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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Jan 09. 2021

빡세게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희대의 또라이 XX, 찰스 맨슨




찰스 맨슨과 그 떨거지들,  '맨슨 패밀리'




샤론 테이트, 로만 폴란스키 부부




샤론 테이트 (1943.1.24 ~ 1969.8.9)






  1969년 8월 8일 금요일 밤.

  캘리포니아 비버리힐스 북쪽 10050 Cielo Drive의 고급 저택에서 한 여배우와 지인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26세의 이 여배우는 샤론 테이트(Sharon Marie Tate).  TV 시리즈 '비버리 힐빌리즈'에서 주목을 받다가 영화 '박쥐성의 무도회', 인형의 계곡'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죠.  당시 떠오르던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결혼해서 이 저택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임신 8개월, 만삭의 몸이었어요.

그날 남편 로만 폴란스키는 각본 작업을 위해 런던에 가 있었고, 가벼운 임신 우울증을 겪고 있던 샤론 테이트는 오랜만에 지인들을 불러 식당에서 외식을 즐긴 후 모두 함께 그 저택으로 돌아왔었습니다.  그들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던 거실에선 LP 턴테이블에 걸어 놓은 마마스 앤 파파스의 노래 'Twelve Thirty'가 흘러나오고 있었죠.  그런데 그 늦은 밤, 낯선 차 한 대가 오르막길을 따라 그 저택으로 천천히 다가왔어요.  이윽고 그 차는 저택 근처에서 멈췄습니다.  긴 머리의 히피 무리들이 그 차에서 내렸죠.


  이 떨거지들을 이곳으로 보낸 사람은 찰스 맨슨.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들로 1967년까지 교도소를 밥 먹듯 들락거리던 인간이었죠.  석방된 후 그는 히피 문화를 표방한 어느 패거리의 리더가 되었어요.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그 '맨슨 패밀리'를 이끌었습니다.  함께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추종하는 어린 멤버들과 마약에 절어 난교 파티를 일삼고, 늘 그들을 선동했죠.  부자들과 연예인들을 죽여 심판하면... 자신들이 꿈꾸는 천국이 도래한다는 헛소리를 늘 찌껄여대던 그 구역의 미친놈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인간이 비틀스 같은 뮤지션이 되겠다며 자신의 노래 데모 테이프를 음악 프로듀서 테리 멜처에게 보냈었나 봐요.  이 테이프를 듣고 난 후 테리 멜처찰스 맨슨의 노래들을 형편없는 저질 음악이라 혹평했었죠.  이에 앙심을 품은 찰스 맨슨이 앙갚음을 하려 맘먹게 됩니다.  테리 맬처의 집 주소를 수소문해서 '맨슨 패밀리'의 네 떨거지들을 Cielo Drive의 그 저택으로 보내 거기 있는 모두를 죽이라고 지시했던 거죠.  한데 그들이 죽이려고 마음먹었던 음악 프로듀서 테리 맬처는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이사를 가버렸고 그때 그 집에 살고 있던 이들이...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여배우 샤론 테이트 부부였던 거죠.  그날 그곳엔 임신 8개월의 샤론 테이트와 몇 명의 지인들뿐, 애당초 찰스 맨슨과는 티끌만큼의 연관도 없는 엉뚱한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그런데도 LSD 마약에 절어 있던 이 네 또라이들은, 기어이 일을 저질렀습니다.  운 나쁘게 이 날 이 집에 물건을 팔러 왔던 18세 소년 스티븐 패런트를 제일 먼저 총과 칼로 즉사시켰죠.  유명 헤어 디자이너 제이 세브링, 커피회사 상속녀 아비게일 폴저, 시나리오 작가 보이첵 프라이코프스키를 차례차례 칼로 수십 번씩 난자해 거실에서 참혹하게 살해했어요.  임신부였던 샤론 테이트가 가장 마지막이었습니다.  제발 뱃속의 아기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했던 만삭의 샤론 테이트에게 이들이 가했던 끔찍한 만행은... 차마 이곳에 글로 옮겨 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시체를 거실에 보란 듯이 매달아 놓기까지 하고 사라졌던 이 인간 말종들은 경찰에 체포된 후에서야 자신들이 그 집에서 살해한 인물들이 '유명인'들이었단 사실을 알았다고 해요.  그래서 혹시 당혹해했냐고요?  아니요, 자신들이 세상에 더 주목받을 수 있겠다며 환호하며 기뻐했다고들 합니다.  재판석에서도 내내 웃으며 노래를 부를 정도로 죄의식이라곤 아볼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사이코 패거리들이었어요.


