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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Dec 27. 2020

잠시만요, 팽이 한번 돌려보자고요

영화 "인셉션"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학기가 벌써 절반은 지난 거 같은데 아무도 강의실이 중간에 바뀌었단 얘기를 해주지 않았나 봅니다.  입대 전에 F학점을 받았던 교양과목들이 전부 해당 단과대 과목들로 대체되어서 재수강을 위해선 그 건물들로 매번 찾아가야 했거든요.  어떤 과목은 인문대로 찾아가야 했고, 또 어떤 과목은 자연과학대에서 그쪽 새내기 친구들과 뻘쭘하게 함께 들어야 했었죠.  근데 강의실 건물이 갑자기 바뀌었대요.  헐레벌떡 건물을 찾아 뛰어다녔지만 무슨 영문인지 엉뚱한 곳에 있습니다.  산 위 맨 꼭대기 건물.  처음 들어가 보는 건물이라서 강의실 찾기도 너무 힘들었어요.

바뀐 강의실에 겨우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한쪽에서 웅성웅성대고 있더군요.  무슨 일인지 어깨너머로 얘기를 들어보니 교수님께서 당일 느닷없이 중간고사를 본다고 했대요.  제대로 복습도 못해서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어 막 당황해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다른 친구들은 두툼한 리포트까지 다들 제출하고 있습니다.  전혀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거든요.  예정에 없던 중간고사, 알지 못했던 리포트... 한 과목 이대로 어이없게 날리는 건가 싶은데 더 청천벽력 같은 생각이 머리를 휙 스쳤습니다.  이미 학기의 중간이 훨씬 지난 상태인데, 수강 신청한 대여섯 개의 과목 중 아예 출석 자체를 한 번도 안 했던 과목이 두 개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오른 거죠.


  이거 미쳤구나 싶었어요.  대체 무슨 정신으로 학교를 이렇게 다녔던 건가 하며 등에서 식은땀이 막 났습니다.  이미 3분의 1 이상 결석이니 교수님들께 아무리 애걸복걸해봐야 어림도 없을 테죠.  출석하지 않은 그 과목들을 날리고 지금 듣고 있는 이 과목마저 리포트와 시험을 망쳐버리면... 속절없이 학사경고를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 밖에 사람들이 미친 듯이 계단 위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고 있어요.  강의실 안에 함께 있던 친구들도 후다닥 가방들을 챙겨 건물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며 일제히 뛰어나갔죠.  엉겁결에 가방을 집어 들고 그 사람들의 행렬에 끼어 함께 달려가다 보니 저 멀리서 건물을 집어삼킬듯한 해일이 밀려오는 게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한참을 헐떡이며 건물 위 옥상에 도착하면...

잠이 깹니다.  눈이 번쩍 떠졌죠.  

먼저 깨어있는 냥이 두 마리가 벌써 머리맡에서 아침밥 달라고 냥냥거리고 있어요.  집사람은 보통 이십여 분 정도 먼저 깨서 이때쯤이면 욕실에 있을 시간입니다.


  맞아요.  위에 쭉 적어놓은 대학교 시절 이야기는 제 꿈 이야기입니다.  저렇게 비교적 상세히 적을 수 있는 건, 저런 형태의 꿈을 자주 꾸기 때문이거든요.  학교 관련 꿈을 자주 꿉니다.  주로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고 어떨 땐 고등학교 시절로도 돌아가 있어요.  한데 대부분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하는 내용들이라 저 꿈들을 꾸는 게 유쾌하진 않아요.  주로 교실이나 강의실을 애타게 찾아다니는데 하필이면 그 방만 유독 찾지 못한다거나 시험 준비를 하나도 안 했는데 갑자기 시험을 친다든지 하는 그런 내용들이거든요.  남들 다 내는 리포트나 숙제를 전혀 안 했거나 심지어 수업을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아서 전부 결석 처리되고 있었다는 그런 꿈들.  당연히 꿈속에선 발을 동동 구릅니다.  한숨을 내리 쉬면서 막 자책하며 화를 내기도 하죠.   

