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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Feb 01. 2021

집 좀 꾸며보려다 죽을뻔한 날


이사를 했다. 처음에 집을 보러 갔을 땐 집의 전체적인 구조, 채광, 곰팡이 여부, 장판과 벽지 상태, 수압 이 정도만 빠르게 체크했다. 아무리 이사를 목적으로 내놓은 집이라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고 생판 남의 집에 오래 머무는 것은 왠지 불편했다. 그 집은 해가 잘 들어 좋았고 역과 가까운 위치도, 비교적 큼직큼직한 방들도 맘에 들었다. 이만하면 괜찮다 싶었다. 계약 후 한 달쯤 지나 이사를 했다. 아, 이사란 정말. 할 때마다 큰 숙제를 마치는 기분이다. 반포장도 해보았고 포장도 해보았지만 신경 쓰이고 피곤하기는 매한가지. 내 집 마련하기 전까진 어쩔 수 없다지만 참, 어쩔 수 없이 싫고 피곤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동생과 둘이 살기에 각자의 방을 정해 짐을 풀었다. 나는 거창하진 않더라도 방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방 안의 가구들이 조화롭게 어울렸으면 하고, 침구는 포근한 느낌을 줬으면, 커튼은 귀여우면서도 밝은 느낌을 줬으면, 조명은 앞서 말한 것들이 모두 어우러진 공간에 보다 은은한 분위기를 더해줬으면 한다. 지금껏 여러 차례 이사를 하고 여러 번 내 공간을 꾸며온 결과, 나는 앞의 세 가지 소망들은 얼추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으나 여전히 두려움이 발목을 잡아 차마 손대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명이다. 정확히는 천장 조명. 사서 전원만 연결하면 되는 스탠딩 조명이나 사이드 조명은 어려울 게 없었다. 문제는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을 때 시야에 가장 잘 들어오고, 화장대 거울을 볼 때도 괜히 신경 쓰여서 한 번 더 올려다보게 되는, 방 인테리어를 해치는 주범인 그 이름 천장 조명이다.      


이전 집들은 그래도 우리 이전 세입자들이 어느 정도 천장 조명에 심미적 의의를 두었던 것인지 아주 대단히 예쁘지는 않더라도 괴상망측까지는 아닌, 적당히 깔끔하다 정도에서 합의를 본 조명들이어서 그렇게까지 못살겠다 싶지는 않았다. 대충 안 보이는 척, 봐도 못 본 척하고 살다 보면 전세 계약 2년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 온 집 천장 등은, 정확히는 내 방 천장 등은 흡사 무슨 보름달마냥 둥글 납작한 게 지름이 족히 50cm는 될 만큼 쓸데없이 컸고, 무릇 생명체들과 비생명체들이 그렇듯 이 천장 등 역시 세월을 비껴가지 못해 누렇게 변색되었으며 화룡점정으로 등 안에 이미 진즉에 운명해버린 불나방 같은 날파리들의 사체까지 가득했다. 지금 이렇게 글로 쓰면서도 소름이 올라올 지경인데, 이 것을 직접 눈으로 마주했을 당시 나는 거의 까무러쳤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이 조명과는 못 산다. 이건 대충 안 보이는 척도, 봐도 못 본 척도 안 된다고!     



보름달 조명(심히 좋게 말해서) 때문에 여기가 응답하라 1988인지 어딘지, 시대착오가 올 정도로 충격을 받은 나는 머리가 다 지끈했다. 당장 모조리 떼다 버리고 싶었지만 이사로 아침 8시부터 난리 법석을 떨었던 터라 체력이 방전되어 겨우겨우 보름달 조명 전등갓만 제거한 뒤 눈을 질끈 감고 잠든 나는 다음날 해가 뜨기가 무섭게 셀프 인테리어 소품들을 한 데 모아 파는 가게를 찾았다. 그 순간만은 백수임에 감사했다.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출근하느라 다음 휴무까지 이 끔찍한 보름달을 며칠이고 참아야 했을 것이다. 천장 조명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없었지만, 무엇을 사온들 보름달보다는 낫겠지 싶어 일단 무작정 가게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인테리어 사진들을 훑어보니 반원 형태의 라탄 전등갓을 씌운 천장 조명이 예뻐 보였다. 카페 느낌도 나고. 그래, 이걸로 정했다.     


