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긴 38시간 하루

남미 여행기 3

by 이강헌

남미로 가는 길은 참 멀고도 멀다. 12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왔음에도 또다시 12시간이 걸리는 남미 페루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이제 비행기 타는 것이 좀 불편하고 슬슬 지겨워지려고 하기 시작한다. 좁은 의자에 앉아 기내식을 두 끼를 받아먹고, 한 자리에 꼬박 12시간을 붙어 있는 것을 연이어 반복하니, 양계장 닭처럼 사육을 받는 느낌이다.


잠이라도 좀 자면 다리부터 시작해, 온몸이 불편해 자세를 이리저리 계속 뒤척이게 된다. ‘딸이 많은 집 부모는 비행기 타고 여행한다.’ 하는 말이 생각나 ‘비행기 많이 타는 것 쉽지 않은데…’ 딸이 세명이나 되는 나는 속에서 웃음이 났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줘서 마침내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다. 네덜란드 국제공항 스키폴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페루 국제공항 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아! 내가 남미 땅에 발을 딛게 되다니!’ 설렘이 마음에 밀려왔다. ‘대한민국의 반대편! 적도 아래 남반부!’ 그야말로 전혀 다른 세계의 땅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공항 로비로 나섰다.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 남미 특유의 스페인어, 손님들을 찾아 부르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이곳이 바로 남미구나!’ 하는 느낌이 팍팍 왔다. 리마 공항은 택시 호객 행위로 유명한 곳이다. 그만큼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국가경제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현지에서 마중 나온 사람을 만나서 택시를 잡아탔다. 타고 보니 조금은 불안했다. 미리 본 남미 책자에서 타지 말라는 사설 택시를 탔기 때문이다. 남미는 아직은 치안도 좀 불안한 곳이다. 허가받은 공인 택시가 아닌, 개인이 사설로 영업하는 택시는 갑자기 기사가 강도로 돌변하는 일들이 더러 있다 한다. 페루 여행안내 책자들마다 가능한 공인된 택시를 타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탔고, 현지에 사는 사람이 어련히 알아서 잡았겠지! '마음 편하게 먹자!' 스스로 달랬다.


차창 밖으로 리마 시내를 내다보며 남미의 500년 질곡의 역사를 떠올렸다. 리마는 16세기 유럽에 대항해 시대의 정복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도시이다. 인디언들의 땅, 아메리카에 백인 정복자들이 세운 도시이다. 피의 전쟁과 착취와 수탈의 땅, 인디오와 백인, 흑인들의 혼혈에 가세한 다양한 피부색은 남미의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역사를 아는 것은 그들을 아는 것이고, 알면 이전보다 다르게 보인다.


택시는 유명한 미라 폴로 레스 지역에 들어섰고, 마침내 목적지 솔 데오르 호텔에 도착했다. 건물과 주변의 길들 과 간판들까지 익숙해서 내심 미소를 지었다. 오기 전에 구글 지도를 통해서 살펴본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만 넣어 두고 콘퍼런스 홀로 들어서니, 이미 콘퍼런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각국에서 온 참가 자들 중에 우리가 거의 꼴찌 도착이다. 저녁을 먹고도 콘퍼런스는 늦은 밤까지 계속 진행되었다. 그러나 열기와 분위기에 피곤을 못 느꼈다.


마치고 호텔방에 들어서니, 그제야 좀 멍한 느낌이다. ‘오늘 하루는 정말 길고도 길다!’ 인천공항에서 새벽 1시 전에 출발해 밤 12시가 되었으니 24시간이 갔다. 거기다가 시차 14시간이 추가되어, 꼬박 38시간을 계속을 활동했다. 정말 내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 침대에 몸을 눞이고 잠을 청하나 잠이 안 온다. 긴 시차의 여행으로 생체 리듬이 흐트러진 것이다. 지구 반대편 가족들 생각, 이 한 몸 편히 누울 수 있는 공간에 새삼스러운 감사함으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