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저우(通州) 송좡(宋庄)미술관에서
예술은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그가 건네주는 답은 결정적이다. 예술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성취할 수 있다. 즉 사랑하는 대상이 떠난 후에도 계속 그 대상들을 붙잡아 둘 수 있다.
알래 드 보통, 영혼의 미술관
늦가을의 베이징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보려 통조우(通州) 송좡(宋庄) 예술촌에 가보기로 했다. 통조우는 베이징 동쪽 외곽 지역으로 내년 5월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생기는 장소다.
송좡 예술촌은 대표적인 화가 거주촌으로 다산즈 798의 임대료가 높아지며 많은 화가들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현재 다양한 갤러리들뿐 아니라 작가들의 개인 작업실도 많다고 한다. 우리가 찾은 곳은 ‘송좡미술관 (宋庄美术馆)'. 2006년 설립 후 국내외 다양한 현대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실내 전시장 높이가 16m(중국 미술관 실내 높이로는 최고 수준)로 들어가자마자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다.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새하얀 계단도 인상적.
-현재 1층에서는 '공공매체에서 다뤄진 현대 미술'을, 2층에서는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当代艺术陈列展’가 열리고 있다.
-10-18시 무료 관람 가능
-주소: 北京市通州区宋庄艺术园区甲2号
공공매체에서 다뤄진 현대 미술
2층 <当代艺术陈列展>에서 본격적인 작품 감상 시작
이 계단으로 내려가니 1층 카페 근처에서도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다.
그리고 ‘웨민쥔’의 작품 2점을 만났다.
중국 흑룡강성 출신의 62년생 웨민쥔(岳敏君)은 장샤오강, 왕강이, 팡리쥔과 함께 ‘현대 미술의 4대 천왕’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작품 ‘처형’은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 달러(60억 상당)에 팔렸는데 이는 중국 현대 미술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한 기록이었다.
그간 798 예술구나 팡차오디 쇼핑몰, 금일 미술관 앞을 지나가다 그의 조형 작품들을 봤고, 워낙 유명한 작품들과 캐릭터이다 보니 오며 가며 다양한 이미지, 상품들로 마주쳤었지만, 갤러리에서 실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워낙 익숙한 작품이라 큰 감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거대하고 낯선 공간의 갤러리에서 마주하니 역시나 진품만이 내뿜을 수 있는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베냐민이 이야기했던 '예술작품이 위치하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지니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일지도.
내 생각 속의 웨민쥔은 ‘자신을 모델로 삼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되게 웃는 사람’을 그리는 유명한 화가 정도였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을 읽기 전까지는.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듯한 부자유스러움과 어색함이 숨어 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아무 생각도 없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곧 내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나아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낸 채 눈을 감고 비현실적으로 크게 웃는 캐릭터를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단순한 웃음이 아닐 것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바보'라는 다소 격한 표현과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누군가의 슬픈 자화상’이라니…
이후 다른 각도에서 웃음을 살펴보니 역시 슬픔,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굉장히 역설적이고 반항적인 그런 웃음이었다.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가 배경음악으로 깔려야만 할 것 같은 느낌.
한 평론가는 이를 ‘냉소적 리얼리즘’이라고 명했다. ‘중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작가 자신의 풍자와 탄핵, 집단화에 대한 거부의 몸짓으로 웃음의 역설을 보여준다. 문화 혁명 시기에 겪었던 고통과 개방에 대한 희열, 미래에 대한 공포와 긴장감 또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집단주의, 공산주의의 중국 사회에서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건 어떤 고뇌가 필요한 일일까?하는 생각도 문득.
하지만 웨민쥔은 자신의 그림에 대한 각자의 해석의 문 또한 충분히 열어두었다.
만약 내 그림 속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면 그건 감상자가 행복하기 때문 아닐까? 고독하거나 허무하게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중 어느 것도 오독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다.
웨민쥔의 작품은 웃음 시리즈-장면 시리즈-미궁 시리즈로 이어지며 최근에는 꽃과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웨민진 전시 ‘한 시대를 웃다’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 3월 28일까지/오전 10-오후 7시)
https://yueminjunexhibition.modoo.at/?link=6l8acnmq
국내 최초로 열리는 웨민진의 대규모 전시인데다 2020년 새로운 신작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관심이 있으시면 둘러봐도 좋겠다.
생각해보면 미술관에 드나들었던 적이 없었다. 한때 미대를 가고 싶었을 만큼 무언가를 만들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대학 졸업 이후로 늘 '먹고사니즘'에 바빠서 미술관에 가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졌다. 이후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내게 분기 행사 아니 연례 행사처럼 진행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작품들을 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미술사도, 화가에 대해서도 이렇게 정보가 부족한데 그림만 본다고 내가 뭘 알겠어?’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며 활자와 매우 가깝고, 그림과 아주 먼 삶을 살았다.
베이징의 가을은 내게 누군가의 그림을 특별한 지식이나 별다른 목적 없이 오래 바라봐도 된다고 다독여 준다. 화가가 하나의 작품에 담은 이야기들을 내 멋대로 상상하고 지어내도 괜찮다고, 그 어떤 해석과 감정도 '오독'이 아니며, 나의 짧은 지식을 아무도 탓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외국 작가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보고, 언젠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나와 우리를 생각하는 것이다.
먹고사니즘과 예술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정말로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사치인가?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커트 보니컷이 말했듯 예술은 어쩌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그것들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전해줄지도 모른다. 마음속의 절벽을 그리던 격리 기간에 한 권의 책이 나를 살게 했듯, 나는 이 시간들로 아주 오래 견딜 것이다.
#베이징에서_beijinger/생활여행자로_매일_열심히_걷고_먹고_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