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아들램은 요정이나 괴물들이 나오는 판타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고 나면, 자기 방 문 앞까지 함께 가달라고 한살 많은 누나에게 그렇게 조르곤 했습니다. 씩씩하게 혼자 방에 들어가 보라고 살살 꼬드겨봐도 거실 모퉁이 어둠 속에 시커먼 뭔가가 항상 웅크리고 서 있는 거 같댔어요. 감동에 겨워 마법의 세계에 푹 빠져든 꼬맹이들에게 세상에 환상의 존재 같은 건 애초에 없다고, 그런 건 영화나 만화 속에서나 있는 거라고 또 딱 잘라 말해주긴 좀 그랬습니다. 아빠 엄마처럼 다 큰 어른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신비한 것들이 세상엔 함께 있지만 만약 우리 가족과 한 집안에 살고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를 지켜주는 '착한' 요정일 거라, 매번 안심시켜주곤 했었어요.
가령 예를 들면 어둠 속에서 숨어 있다 불을 켜면 샤라락 사라지는 숯검댕이 먼지 요정들, 아니면 작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집안일을 도와주는 집요정 '도비' 같은 착한 도깨비들일 거라고 말이죠. 절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라면서도 누나 손을 잡아끌고 화장실에 가 볼일을 보고 베란다 등을 한참 켜놓고서야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아침까지 베란다 조명을 끄지 말라고는 했지만, 곧 아들램이 잠들어 푸푸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슬며시 불을 끄고 방문을 닫아주곤 했죠.
뭐 아들램만 유독 그랬을 리가 있나요, 지금 보면 그 조악한 특수효과에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저도 꼬맹이들만 할 땐, 그 무시무시했던 '전설의 고향' 주제곡만 들어도 밤중에 화장실을 못 갈 정도로 무서워했던 거 같아요. 조금 더 옛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가 어린 시절 들었던 신기하고 기묘했던 이야기들은 아빠 엄마랑 시골 친척 할머니 댁에 놀러가서 늦은 밤 잠결에 들었던 그 시골 '민담'들 속에 다 있었습니다. 불공드리러 올라가던 일가족이 개를 잡아먹고 절에 들어가다 큰 액운을 만났다는 이야기, 시골에 갓 부임해온 처녀 선생님이 원인 모를 몽유병에 시달리다 굿으로 액땜을 했다는 이야기, 혹은 마을의 커다란 나무가 신령의 모습으로 동네 아이들을 지켜준다는 그런 이야기들.
커다란 놀이터 같았던 그 옛 할머니 댁 시골에서 종일 뛰어다닌 바람에 눈꺼풀이 막 감기면서도 모기향 내 가득한 툇마루에 누워 훔쳐 들었던 그 이야기들 속엔 착한 귀신, 못된 유령, 무서운 도깨비들과 그리고 익살스러운 수호신들이 마구 뒤엉켜 그 뜨거운 여름밤을 끝내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거죠. 푸르름 가득했던 한낮의 풍경과는 달리 불빛 한점 보이지 않던 그 시골집 뒤편 숲 속 어둠 속엔, 마주치면 온몸이 얼어버릴 거 같은 무서운 존재들도 있어 보였지만 왠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린아이들을 포근히 지켜보고 돌봐주는 장난꾸러기 도깨비들도 분명 있을 것만 같았어요. 바로 그 착한 도깨비들이... 삐걱거리는 툇마루에 누워 잠을 뒤척이는 나를 많은 나쁜 것들로부터 밤새 온전히 지켜주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였죠.
도토리나무 덩굴 지나 땅 속 깊은 곳
넌 이름이 뭐니?
아, 토토로라고?
환승입니다
아저씨, 이태원 가나요?
1980년대 후반, 제작 당시만 해도 이 작품 '이웃집 토토로'는 천덕꾸러기 신세에 가까웠습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를 성공시키고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천공의 성 라퓨타'(1986년)까지 연이어 호평을 받았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음 목표는 막연한 서양풍의 시공간이 아니라 현실 일본의 생활공간을 무대로 하는 그런 얘기였죠. 1972년에 제작했던 동물 주인공 만화 '팬더와 친구들의 모험'이라는 34분짜리 극장판 단편의 각본과 캐릭터 디자인들을 기본 바탕으로 해서 숲 속 도깨비와 아이들이 친구가 되는 그런 내용을 담으려 했었습니다.
한데 막상 이 기획안을 본 제작사는 난색을 표했어요. 1950년대, 그것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그려낸 심심한 도깨비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거란 이유였습니다. 이전작들처럼 거대한 세계관, 드라마틱한 서사에 스펙터클한 액션을 담은 그런 작품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했을 테죠. 그래서 이 '이웃집 토토로' 기획안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 프로젝트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당시로선 만족할만한 수익을 끌어낼 정도의 개별 작품으로 보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던 거예요. 약 1년의 제작기간 동안, 정반대의 정서를 담은 두 작품 '이웃집 토토로'와 '반딧불의 묘'가 각각 90분가량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1988년 일본 극장가에 동시상영으로 개봉되었죠. 지금의 시선으론 참 의아하지만 개봉 직후에도 이
'이웃집 토토로'는 극 중 메시지가 강렬했던 '반딧불의 묘'에 살짝 밀리는 양상으로도 보였습니다. 두편을 연이어 관람하는 동시상영의 형태였기 때문에 그 두 편의 수익으로 나누면 실제로는 흥행으로도 적자를 본 셈이었어요.