전선이라든지, 공구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 배운 것은 바야흐로 중고등학교 기술가정 시간. ‘바야흐로’라는 단어를 썼으니 이게 족히 10년도 더 지난 일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인즉, 그 당시 무엇을 배웠던 간에 지금 내 머리에 남아있을 가능성이라고는 없다는 것이다. 뭐, 전기에 대한 것이니 전선이 있겠지. 정도만 알고 있던 상태라면 이 분야에 대한 내 지식수준이 설명되려나. 부끄럽지만 그렇다. 일단 나에게 없는 것은 전구와 라탄 전등갓이었다. 이 둘만 사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천장에 연결할 전선이나, 그 외 부가적인 재료들을 사야 한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은은한 주황빛의 전구를 찾았다. 라탄 전등갓은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주문할 계획이었다. 계산을 하면서 직원에게 내가 원하는 느낌의 인테리어 사진을 보여주며 이 전구 사서 전등갓 사다 끼우면 얼추 이런 느낌이 나겠죠? 했다. 네, 그러면 될 것 같네요. 정도의 답을 기대했는데, 천장에서 내려오는 전선이 길다면 가능하겠죠? 그런데 이런 느낌 내려면 천장 전선을 잘라내고 인테리어용 꽈배기 전선 같은 걸 사다가 연결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전구만 사면 연결 못하니까 소켓도 필요하고요 라는, 머리에 한 번에 입력조차 되지 않는 데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답변이 돌아왔다. 네? 천장 전선이요? 잘라요? 꽈배기 전선이요? 소켓? 죄송하지만 그게 다 뭐고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라고, 돌아온 답변의 모든 부분에 대해 다시 묻자 직원은 도저히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하나하나 답변을 이어갔다. 직원 말에 의하면, 천장에 이미 매립되어 있는 전선은 말 그대로 그냥 전선이란다. 사진 속 전선을 잘 보면 갈색 밧줄이 꽈배기처럼 전선 밖을 감싸고 있는데 그런 전선을 또 따로 판단다. 그걸 사다가 천장 전선과 연결하면 되는데 천장 전선은 말 그대로 전선이라 안 예쁘니 가급적 밖에 삐져나오지 않게 짧게 잘라 연결하란다. 여기서 나의 추가 질문, 전선 껍질 안에 그 구릿빛 선 같은 것들을 꼬아서 연결하면 되는 거죠? 그럼 껍질을 갈라서 구릿빛 전선들을 꺼내야 하는 거예요? 아휴, 당연하단다. 작업 도구도 팔고 있단다. 다 연결한 후에는 절연테이프로 감아서 마무리하면 된단다. 그리고 소켓이 있어야 전선과 전구 연결이 가능한데 아예 전선이랑 소켓이 연결되어 같이 나오는 게 있으니 잘 모르면 차라리 그걸 사란다. 동대문 한복판에서 천사를 만났다. 소켓이 연결된 꽈배기 전선과 전선 껍질을 가를 니퍼, 절연테이프를 추가로 구입 후 연신 감사하다 인사하며 가게를 나왔다. 직원은 과연 저 인간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눈초리였다.     


집에 돌아와 우선 천장에 남아있는 전구와 전구를 고정시키기 위해 달려있는 철조물들을 전부 제거했다. 그리고 직원이 말한 그 천장 매립 전선들을 찾아냈는데, 과연 말 그대로 그냥 전선일 뿐이라 전혀 보기 좋지 않았다. 채도 높은 초록색과 파랑색 피복이 속 안의 구릿빛 선들을 감싸고 있었다. 직원의 말대로 이 원색의 전선들은 천장 안에만 있는 것이 미관상 보기 좋겠다. 전선들을 짧게 자른 뒤 니퍼로 초록, 파랑 피복을 벗겨냈다. 의자에 발을 딛고 올라서서 받침대도 없이 공중에 팔을 들어 올린 채로 천장에서 내려오는 전선 피복을 갈라 구릿빛 선들을 빼내는 것은 과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목에 이미 담이 조금 온 것도 같았다. 내 자신이 워낙 엄살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담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실제로는 오지 않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작업을 이어갔다. 한참을 허공에서 허우적대며 파랑색, 초록색 피복을 약 2cm 정도 벗겨냈다.      