  이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을 비롯한 여타 수많은 범죄 혐의들로 이들은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만 이듬해 1972년에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형이 폐지되는 바람에 모두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죠.  분통 터지게도, 이들은 이후 최근까지 여생을 '편안하게'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일부는 자연사했고, 아직 복역 중이기도 해요.  이 모든 사이코 짓들을 사주한 가장 나쁜 XX  찰스 맨슨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음반을 내고, 책을 집필하고, 자신의 팬임을 자처하는 젊은 여성과 심지어 옥중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으니까요.  어이없지만 이 미친놈 역시 2017년 11월에 평화롭게 감옥에서 자연사했습니다.  1969년 그 무더웠던 여름밤,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 다섯을 무참히 살해해놓고도 말이죠.  아니, 실은 다섯 명이 아니었어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하고 생명이 끊겼을 샤론 테이트 뱃속의 태아까지 감안하면, 그 미친 떨거지들한테 그 날 살해당한 무고한 희생자는 무려... '여섯'이었던 겁니다.

 





자네 한때 꽤 잘나갔지만



       

이젠 한물갔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아주 그냥 내가 퇴물이라고 뼈를 때리는구만




자넨 여전히 멋지다고, 친구




그녀처럼 말야






  2017년 7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아홉 번째 작품에 대한 관련 보도가 있었습니다.  희대의 범죄자 찰스 맨슨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는 소식이었죠.  당시 각본은 이미 거의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었어요.  그를 영화상에서 다루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됩니다.  바로 서두에 언급한 '폴란스키가 살인사건'이죠.  8개월 만삭의 여배우와 지인들이 한꺼번에 살해되어 당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렸던 그 사건.  기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름 아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어요.  이러한 목소리들에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이 만들게 될 신작에서 초점이 맞추어질 부분이 '찰스 맨슨'이 아니라 '1969년도의 할리우드' 그 자체라 밝혔었죠.  찰스 맨슨에 관련된 사건들이 주 플롯이 아니라고 언급했습니다.  정확히는 1960년대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말이에요.  그러나 천재와 변태, 양 극단을 오고 가는 감독의 연출 성향을 감안하면... 더 아리송한 코멘트로 느껴졌어요.  

여하튼 일찌감치 샤론 테이트 역할로 마고 로비가 낙점되고, 두 남자 주인공으로 톰 크루즈브래드 피트가 물망에 올랐었습니다.  그러나 스케줄 사정상 톰 크루즈 대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최종 캐스팅되었죠.  제작비 9,000만 달러를 들여 촬영된 이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2019년 7월에 개봉해 북미에서만 1억 4천만 달러, 전 세계 총 3억 7천4백만 달러의 성공적인 흥행수입을 거뒀어요.  언론과 평단의 반응도 꽤 좋았습니다.  그래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0개 부문의 후보로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습니다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경합해 결국 남우조연상과 미술상 2개 트로피에 만족해야만 했던, 비운(?)의 작품이기도 했죠.    


  한데 이 작품을... 생각보다 꽤 오래 감상하지 못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2019년 9월에 개봉했었고, '기생충'으로 시끌시끌했던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이 영화가 계속 함께 부각되었음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단 말이죠.  2003년작 '킬 빌' 이후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을 극장에서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모든 작품들을 별도로 DVD 혹은 블루레이로 꼬박꼬박 구입해 소장하고 있어요.  특별히 그중 '킬 빌' 시리즈나 '바스터즈-거친 녀석들', '장고-분노의 추적자', '헤이트풀 8'은 심심하면 꺼내서 보고 또 보는 작품들이라 일부 장면들의 대사를 다 외우고 있을 정도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항상 플레이 리스트에 올려다 놓고서 망설이다 다른 영화들로 바꿔버리길 일쑤였습니다.  결국 이 작품을 처음 감상했던 게 두어 달 전쯤, 2020년 11월이었으니 극장 개봉 후 1년 2개월이 지나서였죠.  연출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6년)을 빼곤 이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 '쿠엔틴 형님'의 작품을 뒤늦게 챙겨보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보고 나서 느낌이 어땠냐고요?  

