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기원전 5세기에 고대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행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500년 전에 고대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꽃피웠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양 역사에서는 고대 아테네를 자신들의 정신문명의 요람처럼 생각할 정도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물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에서 보면 제한된 민주주의이다. 그럼에도 당시 아테네의 정치 지도자들이 연설했던 내용들을 보면 그들의 수준에 다시금 놀라게 한다. 아테네 정치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을 지금 사람들에게 읽어 주고 오늘날 미국의 오바마의 연설문이라고 해도 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이다. 2500년간의 세월에도 그 내용이 수준의 차이나 역사의 간극을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페리 클래스의 전사 군인 추도 연설문 내용에 일부분이다. “우리의 정체는 다른 나라의 제도와 경쟁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행정권이 몇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의 손에 달려 있기에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적인 분쟁에서는 모두에게 똑같이 공평하게 적용되는 정의가 존재하는 반면, 탁월함으로 말미암는 권리 또한 인정됩니다. 한 시민이 어떤 식으로든 뛰어나다면 공직에 발탁되는데 이는 특권이 아니라 실력에 대한 보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적인 일에 아무런 제약도 없지만 공공의 행위에는 상호존중의 정신이 배어 있습니다. ”
자유인! 아테네인의 자부심
아테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자유에서 찾을 수 있다. 아테네 시민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와 이 연장선상에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가 있었다. 아테네 인들은 “자유인”이라는 것이 그들의 자부심이기에 “자유인”이라는 말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빈번히 사용하였다. 아테네가 자랑하는 전함의 이름에도‘자유’를 사용하였고, 국가 행사에도 항상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에서 지금의 미국을 연상시켜 준다. 아테네의 웅변가 리시아스(BC450~380)의 연설에서도 당시 민주주의에서 자유에 대한 인식과 의식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은 사상 처음으로 자의적인 권력의 횡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자유야말로 사람들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힘의 원천이라 생각하면서 자유인의 기백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는 민주주의 원리를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조상들은 힘으로 남을 억압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법에 따른 정의의 실현과 이성에 의한 설득을 도모하고자 했다. 법을 왕으로, 이성을 선생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 조상인 것이다.”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아테네 인들의 자유의 정신이 아테네가 주변 국가들과의 틈바구니에서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페르시아 인들의 침입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라고 기록하였다. 현대의 역사가 윌 듀란트도 그의 저서 <문명이야기>에서 “아테네 인들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곧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기술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자유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의해 죽음을 당한 소크라테스조차도 아테네의 자유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크리톤>에 보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 몰래 외국으로 도망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아테네의 자유와 관련해서 말을 한다. “아테네에서는 각자가 자기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네, 아무도 국가의 종노릇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바로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네.”
플라톤의 <크리톤>은 친구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의 억울한 죽음이 안타까워서 탈출을 다준비해 놓고 소크라테스에게 간곡히 권유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소 크레테 스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너무나 태연히 독이든 잔을 마시는 모습은 <크리톤>에서 독자들을 사로잡는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주목할 것은 소크라테스가 왜 아테네를 탈출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 하였는가?이다. 여기서 진정한 자유는 또 다른 가치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숙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