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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손이 Jan 18. 2023

Lean In

보고 쓰고 생각하고 No.3


2013년에 출간된 셰릴 샌드버그의 린인을 2014년에 구입했는데 그땐 어쩐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분주하게 지내던 20대의 끝자락, 아직 미혼이었던 내게 여성이자 워킹맘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글을 거쳐 페이스북의 이인자가 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의 경험과 제언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10년 세월이 지나고 그녀는 이제 '메타'가 된 '페이스북'을 떠나 자선과 재단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셰릴의 눈부신 성과였던 페이스북은 딜레마에 빠졌고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으며 책에 등장하는 평생의 사랑이자 완벽한 그녀의 편이던 남편 '데이브'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 천재적인 행정가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화목한 가정까지 꾸려가던 그녀, 차기 부통령으로 점쳐지기도 했던 셰릴의 인생에도 마침내 쉼표가 찍혔던 모양이다. 세계에서 제일 성공한 멋진 여성 리더에게도 인생은 전망할 수 없는 미궁이다.


어쨌든 책을 쓰던 2013년의 셰릴은 젊고 에너지가 넘쳤다. 리더로서 왕관의 무게도 짊어졌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치열한 세계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은 그녀는 여성들에게 기회로 뛰어들라고 말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뒷전에 앉아 쭈뼛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테이블에 앉으라고 말하는 그녀는 아쉽더라도 여성에게 씌워진 편견을 이해하고 현명하게 자기주장을 하라고 귀띔해 준다.


10년 전이라 그런 건지 미국의 현실도 우리와 많이 비슷했다. 셰릴은 직원들을 거실로 불러 모유수유를 하며 회의를 하고, 출산 휴가 3개월을 쉬는 둥 마는 둥 마친 뒤, 아이를 떼어 놓고 출근하는 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업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5시 반에 일어나 일하고 수유 후 출근한 뒤 퇴근해서 아이를 재우고 재택근무를 했다. 때로는 연기까지 하며 회사일에 전념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여느 인터뷰에서 본 우리나라 여성 임원들의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해 조금 놀랐다. 동서고금 여성 리더의 삶은 왜이리 지난한가.


그녀는 여성이라고 해서 눈치 보며 살지 말자고 한다. 당당한 워킹맘도 자기 일만 잘하면 경력에 전혀 지장 없다며 어깨와 가슴을 쫙 펴라고. 더 중요한 일을 맡고 욕심을 내라고. 주변을 아군으로 만들라고. 그래야 다음 세대에겐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인데…. 딸이 있어서 그런지 전보다 주먹이 불끈불끈했다. 여성도 자연스럽게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세상으로 나아가즈아!!


이렇게 말해 보는데 어딘지 모르게 슬프다. 넘어져 울면서 유모에게 안아달라고 달려가는 자식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엄마는 몇이나 될까. 인생을 멀리 보는 고도의 정신 스킬을 연마하고 모성애나 양육과잉의 시대를 달관하는 경지 부터 이룩해야 할 것 같다.


경력의 공백을 원하지 않는 여성에게도 왜 육아의 많은 부분은 여성의 몫인가. ’일을 사랑하고, 일을 해야만 하는 여성'을 위해 제도를 마련하고 재능 있는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쫙 깔아놔라! 친정 엄마들이 무슨 죄냐! 여봐라~~!! 아... 이 뜨거움 뭐지… ㅎㅎ 여하튼 왕언니 말에 물개 박수 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다.


2023년, 셰릴의 삶의 방향이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소셜 광고의 대모인 그녀가 사람의 무의식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구축한 광고 성과와 고객 정보에 대한 기업가로서의 철학은 의심스럽다. 결과를 모르고 달려가는게 인생이긴 하지만 사회의 리더가 되겠다면 ‘무엇을 위해서’ 일을 사랑하는 엄마가 될 것인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 그건 너무 먼 이야기고. 평범한 우리에겐 생계에 대한 사명만큼 진실한 것이 없다. 대출 갚고 식구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고 나는 오늘도 알바하고 운전하고 녹음한다.


새벽 출근을 할 때마다 종종 셰릴의 말을 떠올릴 것 같다. 무섭다며 우는 딸의 분리 불안보다 아이 옆에 있어주고 싶은 나의 분리 불안이 더 문제라는. 이런 인생 선배가 있어서 기운이 난다.


기회가 되면 테이블 앞에 앉는 여성이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 그럭저럭 행운인 엄마도 되고 싶다. 두 마리 토끼를 그럭저럭 잡아보려고 한다. 너무 욕심이 많거나 혹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책임 있게 성실히 사는 삶이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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