그래서 은근 제게는 사실 악몽에 가까운 꿈들인데... 최근에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감상했던 영화 DVD 서플먼트 인터뷰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직접 언급했던 내용에 따르면, 그가 자주 꾸는 꿈 내용이 저 학교 관련 꿈이라고 그랬거든요.  준비하지 못한 시험이나 과제 때문에 학교에서 쩔쩔매는 저 꿈들.  제 주위엔 저런 꿈으로 시달린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게 또 다름 아닌 크리스토퍼 놀란 이잖아요.  저랑은 눈 두 개, 코 하나라는 점 말고는 공통점이라곤 없는 엘프 두뇌급의 인물인데, 같은 종류의 꿈을 자주 꾼다니 신기할 수밖에요.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최근 다시 감상했던 그의 작품이 바로 2010년 개봉작 '인셉션'(Inception)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바로 이 '꿈'에 관한 영화였죠.  






산업 스파이인데

 


                 

우린 남들의 꿈을 훔쳐요




아니 근데 도대체




내 강의실 건물 어디 갔냐고






  스릴러 작품 '메멘토'(2000년), '인썸니아'(2002년)를 완성시킨 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당시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에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를 제시합니다.  산업 스파이들이 등장하는 기업 첩보전에 관한 이야기였죠.  특이하게도 거기에 '꿈'이란 소재를 더하려고 했어요.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꾸는 꿈, 즉 '자각몽'(Lucid Dream)에서 영감을 가져온 '꿈 도둑'들의 이야기였던 겁니다.  '배트맨 비긴즈', '프레스티지', 다크 나이트'로 이어지는 성공적 흥행 이후 찍고 싶은 작품이 무엇이든 얼마든지 투자하겠다는 워너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 '꿈' 이야기가 드디어 제작에 들어갔어요.  최초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거의 8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차곡차곡 다듬어져 온 시나리오였죠.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원하는 정보를 추출(extraction)하는 스파이 팀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일본의 한 재벌 사업가에게 '작업'을 걸다 실패하고 오히려 협박을 당하게 돼요.  경쟁사 후계자의 꿈속에 몰래 들어가 그가 스스로 회사를 분할하도록 '생각'을 심어 놓으면 이들에게 특혜 및 사면을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정보를 꿈을 통해 빼내는 '추출'과는 달리, 특정한 결정을 내리도록 반대로 생각을 몰래 심는 '인셉션(inception)은 고도의 난이도와 위험이 따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죠.  영화는 이 '꿈 도둑' 팀이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인셉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굵직하게 보자면... 스토리는 이게 전부입니다.  이 알쏭달쏭한 각본을 토대로 톰 하디, 조셉 고든 레빗, 마이클 케인, 와타나베 켄, 마리옹 꼬띠아르와 같은 '놀란 사단'의 단골 배우들에다, 주인공 코브 역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가세해서 촬영을 마치고 2010년에 드디어 개봉이 되었어요.


  명불허전.  비평가와 대중들로부터 두터운 지지를 받아 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결이 그대로 녹아든 이 '꿈' 이야기는 개봉과 동시에 역시 전 세계적인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제작비 1억 6천만 달러에 북미에서만 2억 9천만 달러, 전 세계 총 흥행 집계로는 8억 2천만 달러를 벌여 들였어요.  2011년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상, 각본상 포함 8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그중 시각효과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촬영상 4개의 트로피를 수상하기도 했죠.

