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한 권으로 일궈 낸 꿈의 위스키

닛카 위스키로 마감하는 하루

by 심루이

닛카 위스키의 시작

삿포로에 가면 모두 이 분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바로 스스키노에서 만날 수 있는 위스키의 왕, 닛카상.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 마사타카가 만든 닛카 위스키는 산토리와 더불어 일본 위스키의 양대 산맥이다. 100년도 훨씬 전인 1918년, 당시 24세였던 다케쓰루는 진짜 위스키를 배우기 위해 홀로 스코틀랜드로 떠난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여러 증류소를 돌며 허드렛일을 자처했고, 그때마다 수첩에 증류기 구조, 온도 변화, 숙성 방식 등을 빼곡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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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 '리타'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이 수첩을 기반 삼아 자신만의 위스키에 도전한다. 그것이 바로 닛카 위스키의 시작. 당시 다케쓰루는 좋은 위스키를 만들 장소를 찾기 위해 전국을 탐험했고 홋카이도의 '요이치(余市)'를 최종 선택했다. 서늘한 기후와 적당한 습도, 그리고 투명한 공기가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와 가장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위스키로 수익을 낼 수 없었던 다케쓰루는 위스키를 계속 만들기 위해 홋카이도의 명물 사과를 이용해 사과즙을 팔면서 버티다 결국 세계인이 사랑하는 위스키를 만들어낸다. 닛카의 원래 이름은 '대일본과즙주식회사(大日本果汁株式会社)'였고 여기서 '일(日)'과 '과(果)'를 따서 오늘날의 브랜드명인 '닛카(NIKKA)'가 탄생했다.


이 서사에는 여러 가지 감동적인 부분이 있는데

- 다케쓰루가 위스키를 배우러 스코틀랜드로 떠난 시점이 1918년이었다는 것. (1918년이라는 시대가 주는 생경함에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네요?)

-그 시절 리타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으로 사랑을 쫓아왔다는 점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기간 동안 수익이 없자 사과즙을 팔면서 버틴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는 점. 리타 또한 영어와 피아노를 가르치며 남편의 꿈을 지탱해 줬다는 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인이었던 리타는 일본 내에서 '스파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감시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다케쓰루의 곁을 지켰다. (이 커플의 이야기는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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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카 요이치 증류소

삿포로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요이치 증류소가 있다. 붉은 지붕의 석조 건물이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운 이 증류소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증류기에 직접 석탄을 넣어 가열하는 석탄 직화 증류 방식을 고집해 강렬하고 정직한 탄 맛을 낸다. 요이치의 추운 겨울은 위스키의 증발을 늦춰 닛카 위스키는 서서히, 그러나 아주 깊게 숙성된다. 하루키는 말했다. '요이치 위스키에는 대지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그에 따르면 요이치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의 위스키와 닮았으면서도, 어딘가 더 곧고 정직한 느낌을 준다.


산토리가 '대중의 입맛에 맞는 세련된 위스키'를 지향한다면, 닛카는 '스코틀랜드보다 더 스코틀랜드다운 원초적인 위스키'를 고집한다. 홋카이도 추위를 녹여 줄 추천 닛카 위스키.


닛카 추천 위스키.

-싱글 몰트 요이치(Yoichi): 힘차고 훈연 향이 강하다. 홋카이도의 추위를 견디다 마시면 몸이 뜨겁게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

-블랙 닛카(Black Nikka): 니카상이 그려진 대중적인 위스키로,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기 좋다.

-다케쓰루 위스키(Taketsuru Pure Malt): 닛카의 대표 라인업으로, 설립자의 이름을 내건 만큼 밸런스가 훌륭하다.


무료로 즐기는 증류소 가이드 투어나 증류소 견학과 식사(레스토랑 RITA’S KITCHEN)가 세트로 된 투어 등 다양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미리 홈페이지를 꼼꼼하게 확인하자.

https://distillery.nikka.com/yoichi/re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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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위스키를 사랑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제안하는 위스키 페어링를 살펴보자


-굴과 위스키: 싱싱한 생굴 위에 레몬즙 대신 위스키를 듬뿍 뿌려 먹는다. 굴의 크리미하고 비릿한 바다 내음이 요이치 특유의 강렬한 숯 향과 만나면 비린내는 사라지고 단맛과 감칠맛이 극대화된다.

-각종 훈제 음식: 요이치 위스키는 석탄으로 증류하기 때문에 특유의 '탄 냄새'가 강하다. 여기에 훈제 연어, 훈제 치즈, 훈제 베이컨 등 훈제된 음식을 곁들이면 향이 층층이 쌓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견과류: 피스타치오나 캐슈넛 같은 견과류를 곁들이는데, 견과류의 기름진 맛이 위스키의 높은 알코올 도수를 부드럽게 감싸주기 때문

-다크 초콜릿: 카카오 함량 70% 이상인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 위스키 한 모금을 머금고 초콜릿을 천천히 녹이면, 위스키 속에 숨어있던 바닐라 향과 과일 향이 폭발적으로 살아난다.


홋카이도에서 닛카 위스키를 마시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문장을 떠올려보자.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이토록 고생하며 말을 내뱉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것을 받아 마시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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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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