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다.
어머니는 항상 바쁘셨다. 소풍이나 운동회를 하는 날은 10번 중 8번 꼴로 유부초밥을 해주셨다. 햇볕이 쨍쨍한 수풀 속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도시락에서 김밥을 꺼냈다. 서로서로 각자의 음식들을 다들 아이들과 교환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내 유부초밥은 인기가 좋았다. 일단 맛있었고 희소했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자기들의 김밥을 어필하며 나의 초밥과 교환하려고 했다. 애들의 김밥은 얼핏 비슷해 보이면서도 달랐다. 시금치가 든 김밥, 김치가 든 김밥, 흑미로 만든 김밥, 고기가 들어간 김밥 등등 그들의 김밥에는 각자의 개성이 담겨있었다. 반면 내 유부초밥은 단순했다. 유부와 흰밥, 끝이었다. 분명 다채롭거나 특별한 재료는 없지만 유부초밥은 그 자체로 특별했다. 왜 특별하냐고? 제일 맛있기 때문이다. 단점은 내 초밥을 애들과 다 교환하고 나는 상대적으로 맛이 없는 김밥들을 먹게 된다는 점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여전히 내 소풍 점심은 유부초밥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도시락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에서 부모님의 애틋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예쁘게 정렬된 김밥에 포도나 토마토 등의 과일까지 한 폭의 작품처럼 만들어진 도시락들이 많았다. 문득 그들이 부러웠다.
물론 늘 먹던 초밥에도 우리 엄마의 무한한 사랑이 담겨있다는 걸 지금은 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냥 서글펐다. ‘왜 나는 항상 초밥만 먹어야 하지?’ ‘나도 다른 애들처럼 눈에 안 띄더라도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들고 다니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암세포처럼 빠르게 내 자존감 안으로 퍼져나갔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유부초밥은 가난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남들 앞에서 내 도시락을 꺼내기 창피해 가장 구석자리에서 먹곤 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은 내 유부초밥을 탐냈다.
“오 초밥이네? 나랑 바꿔먹자.” 순수한 호기심으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귀에는 ‘너 가난하구나, 또 초밥이네? 내 김밥이랑 하나 바꿔줄게.’처럼 들렸다. 열등감은 커져갔고 초밥을 점점 싫어하게 됐다. 맛 따윈 중요하진 않았다. 맛없더라도 조금 더 성의 있는 도시락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한테 이제 김밥만 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집안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어느덧 성인이 되고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몇 주 전 엄마가 오랜만에 유부초밥을 해주셨다. 한 입을 먹는 순간 밥의 텐션과 유부의 촉촉함이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진짜 맛있었다. 엄마에게 이 맛의 비결이 뭐냐고 농담 삼아 여쭤봤다.
“정성이지.” 이렇게 짧게 말하고 부엌으로 가셔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셨다. 그 순간 어릴 적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나를 덮쳐왔다. 울컥했다. 요즘 엄마를 보고 있으면 자주 눈가가 촉촉해진다. 문득 엄마의 키가 더 작아 보였고 주름은 더 자글자글해 보였다.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던 카리스마 있던 그녀는 이제는 나에게 부탁을 하신다. 싫다고 귀찮다고 거절하다가 결국 심부름을 하는 날이면 엄마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신다.
나에겐 유부초밥이 더 맛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 맛을 제대로 믿지 못했지만 이제는 더 깊고 진하게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