당한 타격감. 아픈 아빠는 아무 죄가 없다. 모두 다섯 단계를 거치는 내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어느 하루, 어떤 기대와 어떤 불안감이 닻을 풀고 떠나가는 배처럼 한순간에 멀어진다. 다섯 번째 단계인 '수용'에 진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미래의 내가 말을 걸었는지도.


일본 에세이스트 제인수가 병든 아버지를 돌보면서 쓴 에세이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아버지는 오각형 주사위 같았다. 나는 그중에서 ‘아버지’라는 면만 보고 싶은데 불안정한 오각형 주사위는 ‘아버지’로서의 일면은 잠시만 보여 주고 금방 다른 면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부모의 오각형 주사위를 곁에 둔다. 아빠는 내게 무뚝뚝하지만 점잖고 상식적인 아빠였는데 주사위는 자꾸 다른 면으로 넘어간다. 철부지 어린아이라든가, 대접만 받고 배려를 잃은 노인이라든가. 제일 화가 나는 건 수발드는 엄마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다. 육체의 병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순간순간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싹튼다.


종종 젊은 날의 아빠 사진과 아빠가 써 준 따뜻한 편지를 찾아본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우뚝 서 있던 그때의 아빠를. 나를 향했던 아빠의 눈부신 소망들을. 그러면서 아빠를 미워하지 않을 힘을 찾는다. 기록은 이미 약간의 슬픔으로 물들어버린 나를 버티게 한다.


그런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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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부지런한 여행자

아이와 처음 여행했을 때 나는 두 개의 눈을 갖게 되었다. 나라면 멈추지 않았을 풍경에 오래 머물렀다. 땅 위의 작은 꽃, 당근을 먹는 토끼의 오물거리는 입, 그네를 타며 바라보는 수평선 같은 것들. 아이의 눈으로 익숙한 세상의 낯선 모습을 수없이 다시 발견한다.


아빠의 세상이 한없이 좁아진 이후 나는 아빠의 눈으로도 여행을 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 앞에 멈춰 서서 부지런하게 카메라에 담아 본다. 영상도 열심히 찍는다. 결과물은 고스란히 가족 단체톡방으로 전달된다. 마라톤 풀코스를 몇 번이나 완주하고 하루에 2만 보씩 걷던 아빠는 이제 작은 서재에 앉아 우리 사진을 보며 간접 여행을 한다. 나는 죄책감과 슬픔은 깊숙이 넣어 두고 더 밝게 웃는다. 할 수 없는 것을 잊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고 조금 더 부지런한 여행자가 된다. 하루가 끝나기 전에 오늘의 홋카이도 풍경을 서둘러 배달한다.


아빠는 별다른 답이 없다. 나는 아빠가 무슨 생각으로 그 사진들을 보는지 모른다. 웃는 우리를 보며 즐거워할지, 다시는 타지 못할 비행기를 생각하며 슬퍼할지. 아빠도 어떤 마음으로 내가 그 길들을 걷는지 모를 것이다. 우리 사이에는 아주 깊은 강이 흐르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안다. 다른 이의 눈과 마음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드물게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 우리는 한 때 모두 어린아이였고 지금도 비슷하다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아질 때가 오겠지. 그때 덜 슬프고 싶어서 오늘 더 반짝이기로 한다. 나는 부지런히 두 세배 기쁘고 두 세배 슬픈 여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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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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