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인간이 홀로 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짐승들도 무리를 이루며 함께 사는 존재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사회생활이라 하지 않고 군집생활이라 한다. 인간만을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마을은 인간의 정서의 뿌리와도 같다. 포털 검색어나 빅데이터 상에 ‘마을’이라는 단어와 같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 ‘고향’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고향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원초적 단어처럼 깊이 담겨있는 단어이다. 고향이라는 단어는 ‘기억’과 ‘추억’ ‘향수’이라는 단어와 연결되고 다시 ‘그리움’과 ‘가고픔’이라는 단어들과 연결이 된다. 타향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향 친구, 고향 산천, 고향의 뒷동산, 고향의 우물, 고향의 숲 등은 꿈에도 잊지 못하는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 고향이 모두 마을들이다.
마을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첫자리이다. 인류사회는 모두 마을로부터 출발했다. 국가가 있기 전부터 마을이 먼저 있었다. 마을은 인류사회의 시원과 같을 정도로 무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가족이 마을보다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은 혈연적 특별한 관계와 정서를 가진 제한된 사회이다. 가족은 나의 연장으로 생각되기 쉽다. 마을은 비로소 ‘나’를 넘어 ‘너’를 만나는 진정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자리이다.
마을은 인간이 타자와 만나 새로운 우리를 경험하며 공존을 배우는 첫자리이다. 인간이 타자와 더불어 사는 공존의 가치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 중에 하나이다. 이 가치에 대한 인식의 폭과 의식의 깊이가 지성과 인격의 정도에 비례한다. 어느 국가사회에 마을이 해체되고 상실되고 있다면 각박한 이기적인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상실과 해체는 공존의 가치의 상실로 인한 불안하고 위험해지고 있는 정도의 바로미터이다.
마을은 인간다움을 지켜갈 수 있는 터전이다. 마을은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알정도로 친밀성으로 기본 신뢰가 있는 사회이다. 반면에 도시는 서로 옆집에도 누가 사는지 모르고 익명성으로 인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는 불안한 사회로 가기 쉽다. 건강한 마을 없는 국가 사회는 북한의 전체주의 사회나 빅브라더 같은 무서운 통제사회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마을은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보루와도 같다.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와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