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가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 회의장 안에서 원로원들과 암살당하며 했던"브루투스 너마저도!" 말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어스 카이사르> 대사 에는, 카이사르 암살에 동참했던 브루투스가 로마 시민 앞에 나아가서 "나는 카이사르를 사랑했다. 그러나 로마를 더 사랑했다!"라고 하고 있다.
로마 역시 신기하게도 기원전 6세기 말, 우리에게는 아득한 옛 시대에, 왕정을 종식시키고 시민들에 의한 공화정을 탄생시켰다. 공화정은 시민들이 투표로 집정관을 선출하는 민주적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1년 국무를 맡기고 임기를 마치면 다시 새로 선출하여 독재를 방지하였다. 기원전 6세기 당시 왕정 타도의 주도자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였다. 공교롭게도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의 조상이다.
리베르타스, Libertas
왕을 축출한 브루투스는 그 후 약 500년 동안 이어지는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가 되었다. 왕을 추방한 직후에 브루투스는 로마의 심장 '포로 로마노'에서 시민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앞으로 로마는 어떤 인물도 왕위에 오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으며, 어떤 인물도 로마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이처럼 로마 공화정의 원칙과 기반은, 자유(리베르타스, Libertas)이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의 죽음은, 로마 역사에 중요한 날이 되고 있다. 카이사르의 살해는 표면적으로 보면 원로원 세력과 1인 황제가 되려는 카이사르와 정치권력다툼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로마인들이 기원전 6세기 말에 왕정을 무너트리고 공화정을 세울 때에 가졌던 시민의 자유의 가치를 지키려는 정신의 흐름이 있다.
원로원들이 카이사르를 죽인 것은 그가 황제로 등극하여 독재자가 되려고 하는 위험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어 공화정을 무너트리고, 시민의 자유를 다시 빼앗아 갈 것에 대한 두려옴이 있었다.
날로 권력의 정점으로 달려가고 있는 카이사르를 원로원에서 암살한 것은, 곧 500년 지켜온 로마 공화정의 기반인 자유의 가치를 지키려는 로마 정신의 표출인 것이다.
카이사르가 죽고 이어서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뒤를 이어받아 결국 황제가 되었다. 로마는 이미 광대한 영토를 가진 거대한 국가로 로마제국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 로마의 역사이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음에도 카이사르와 달리 로마의 공화정의 정신은 쉽게 훼손할 수 없었다. 그는 로마는 그 누구도 로마의 공화정의 정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SPQR
지금도 로마에 가면 관공서 거물 곳곳에 SPQR 글자가 랜드마크처럼 붙여진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하수구 뚜껑에도 SPQR 글자가 새겨져 있다. SPQR란 “원로원과 시민의 나라 로마(Senatus PolulusQue Romanus)”뜻의 약자이다.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 후에도 로마를 차지한 새로운 이민족들조차도 로마의 자유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받아 SPQR 정신을 계승해왔다.
로마의 공화정은 전제정치를 하는 왕을 거부하며 탄생되고, 황제권을 반대하는 과정을 통하여 지켜진 정신은 인류 역사에 중요한 정체(政體)적 요소가 되었다. 공화정을 영어로 “republic”이다. “공공성” “공공의 재산” 의미하는 라틴어 “res publica”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공공의 가치, 사회적 가치도 그 연장선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유심히 살펴보고 통찰해야 할 것이 있다. 공공성, 공공의 가치는 반드시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와 연결되어 있다. 자유(리베르타스(Libertas)가 로마 공화정의 기반이 되었던 이유이다. 공화정 출발 자체가,“어떤 인물도 로마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개개인의 자유의 정신을 중시하는데서 출발하였다. 건강한 정체는 자유와 공화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양자를 분리하는 것은 오류이거나 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