그런데 문득 이 순간 굳이 뇌리를 스치는 초딩 시절 전구 실험의 기억. 과학 시간이었다. 전선의 한쪽 끝을 전구에, 나머지 끝을 전지의 플러스극에, 또 다른 전선 역시 한쪽 끝을 전구에, 나머지 끝을 전지의 마이너스극에 연결했다. 마지막 연결을 끝마치자마자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갑자기 떠오른 이 밑도 끝도 없는 기억으로 인해 생각이 이상한 곳으로 번졌다. 지금 내가 씨름하고 있는 이 전선의 한쪽 끝은 이미 전지, 즉 전기에 연결되어 있는 셈이니 방금 피복을 벗겨낸 나머지 끝을 전구에 연결하면 불이 켜지지 않을까? 무식하고 무모하면 참을성이라도 있어야 하거늘 그 순간 나는 왜 그토록 새로 사 온 전구의 성능을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인지. 소켓이 있어야 전선과 전구를 연결할 수 있다는 인테리어 가게 직원의 말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마침 절연테이프도 사뒀겠다 피복을 벗겨낸 구릿빛 선들을 전구 끝에 대고 절연테이프로 칭칭 감은 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천장 조명 스위치를 켜보았다. 여기서 무언가 허전함이 느껴졌다면, 아마 조명 스위치를 켜기에 앞서 다시 두꺼비집을 올렸다는 언급이 없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맨손으로 전선 피복을 가르고 벗기는 난리 부르스를 치기에 앞서 두꺼비집 전원도 차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스스로도 도대체 왜 그런 것이냐고 묻고 싶을 만큼 황당하지만 변명을 조금 해보자면 그래도 조명 스위치를 꺼둔 상태였기 때문에 전기가 당연히, 절대 흐르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고 그래서 전기 작업을 하기 전 두꺼비집 전원을 차단해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에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다. 민망하다. 아무튼, 무지에서 비롯된 무모함을 실천에 옮긴 결과 조명 스위치를 켜기가 무섭게 풍선 터지는 정도의 데시벨로 ‘펑’ 소리가 나더니, 두꺼비집이 저절로 차단되어 버렸다. 가슴이 철렁하게 놀랐다. 마찬가지로 놀란 동생이 방에서 나와 언니 지금 뭐 한 거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심지어 두꺼비집 차단하는 것도 깜빡했다고 밝히자 진짜 돌았네. 뉴스에 30대 백수 셀프 인테리어 하던 도중 감전사했다고 나올 뻔했네. 했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죽기엔 다소 쪽팔린 이유다.      


만약 운이 나빴더라면 동생은 울며불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엄마, 언니 지금 응급실 실려가.. 전신화상이래.. 엄마는 무슨 일이냐고 물을 것이고 동생은 머뭇머뭇거리다가 집 조명 마음에 안 든다고.. 예쁜 것 아니면 싫다고 직접 바꾸다가.. 두꺼비집도 안 내리고.. 엄마 뒷목 잡고 쓰러지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젊은 나이에 앓고 있던 병이 있었나 봐? 쯧쯔. 그건 아니라지 아마, 들어보니까 무슨 셀프 인테리어 한답시고 천장을 갈아엎고 난리를 쳤디야. 아이고 아녀, 전선 갖다가 뭐시기 하는데 두꺼비집도 안 내리고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갖다가 했다나 보네 그래.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창피해서 상상은 이만 여기서 접어야겠다.     


놀란 가슴을 가다듬고 두꺼비집이 차단된 상태 그대로 천장 전선과 꽈배기 전선을 연결한 뒤 그 위를 절연테이프로 칭칭 열심히 둘러 감았다. 사고는 한 번이면 족했다. 그나저나 아까 펑 소리 날 때 전구 필라멘트도 터진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전구를 목숨 값과 바꾼 셈 쳐야겠다. 다분히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두꺼비집을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펑 소리가 날까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조명 스위치를 켰다. 짜잔. 전구가 은은한 주황빛을 발했다. 성공이다. 하마터면 죽을 뻔하긴 했지만.


라탄 전등갓은 약 일주일 뒤에 도착했다. 이 난리 법석을 피우며 완성한 천장 조명은, 전구의 주황빛이 야속하게도 눈을 금세 피로하게 만들어 웬만하면 켜지 않고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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