한데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이러한 수익적 측면으로만 결코 단순히 가늠할 순 없습니다.  이른바 돈이 되는 영화, 블록버스터를 찍으면서도 그 속에 자신만의 철학적 명제들을 통해 관객들을 사유하게 만드는 놀란 감독의 장기는 여전했어요.  단편적인 장면들로만 얼핏 보면 총싸움과 쌈박질이 뒤섞인 평범한 액션영화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 작품은 한 발짝 더 물러나 전체 얼개를 폭넓게 들여다봐야 하는 작품이었죠.  처음 볼 땐 그 경이로운 꿈속 세계의 비주얼 효과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세세한 상징들과 비유들을 다 파악하기 위해선 사실 N차 관람이 필수였습니다.  실은 볼 때마다 이렇게 다양한 방향으로의 해석이나 접근이 가능했던... 굉장히 지적인 '심리 드라마'였던 거예요.




  

  

    

 










    사람은 일생동안 약 20년 정도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꿈을 꾸는 시간은 5년에서 6년.  적은 시간이 결코 아니죠.  80세까지 산다고 보면 일생의 7%를 '꿈속에서' 산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거의 모든 꿈들이 눈뜨자마자 연기처럼 휘발되기 때문에 우리가 실질적으로 기억하는 건 체감상 극히 미미해 보일 뿐이에요.  의학적으로 보자면 뇌의 일부가 깨어 있는 상태로 기억과 정보를 무작위로 재생시키는 것일 뿐이라 특정한 내용상의 '법칙'이 없을 겁니다.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되는지 기승전결이라든가 개연성 같은 게 없잖아요.  꿈 안에서는 막상 꿈이란 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무작위성은 부정적 감정이나 공포의 느낌으로 남겨지는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스스로 꿈속 임을 인지하는 '자각몽'의 경우들도 있지만 아직은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에 더 가까워요.

이러한 꿈에 대한 해석들을 학문으로 체계화시킨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꿈이 숨겨진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생각했죠.  평소 우리의 무의식들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의식들에 의해 '봉인'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무의식 속엔 사실 겉으로 표출되진 않지만 실은 한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 성향을 결정짓는 근원적인 key들이 숨겨져 있을 거예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자아가 억누르고 있는 부정적이고 심지어 파괴적일 수도 있는 욕구나 감정 들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프로이트에게 있어 꿈은... 내면의 억압된 갈등이나 욕망이 이미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서로 규명하는 용어나 단어가 상이할 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꿈'에 관한 해석들은 이와 비슷한 정의들을 내리고 있다고 봐요.  의식과 무의식, 숨겨진 본능이나 욕망, 더 나아가 종교적 관점에선 계시, 연결, 전달의 '매개체'로도 인식될 수도 있죠.


  이런 관점들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꿈도둑들의 이야기'라는 비현실적인 서사에다 현실적인 디테일들을 부여하는 시나리오 작업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8년이 넘게 다듬어진 각본이란 게 실감이 나죠. 그 내용들을 눈앞에 구현시키는 시각화 작업은 더할 나위 없었을 거예요.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극명하면서도 동시에 흐릿하게 그려져야 했습니다.  대상자가 꿈이란 걸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트릭들과 반대로 꿈도둑들이 자신이 현재 속한 영역이 꿈이란 걸 상기시켜주는 트릭들이 함께 겹쳐져야 하죠.  생각을 빼내는 '추출'과는 달리 생각을 심는 '인셉션'은 꿈속에서도 2중, 3중의 하위 층위로 내려가져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한 스크린 화면에서 몇 단계의 꿈들과 무의식들을 동시에 번갈아가며 지켜봐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 기본 서사들에다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개인적 상처와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까지 서브플롯으로 함께 덧붙여 놓았어요.  이 모든 스토리들과 영상들이 뒤엉켜 엉망진창이 되었다면 아마 이 영화를 보는 자체가 우리에겐 끔찍한 '악몽'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문에 가까웠겠죠.  


