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할머니, 19세 새색시 때 옷과 함께 묻히다.
메멘토 모리
며칠 전 우리 산골 마을의 최고령 103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100년 하고도 3년을 더 사셨으니, 안타까운 마음도 그다지 없을 수 있다 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에게 죽음은 언제든지 결코 작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아는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상실감과 허전함 속에 숙연한 마음까지 찾아든다.
나는 산골마을에 와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삶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숫자가 얼마 안 되는 작은 산골마을에서는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활을 보게 된다. 나는 작은 산골마을에 노인 분들의 삶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편이다.
마을에 노인분들은 80~90대 고령으로 수백 년 동안 산골마을의 삶을 이어온 마지막 세대들이다. 이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이 마을의 세대를 이어 살아오던 산골마을의 역사와 전통 같은 것도 종지부를 찍는 샘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 마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쩜 요즘 같이 인구감소 시대에 당연할 것도 같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마을은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묻어 있고 배어 있는 곳이다. 마을의 우물들, 오래된 돌담길들, 마을의 역사만큼 오래된 고목나무들, 마을 사람들의 삶의 흔적, 기억과 추억, 즐거움과 애환, 아픔과 슬픔들 이 모든 것들이 겹겹이 담겨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마을의 마지막 세대인 노인 분들이 하나 둘 차례로 다 돌아가시면, 예전처럼 옹기종기 사람 냄새 내며 살던 마을의 삶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만다. 또 아무도 그들을 기억해 주지 않고 지워져 버릴 것 같다. 지금 남은 분들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나는 이렇게 되는 것들이 왠지 좀 서글프다는 생각이, 풀어야 할 어떤 숙재처럼 되어 마음에 계속 맴돌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마을의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골마을의 예전의 것들이 모두가 소중한 문화적 자원으로 보였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산골 마을의 마지막 세대인 어르신들의 삶의 흔적들을 어떤 식으로라도 담아 놓고 기억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집을 나설 때마다 손에 작은 디카를 항상 챙겨 들고 다니며 마을과 노인들의 삶을 틈틈이 찍기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은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이 크게 향상되어 사진을 찍기가 매우 편리해져서 좋다.
이렇게 하며 살아온 지가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다. 다행히 그동안의 노력으로 마을에 크고 작은 성과가 있었고, 어느새 나는 마을일에 깊이 관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밖으로 차츰 알려져 여러 일들과 연결되어 지금은 경남에서 마을공동체 문화 민간전문가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틈틈이 마을의 구석구석과 마을 어른분들을 찍은 사진들이 모여져 이제는 수 천 장이 넘게 나의 컴퓨터에 내장이 되어 있다. 몇 년 전에는 이 사진들 중에 얼마를 선정하여 마을과 시립도서관에서 전시회를 가졌던 적도 있다.
동네 어르신들 사진들 중에 돌아가신 103세 할머니의 사진이 제일 많다. 이유는 마을에서 연세가 가장 많으신 어르신인 것도 있지만, 할머니의 삶은 조금은 독특해서 보다 집중해서 지켜본 것도 있다. 할머니는 시골에 여느 할머니들처럼 참 열심히 사시면서도 여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때때로 마을 숲을 거닐고, 동구 밖까지 크게 한 바퀴 돌아오시는 일을 100세가 다 되실 때까지도 하셨다.
할머니는 텃밭에 자신이 드실 모든 야채를 자연 방식으로 손수 키워서 드셨다. 때로는 나에게 건네주시기도 하였다. 하루는 내가 방문을 하였을 때에 할머니는 따끈하게 금방 한 밥에, 냄새도 구수한 된장국과 정갈한 나물 반찬들까지 먹음직스럽게 직접 만들어서 드시는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시다! 다른 사람은 저 나이에 살아 있기도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할머니가 묻히는 묘소는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 옆이었다. 요즘은 거의 화장을 하는데 산골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집이라 마을 뒤쪽에 이미 매장지가 다 마련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묻히는 마지막 자리에서 나는 또 한 번 놀랍고도 가슴 뭉클한 기억으로 남는 일이 있었다.
하관식을 막 진행하려는데 할머니의 딸들이 “잠깐만요!” 하면서 무엇을 가져와 “이것을 엄마하고 함께 묻어 주세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우리 엄마가 시집올 때 입고 오신 옷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함께 묻어 달라고 준비해 놓은 것이 예요.”라는 대답을 하였다.
나는 순간 속으로 흠칫 놀랐다. 돌아가신 백 삼세에 할머니는 열아홉 살에 시집을 오신 분이다. 19세의 어린 새색시가 입고 왔던 옷을 84년을 동안 고이 보관해 놓았던 것이다. 그 옷을 가져와 103세 할머니가 되어 돌아가신 그위에 마지막으로 덮어 주고 있다. 이것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과 함께, 84년 전 꽃다운 모습으로 시집와 이 마을에서 한 평생을 사시다가 103세 할머니가 되어 누워계시는 한 여인의 일생이 아련히 그려지고, 나아가 우리 인생의 살고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숙연한 마음까지 들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셨을 할머니
이처럼 새색시가 자신이 시집올 때 입었던 신부 옷을 잘 간직했다가 장례식에 함께 묻어 주는 풍습은 고구려 시대부터 있던 풍습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수많은 장례식을 집례 했지만 이 시대에 직접 실행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나는 이러한 모습들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너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 생각이 났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 이란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백 삼세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내 드리면서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