2019년 극장 개봉을 놓쳤던 걸, 먼저 '형님'께 맘속으로 깊이 사죄했습니다.  첫 감상했던 그 다음날 밤 다시 연속으로 한번 더 감상했었죠.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지난달에 또 감상했었으니 1년 2개월 동안 미루던 영화를 한 달 동안 내리 세 번을 연달아 감상하고 있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딱 잘라 말하자면 가장 '쿠엔틴 타란티노스럽지 않은' 영화지만... 그래서 여러 가지 면에서 더 마음이 가는 작품이었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장면들과 대사들을 곱씹을수록, 제겐 더욱 그랬어요.





      

꼬마야 너 연기가 뭔지 아니?  라떼는 말이야

   



아니, 사실 난 한물간 쩌리에 불과해




아니요, 아저씨 실은




자넨 여전히 멋지다니까 친구




그녀처럼 말이지






  이 작품을 한동안 손대지 못했던 건... 애초에 이속에 찰스 맨슨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였어요.  초기 제작 단계에서부터 그런 얘기가 들렸을 때 좀 불편했었습니다.  1969년 미국 할리우드란 시공간적 배경에, 실제 인물이었던 찰스 맨슨샤론 테이트가 등장하는 작품 이라면 어떤 '그림'이 펼쳐 질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잖아요?  게다가 이 작품의 감독이 바로 다름 아닌 쿠엔틴 타란티노.  그가 누군가요.  B급 취향에, 온통 F로 시작해서 K로 마무리되는 찰지고 거친 대사들, 극단적인 캐릭터들로 가득한 '피칠갑' 파티(?)가 그의 전매특허나 다름없었습니다.  극히 평범해 보이는 상황들에서도 서서히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쌓아가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에너지'를 확 폭발시켜 버리는 그 스타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니까요.


  당연히 이러한 연출 방식들은 개인적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단으로 나뉘기도 합니다만, 찐팬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면... 그가 즐겨 그려내는 극단적 폭력묘사들은 그 나름의 미덕(?)을 늘 보여 왔어요.  얼핏 거칠게만 보이는 그의 영화들 속엔 그 나름의 일정 법칙들이 있습니다.  작품들 속의 갈등 구조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악과 악끼리의 대결구도들로 주로 그려지죠.  조금 나쁜 놈과 아주 나쁜 놈들 간의 싸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주인공이나 빌런들이나 모두 다 조금씩은 거칠고 영악하고 비정상적이에요.  정형적인 시간 순서로 서사를 그려내기보단 과거, 현재의 시점을 뒤섞고 인물 각자의 시점으로 다시 플래시백 되는 비선형적 서사 구조를 즐깁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인물들이 어찌나 말빨들이 드센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그 장광설들을 듣고 있다 보면 '대체 내가 이 영화를 왜 보고 있나'라는 현타가 올 수도 있어요.  취향에 따라 분명 그럴 수 있습니다.

한데 지나 보면 그 쓸데없어 보였던 대사들 속에 많은 암시와 복선뿐 아니라, 다양한 레퍼런스들에 대한 무궁무진한 패러디나 오마주들을 담고 있는 거죠.  그렇게 차근차근 캐릭터들과 사건들에 대한 감정을 희화화시켜 쌓아 올린 상태라 종종 클라이맥스에서 터뜨리곤 하는 그 격렬한 폭력씬들에선 오히려 어떤 후련함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그의 지난 대부분 작품들 속에서 그 찰진 폭력의 대상이 되었던 존재들은 하나같이 다 '그래도 될', '그래도 싼' 쓰레기 같은 존재들이었거든요.  '데쓰 프루프'에선 연쇄살인마,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선 히틀러와 골수 나치 주의자들, '장고-분노의 추적자'에선 노예 농장주와 인종차별주의자들, 심지어 모두가 나쁜 놈들인 '저수지의 개들'이나 '킬 빌', '헤이트풀 8'도 악인들 서로가 서로를 심판하고 파멸하는 데서 오는 그 통렬함이 궁극의 쾌감으로 남겨지는 그런 작품들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설정은 어떤가요.  이 영화에 등장할 범죄자 찰스 맨슨과 희생자 샤론 테이트는 실제 인물이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전작들과는 '그림'이 애초에 다르죠.  악인들끼리의 다툼이나 파멸이 아니라 명백히 미친 사이코 XX와 무고한 희생자의 구도잖아요.  우스꽝스럽게 풍자될 대상도 애초에 아니에요.  결국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든 작품에 담길 수밖에 없다면 끔찍한 그 '사건의 현장' 또한 우리 눈앞에 펼쳐져야 하는 겁니다.  그 장면들이 극 사실주의로 디테일하게 그려지는 것도 너무 불편하고, 그렇다고 이전 작품들처럼 폭력의 이해 당사자들 모두가 익살스럽게 희화화되는 건 더 용납하기 힘든 부분이죠.

