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쓰고 생각하고 No.1
인생에서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을 한마디로 하자면 그건 아마도 자기실현일 것이다. 내가 타고난 재능을 십분 발휘해 세상에 작은 울림을 만들 수 있고 그 울림으로 단 하나의 삶에라도 희망을 만드는 일. 거창하게도 감히 그런 것을 꿈꾼다. 이상과 현실이 합일되기까지 뛰어넘어야 하는 산은 많다. 세상 모지리 짓을 하는 나의 일상은 자기실현 언감생심? 하며 나를 움츠러들게 하기도 하지만, 부여받은 생을 잘 가꿔 보기 좋은 반열에 올려두고 싶은 소망은 언제나 여전하다.
깨달음. 열반. 알아차림. 십 대 시절 그런 불교의 언어들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막연한 욕심을 냈다. 종교는 가톨릭이면서도 스님을 꿈꾸던 작가 최인호처럼 나도 가톨릭이면서 불교를 좋아한다. 그의 책 '길 없는 길'을 좋아했고 자연히 깨달음에 대한 환상도 생겼다. '대오각성 후에는 머리가 밝아지고 번뇌에서도 초월하고 매사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가? 매트릭스 네오처럼 날아오는 총알도 잡을 수 있는 건가? ㅎㅎ‘ 어린애의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기실현이나 깨달음에 닿아있는 것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신화의 영웅, 전설의 영웅, 이야기 속의 영웅뿐 아니라 현대의 영웅인 스포츠 스타, 위대한 석학, 성공한 기업가, 음악가, 작가, 우리 곁의 작은 영웅들.... 그들 모두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인터뷰 기사 같은 것을 좋아한다. 이 책도 어느 날 그런 맥락에서 만나게 됐다. 신화, 비교 종교학의 대부인 조지프 캠벨은 전 세계의 신화와 종교를 연구하고 통달해 자기만의 해석으로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화부터 성경까지 그의 세계는 방대하고 통찰력으로 넘쳐난다.
특히 영웅의 여정을 - 소명을 얻고 출발, 시련의 길로 입문 및 조력자의 출현, 선약을 구하고 위기 극복 후 귀환. - 같은 간단한 사이클로 정리했는데 오늘날 이 사이클은 거의 모든 이야기의 근간이 되어 시나리오 작법 등에 사용된다. 실제로 디즈니의 모든 이야기는 철저하게 이 공식 위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캠벨은 이야기의 양태가 달라도 인간 집단이 그려낸 영웅 신화는 일정한 형태를 갖는다고 주장하는데 말하자면 영웅이란 자기 근원적 존재를 발견한 자 라는 것이며 자기 본성 속에 내재된 힘을 깨닫고 기존 자아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자아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 라는 것이다.
깨달은 소명을 따르고, 기꺼이 시련에 뛰어들고, 성취를 나누고, 자만을 경계하며 마침내 도달할 곳에 도달해 자유를 얻는 여정, 영웅의 이야기는 언제나 영감을 준다. 나도 내 삶의 영웅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의 제언처럼 우리 시대 영웅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튼튼한 사람이 되기를.
개인적으로 캠벨이 미국에서 드문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불교에 정통했고 이 책의 내용이 다분히 불교적이라는 것에 놀라고 동질감도 느꼈는데. 특히 관세음보살 신화는 기억하고 싶었다. 부처의 스승인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열반에 들기조차 포기하고 보살에 머물렀다. 열반과 속세의 경계마저도 허무는 영웅의 경지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멋졌다. 그동안은 깨달음도 틀 안에서만 생각했는데,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알게 될 때 곧 여래를 보리라던 말씀이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어쩌면 깨달음보다 사랑에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 대목 남기며 이 책과의 한 달을 떠나보내려 한다. 다음 책은 무엇으로 할까, 느릿한 독서가 책거리하는 날, 행복한 고민이다.
P.414 이 다채로운 쿠훌린의 모험에서, 가장 웅변적이고 가장 극적인 것은, 바퀴와 사과가 구르면서 영웅에게 내어주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길이다. 이것은 운명적인 기적의 상징이며 교훈으로 해독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대한 감상에 현혹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본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니체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 구르는 바퀴"인 사람) 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