  한데 크리스토퍼 놀란이잖아요.  이미 목격했다시피, 해냈어요.  그것도 굉장히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꿈과 무의식 세계에 대한 유니크한 설정들부터 매력적이었죠.  우려되었던 시나리오 속 복잡한 인과관계들을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완벽히 풀어냈어요.  몇 단계의 층위를 넘나드는 '꿈속의 꿈' 장면들에서 그가 사용한 '비법'은 눈이 돌아갈 정도의 현란한 CG 떡칠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랬듯 의외로 특수촬영에 공을 들이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이전 이후의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찬사를 이끌어내는 요소는 바로... 편집을 통한 플롯 재배치였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의 재배열'입니다.  그의 주특기죠.  스릴러 작품이었던 '메멘토'의 경우 5분 단위로 리셋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의 의식 흐름 그대로 역순으로 사건을 재배치했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전쟁영화 '덩케르크'도 해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전투기 속에서의 한 시간이란 서로 다른 주체들 간의 시공간을 동시에 뒤섞어버리는 '묘기'를 선보였어요.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꿈속의 꿈'들은 어떤가요.  설정상 앞뒤 순차적이 아니라 동시 진행적입니다.  게다가 꿈 층위 간 시간 속도가 20배의 차이를 가지죠.  현실에서의 1분이 1단계 꿈에선 한 시간, 2단계 꿈에선 약 3일, 3단계 꿈에선 150일가량으로.  무려 다섯 단계 가량의 다층 세계를 동시에 우리 앞에 열어 보였습니다. 이번엔 시간의 전후 재배치가 아니라 그 시간을 층층 별로 얇게 쪼개서 열어젖히고 있는 거죠.  그 정신없는 와중에 한 남자의 무의식 속 트라우마의 치유와 가족의 재회라는 가슴 달달한 감성 코드까지 곁들이고 있어요. 또 알듯 모를 듯 수많은 상징들과 상징, 맥거핀까지 영화 곳곳에 무심히 심어 놓고 말이죠.  이 사람, 천재를 넘어서서 어쩌면... 살짝 변태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있습니다.  






잠시만요

                         



지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팽이 한번 돌려보자고요






  영화와는 별도로 새삼 더 궁금했습니다.  제가 주기적으로 꾸는 꿈,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 자주 꾼다는 그 '악몽'의 정체가 말이죠.  학교 수업, 숙제, 시험에 관한 꿈 들이라 뭐 지나간 학창 시절에 관한 그리움... 그런 연유가 아닐까 하고 대충 생각하고 말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성적을 불타는(?) 연애와 홀라당 맞바꾸었던 기억이 있어서 혹시 그 아쉬움 때문인가 싶기도 했어요.  최근에 그 꿈들에 대한 검색을 좀 더 자세히 해봤습니다.  솔직히 안 좋은 방향으로 해석이 될까 봐 그리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은 것도 있어요.  살짝 무섭잖아요.  한데 제가 생각했던 만큼 그리 구체적인 해석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뭔가 두리뭉실한 얘기들뿐인데 또 뭐 소름 끼치는 내용들이 나올까 봐 막 미친 듯이 인터넷 서핑을 하진 못하겠더란 말이죠.

그러다 우연히 제가 꾸는 그 꿈들 내용에 근접한 해석들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정확한 과학적 근거는 없어요.  잠자는 동안 일부 깨어있는 뇌가 무작위로 기억과 정보를 인식하는 것일 뿐이라는 의학적 이론들에 따르면 '꿈'은 결국... 아무 의미 없는 이미지들에 불과하죠.  한데 꿈이 억눌린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주장에 무게를 두고 가정을 해 볼까요.  이 작품 '인셉션'에서 등장인물들이 꾸는 꿈들도 그들의 감추어진 본능, 욕구, 스트레스, 혹은 소망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꾸는 '학교생활'에 관한 꿈들은 직접적으로 보이는 학창 시절 그 자체라기보단 '현재의 일'에 관한 의미가 크다고 해요.  강의실이나 교실을 못 찾는 것, 준비 없이 치는 시험이나 제출하지 못하는 숙제들로 부정적 감정들을 느끼는 건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일이나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그대로 치환하면 된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일 자체든, 일을 둘러싼 환경이든, 일에 엮인 인간관계들에서든 어떤 형태로든지 말이죠.  오호... 이건 뭐 백 프로 맞다고 무조건 물개 박수를 칠 수도 없습니다만 또 허무맹랑하다고 싹 무시할 수도 없는 그런 느낌이네요.  근 20여 년이 넘도록 해오고 있는 '일'이니 적성이나 보람, 긍지 같은 감정들과 무관하게 꽤 익어져 있는 '일'들입니다만 여전히 영혼과 육체가 깡그리 분리되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간혹 있긴 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그 부정적 '유체이탈'이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대부분 그러하듯 부정적 감정의 대상 그 자체가 변한다기보단 그 감정들을 대하는 개인들의 시선과 태도가 변하는 거니까요.

