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나침판! 진실의 울림판!

위기의 한국사회! 기이한 한국교회!

by 이강헌

나는 성경을 읽을 때에는

오랫동안 빨간색과 형광색의 줄을 치고 메모를 하면서 읽어왔다.


그러다가 성경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너무 낡아서 몇 권을 버리고

그다음부터는 줄을 안치고 가능한 깨끗하게 본다.

그럼에도 간 혹은 어느 구절은 아주 간단하게 표시만 해두는 구절이 있다.

내가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함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내용일 경우이다.


요한복음 6장에도 그중에 하나의 표시가 있다.

“...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이 구절이다.


나는 평생을 끊임없이 화두처럼 인생과 삶에 대한 질문을 하며 살아오고 있다.

인간과 사회의 진실에 대한 질문과 지적 호기심이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며 살아가게 하는 주요 동력이다.

하나님을 믿고 난 후로는 모든 영역에서 신성을 발견하는 노력과 희열이 있다.


나의 신앙의 질문과 여정

하나님을 믿기 전에 인생 질문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창조주가 있는가?” 이였다.

집요한 질문과 지난한 과정 끝에 하나님을 만났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본문의 기록처럼 나를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요 6:44)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구도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바뀌는 생생한 경험을 하였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마음과 생각은 물론, 행동과 얼굴까지 바뀌었다. 당시 “강헌이 봐라!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 어머니 단골 멘트였다. 결국 온 가족이 전도되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을 하고 나서부터 인생 질문의 중심 주제가 바뀌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이런 상태인가?” 나는 교회에 출석하고 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의 실상을 알아가면서 너무 놀랐다.

교회와 교인들이 세상의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끊임없이 그 원인을 찾으려고 성경말씀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결론은 교인들이 성경 말씀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교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침내 내가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 이유가 되었다.


신학생이 되어 전도사로 부산 사상구에 있는 교회에 부임하였다.

나이 드신 담임목사님께서는 나를 깊이 신뢰하여 교회의 모든 교육사역을 나에게 전적으로 위탁하였다.

나는 제자훈련이라는 성경공부 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에서 청년, 어른들까지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에 몰두하였다.


교인들의 변화가 일어났고 그 성과로 내가 그 교회의 역사의 중요한 교역자가 된 것이다.

그 교회는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내게 배운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세월이 흘러 내가 담임이 되어 또다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성경공부,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만으로는 사람이 진정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산의 교회에서 4단계, 2년 제자훈련 과정을 통해 그들은 나름의 신앙적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을 냄으로 교회의 활기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뭔가 빠져 있다는 의문에 답답함이 있었다.

이 의문이 김해에 있는 교회 담임목사 사역을 하면서 문제의 근본원인을 알게 되었고,

성경적 복음진리에 보다 깊이 있게 눈을 뜨게 되었다.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 눈이 열리며

성경이 또다시 새롭고도 심층적으로 다가왔다.


교회, 장구한 오류의 역사

한국교회 대 다수가 복음진리에 무지하다.

대 다수 교인들이 성경에 유대인처럼 신앙이 근본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당시 유대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하듯이

한국교회도 참 복음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영적인 난치상태이다.


문제의 원인을 목사들과 신학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내가 열심히 잘하고 있던 김해의 교회를 갑자기 사임한 이유이다.


복음진리에 대한 무지와 오류는 교회 2000년 역사에 반복해 왔던 것임도 알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류사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도 무지와 오류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사실까지 알고 나서 의문들이 풀리 지게 되었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스라엘 역사와 당시 시대적 현실을 통해 깊이 있고 드러내고 주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바울은 그 해결 책인 복음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것이 바울이 전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바울 사도의 13권은 서신은 기독교진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명해 내는 탁월성을 담고 있는 놀라운 것이다.


요한사도 역시 이러한 사실을 깊이 있게 다루는 사도이다.

요한복음은 당시 교회지도자들 모두가 진리의 말씀에 무지함으로 왜곡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진정한 복음진리를 증거 하는 것이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의 주제인 "영생" 역시 바울처럼 복음진리가 무엇인가를 규명하고 전달하기 위한 책이다.


진리에 무지와 오류, 왜곡의 역사는 교회사의 주요 흐름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한국교회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사실 진실은 간신히 밝혀지고 정의는 겨우겨우 승리하는 것이 인간세상이며, 인류역사 자체이다. 우리 인생이 고통스럽고 때론 절망스러운 이유일 것이다.


한국사회 기이한 진실 깨임

지금 대한민국 국가사회가 거대한 진실싸움, 참담한 진실 깨임이 벌어지고 있다.

기이하게도 한국교회가 이 일에 앞장서서 갈등과 분쟁을 주도하고,

우리 사회의 혼란과 위태함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결코 놀랍거나 기이한 일이 아니다.

종교인들의 무지와 오류의 행태는 성경과 교회사에 무수히 반복되어 왔던 일들이다.

인류사 자체가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사건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죽임 당하는 특이하고도 이상한 사건이다.

인간에 의하여 하나님이 죽는 십자가 사건은 인간이 특히 종교인들이 진리에 대한 무지와 거부 역사적 모든 현상들의 드러내는 상징이다. 동시에 거짓이 진실을 제거하는 정점과 극치이다.


성경에 이러한 메시지가 기록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자체도 이러한 무지와 왜곡의 현장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

요한복음은 당시 교회지도자들은 무지로 그리스도를 심히 대적하고,

신도들도 진리에 무지한 상태이므로 주님의 말씀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 깨닫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무지와 오류 가득한 인류역사 속에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리스도의 대답이 있다. “...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참된 것을 갈망하고 향하는 진리의 나침반과 진실에 반응하는 울림판 같은 것이 있다.

요한사도는 요한복음을 통해 이 사실을 나다나엘, 니고데모와

나아가 간음현장에 잡혀온 여자, 소경 같은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