영화를 직접 보기 전까진, 당최 쿠엔틴 타란티노가 무엇을 이 영화 속에 담아낼지 짐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대충 떠올렸던 설정은 이러했었어요.  실제 샤론 테이트와 정말 흡사한 느낌이 드는 마고 로비가 그 역할 그대로 연기를 하고, 연기력 출중한 두 주연 배우중 한 명은 찰스 맨슨 역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광기 연기야 뭐 두말할 나위가 없고, 브래드 피트는 머리 장발로 기르고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기르면 비주얼부터가 찰스 맨슨 그대로잖아요.  둘 중 하나가 그렇게 미친놈 찰스 맨슨을 연기하고, 나머지 하나는 그를 잡는 형사 같은 캐릭터를 맡아서 당시 시대상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내는 그런 느낌으로... 예상했던 거죠.  그저 너무 보기 불편한 장면들이 넘쳐나지 않기만을 바랐었습니다.






발 모가지 딱 내려라, 확 분질러 버리기 전에



    

아련한 시절들에 대한 예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




그리고, 지켜야 했던 것들에 대한 예의






  결론적으로 제게 이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예상 밖'의 작품이었습니다.  1969년 할리우드, 실제 지명들과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극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브래드 피트는 가상의 인물이에요.  그 시절 영화계에 섞여 지냈을 법한 두 남자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로 등장합니다.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과거 인기 드라마나 영화에 주연으로 각광받았지만 이젠 젊은 배우들에게 밀려 악역을 전전하게 된 한물간 스타죠.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는 그와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스턴트 대역 배우예요.  이 두 가상의 인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쩌리로 점점 밀려나는 릭 달튼이 여기저기 영화 관계자들을 접하며 작품을 따내고, 연기를 하고, 커리어를 이어가는 일련의 이야기이고, 동업자를 넘어 친구에 가까운 스턴트 대역 클리프 부스가 그와 함께 하는 이야기.  두 사람의 그 '할리우드 생존기'를 내내 지켜보다 보면 점점 의문이 들게 됩니다.  '이거 원래 찰스 맨슨, 샤론 테이트 얘기라고 하지 않았었나?'라는 그런 의문.


  맞아요.  찰스 맨슨샤론 테이트도 나옵니다.  한데 찰스 맨슨은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딱 한 장면 등장하고 사라져요.  이름을 밝히지도 않아서, 그가 나왔다는 걸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샤론 테이트는 어떤가요.  영화 중간중간에 계속 등장하고는 있습니다만 주인공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들의 중심 서사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남편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보내는 일상의 모습들만 이따금씩 보여줄 뿐이죠.  데이트를 하고, 파티에 참석해 지인들을 만나고, 집안일을 하고, 극장에서 자신이 등장하는 영화를 몰래 지켜보며 행복해하는 일견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모습들로만 드문드문 교차되어 비칠 뿐입니다.  

두 남성 주인공들과는 단 한 번도 마주치는 일 없이 영화가 그렇게 막바지로 흘러가다 보면, 살짝 지루하기까지 했던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이야기가 대체 이 샤론 테이트와 뭔 상관일까 하고 갸웃거리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심지어 일반적인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치고도 굉장히 '따분할' 정도로 전체 이야기들의 흐름이 순하고 밋밋하게 느껴집니다.  영화가 그렇게 종반부로 쭉 흘러가고 극 중 날짜가 1969년 8월 8일 '그날 밤'에 가까워지면,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밀려오게 되죠.  실제 사건의 분위기로 짐작해볼 때 대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한 피칠갑을 보여주며 영화를 충격적으로 마무리하려는지라고, 그렇게 말이에요.