근데 그 부정적 감정들은 원천적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쩌면 보이지 않는 무위식의 영역으로 꽁꽁 잠겨지나 봅니다.  물에 잠긴 빙산의 수면 위 일부가 타인에게 보이는 의식 세계라면, 물 밑에 잠긴 거대한 덩어리가 사고의 뿌리인 무의식의 세계라고 하죠.  영화 속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생각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끈질기고 전염성이 강해서 씨앗이 되어 자라나면 한 사람을 규정하거나 망가뜨릴 수도 있다'라고 말해요.  그게 부정적 생각일 경우엔 '생존력'마저 강해서, 사라지고 소멸되었다고 생각해도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 불쑥불쑥 어느 때 튀어나오게 되나 봅니다.  현실에서 드러내지 못할 땐... 이렇게 꿈으로라도 나타나는 걸까요.  난데없이 강의실을 애타게 찾아 헤매고 리포트와 시험을 망쳐 발을 동동 구르는 그런 모습들로다가.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최근에도 그랬었죠.  업무적 견해차에서 오는 충돌로 서로 마주 앉기도 껄끄러운 누군가와 어색하게 단둘이 테이블을 마주했었어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호흡도 살짝 가빠 보이면서 눈에는 살짝 눈물까지 맺혀 보였습니다.  단둘이 마주 앉은 이 자리가 얼마나 불편하고 싫은지가 그대로 전해져 와요.  그 사람도 아마 똑같은 느낌을 제게서 받고 있을 거예요.  애써 감추려고는 하지만 싫은 사람을 가까이서 마주했을 때 보이는 '무의식'적 바디랭귀지 징후들이 서로 무수히 교차하는 중입니다.  항상 그렇지만, 불편함과 동시에 서글픔이 함께 밀려들죠.  불가피한 곳에서 불가피한 관계로 이어져 불가피한 충돌을 피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미움의 대상이 된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니까요.  이 자리에 악당은 없습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로 조금씩 더 '비겁한' 개인들이 존재할 뿐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함께 몸담고 이 '일'을 각자 하고 있는 동안은 더더욱 서로에게 부정적 감정, 부정적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마 무의식의 단계에서도 가장 밑바닥이라는, 그 '림보(Limbo)의 영역으로 스며들여졌을지도 모르죠.  

그 어색하고 불편한 논쟁 도중에, 문득 서로의 말을 끊고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 '인셉션'에서 인물들이 지금 내가 있는 세계가 현실인지 꿈인지를 식별하는 수단이 바로 저 각자의 '토템'이었잖아요.  주인공 코브의 경우 저 작은 은색 팽이였습니다.  팽이가 조금 돌다 쓰러지면 현실이었지만, 무한히 회전하면 '꿈'이란 걸 자각하고 돌아갈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잠시만 우리 싸우지 말고 지금 여기서 팽이 한번 돌려보자고요.

저 빌어먹을 팽이가 끝내 계속 돌아가면

각자 레드썬 외치고...

서로의 착하고 아름다운 '현실'로 돌아가면 될 테니까.









     

레드썬,

      


            

            










*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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