  드디어, 길고 길었던 160분의 상영시간 중 마지막 15분가량의 '폭풍'이 지나가고 살짝 멍하게 엔딩 크레딧을 지켜보게 됩니다.  첫 감상에서의 그 '멍함'은... 사실 예상과는 전혀 달랐던 이 작품의 그 '엔딩'에서 오는 묘한 여운 때문이었어요.  예상대로라고도 말할 수 있고 반대로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도 말할 수 있는 그 엔딩으로 인해서 살짝 늘어진다고도 느꼈던 영화 전체의 뉘앙스가 완전히 다시 재해석됩니다.  실제로 알고 있던 사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실을 교묘히 비틀어버린 그 '대체 역사'를 통해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와 추모를 '샤론 테이트'란 비운의 여배우에게 표하려 한 거죠.  마치 장광설 같았던 초반부 145분간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 마지막 15분간 '엔딩'에서의 감정적 뒷받침을 위한 밑밥이자 초석이었던 겁니다.  어이없게 따스하기까지 한 이 작품의 마무리를 지켜보면서, 실제로 '그날 밤'에 일어났던 그 참극을 겹쳐 떠올려보면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훈훈한 감동마저 스며들어요.  이렇게 '그 사건'을 교묘하고도 영민하게, 그리고 속시원하게 확 비틀어버릴 줄 몰랐었죠.  역시 이런 능구렁이 같으니라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연이어 감상했었던 그다음 날 밤, 그냥 무심히 흘려보냈던 이 작품의 모든 장면들과 대사들이 새삼스레 더 아련해짐을 느낍니다.  길고 긴 사족으로만 느껴졌던 주인공 릭 달튼의 '퇴물 배우 생존기' 역시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죠.  예전 같지 않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한없이 패배감과 자괴감을 내비쳤던 릭 달튼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친형제처럼, 멘탈 바스러지는 릭 달튼을 챙기는 츤데레 클리프 부스의 모습도 새삼 더 정겨워지죠.  우리와는 먼 세계의 할리우드 배우들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은 우리 삶도 어느 때가 되면 이들과 비슷할 때가 많습니다.  정점에 올라서는 그 자체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건...  어느새 정점에서 멀어져 '내가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걸 순연히 받아들여가는 것이죠.  끝없는 자기비하에 빠져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던 릭 달튼이 스스로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촬영장에서 다시 말 그대로 '최고의 연기'를 보이는 장면은 그래서 새삼 더 의미가 깊어요.  자, 그들 역시 우리처럼 이 험한 세상 살아남으려고 참 부단히도 고군분투하는 게 아닐까 싶은 동질감이 슬슬 들어갈 때쯤,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그 '마지막 그림'을 느닷없이 우리에게 툭 내보였던 겁니다.  우연히도 이 두 남자가 샤론 테이트의 옆집에 살았다면, 그래서 1969년 8월 8일 그날 밤, 그 또라이 히피 무리들이 샤론 테이트 일행이 아니라 이 둘과 딱 맞닥뜨렸다면 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를 즐겁게(?) 지켜보게 하는 거죠.  그러고 보니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들의 핵심 코드는 '의외로' 항상 그랬었어요.  권. 선. 징. 악.  물론 그 표현방식이 좀, 실은 많이, 과격할 뿐인 거죠.


  폭풍 같은 악동 시절을 보낸 젊은이가 어느덧 희끗희끗 흰머리 가득한 중년의 말미에서 위트 있게 들려주는 그런 '추억담' 같은 느낌의 작품입니다.  1969년 8월 8일의 어느 '사건'으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와 만들어진 영화지만, 이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그 '사건' 자체를 충실히 재현하는 데엔 애초부터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거죠.  실은 오히려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예의'와 '헌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 곳곳에서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이 사랑했던 한 시대에,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라는 일에 대해, 그리고 그 일에 종사해 온 모든 이들에게 표하는 예의와 헌사의 감정들을 가득 담고 있어요.  

이 작품에서 릭 달튼을 연기했던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할리우드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이죠.  이 러브레터 속에서, 빛나던 여배우 샤론 테이트는 여전히 계속 살아가게 될 겁니다.  한 인간이자 행복한 영화인으로서.  그리고 더불어 그렇게 토닥거려 주는 듯해요.  이 힘든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참 빡세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말이죠.












*위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모든 이미지들의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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