하지만 이 작품 '이웃집 토로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용하지만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TV 방영이 되면 될수록 비디오테이프, DVD 등 부가 매출이 점점 더 급증했던 거죠. 홍보를 위해 별도로 만들었던 토토로 봉제 인형이 그해에만 공식 집계로 67만여 개가 팔려 나갔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해요. 개봉 후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가 그해 모든 일본 영화 중 단연 베스트 1위로 이 작품을 선정했고 당시 모든 극영화들을 제치고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초로 모든 국내 영화제들을 석권했었습니다. 이후 모두 잘 아시다시피 이 '토토로' 캐릭터는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지브리 스튜디오를 상징하는 대표 마스코트가 되었어요. 지금도 주기적으로 일본에선 몇 년마다 한 번씩은 특별 편성되어 TV에서 빠지지 않고 방영되고 있고, 그때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본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국민 애니메이션으로 '추앙' 받고 있는 그런 작품이기도 합니다.
강강술래
호이짜 호이쨔
아 거긴 민감한 데니까 꼬집지 말라고
이 작품이 기획 단계에서 하나의 독립 프로젝트로 인정받지 못했던 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습니다. 그다지 흥밋거리가 되지 못할 거랬죠. 그럼, 실제 완성된 작품은 어땠을까요. 맞아요,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시골에서 도깨비와 두 자매가 만나는 게 전부인 이야기. 1950년대, 흑백 TV나 전화기도 제대로 없었던 도쿄 인근 농촌 마을에 대학 연구원으로 있는 아빠와 11살 언니 사츠키, 이제 4살이 된 여동생 메이, 세 사람이 이삿짐 트럭을 타고 이사를 오는 것으로 시작해요. 아픈 엄마가 퇴원하면 함께 살 집으로 이 시골의 낡은 저택을 구해 들어왔고 여기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다 도토리나무 요정 '토토로'를 만나는 겁니다. 그렇다고 다 함께 무슨 엄청난 모험과 환상의 나라로 떠나느냐, 그런 얘기도 아니죠. 따져보면 저 토토로가 나오는 장면도 많지 않아요. 소소한 에피소드 몇 가지를 보여주다 어느새 '토토로~토토로~'라는 중독성 강한 엔딩곡이 흘러나오며 막을 내리죠. 이전작들에서 나타나는 절박한 주제의식들은 이 작품 속에선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주도권을 두고 대립하거나 심각한 표정의 주인공들이 세상을 구할 듯이 쌈박질을 하는 장면들은 애당초 없어요. 등장인물들의 수 자체도 몇 안되지만 이른바 나쁜 사람, 악한 캐릭터가 아예 없죠. 작품 속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조차도 길을 잃어버린 4살 여동생 메이를 찾아서 온 동네 주민들과 언니 사츠키가 반나절 가량 헤매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지금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연령층으로부터 폭넓게 사랑을 받아오고 있어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보편적 감성 코드에도 실은 가장 잘 부합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가며 다시 감상해 볼수록,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 새삼스러운 사실이... 더 벅찬 감동을 안겨주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할 겁니다. 물론 언제 어느 때 감상해도 잠자고 있던 토토로와 메이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라든가, 비 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나란히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장면, 고양이 버스에 올라타 바람처럼 들판을 내달리는 장면들에선 매번 가슴이 넘실대지만 알고 보면 이 작품의 진짜 매력적인 장면들의 핵심은 바로 어린 두 자매, 사츠키와 메이에게 있었던 거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신비의 존재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 신비의 존재가 있다고 믿었던 그 어린 시절의 아련함이 도드라지게 다시 눈에 들어올 겁니다. 어라, 저런 장면들을 내가 유심히 봤었나 싶은 소소한 장면들에서 느닷없이, 뭔가 뜨거운 게 목에서 올라와 울컥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는 얘기죠.
보이지 않는 환상의 세계보다 우릴 더 아련하게 하는 건
소박한 자연의 풍경들과
무심한 듯 툭 내미는
소소하지만 따뜻한 마음들
대체 이게 뭐라고
스르륵 눈물이 나는 거냐고
이미 오래전에 이 작품을 감상해서 굳이 다시 안 봐도 되신다고요? 에이, 그럴 리가요. 출신 지역, 지지 정당, 남녀, 세대로 나뉘어서 매일 물고 뜯는 휴대폰 속 뉴스들 그만 다 접으시고 오랜만에 이 '이웃집 토토로'를 다시 챙겨 감상해보시죠. 아이들 보여주려고 억지로 함께 앉아있다 생각 마시고 평범한 드라마 한편 본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착하게 생긴 아빠와 두 자매가 재잘거리며 이삿짐 트럭을 타고 달리는 그 첫 모습에서부터, 빠져들게 되실 테니까요. 기억하시다시피 토토로는 사실 꽤 시간이 지나야 그 오동통한 자태를 드러낼 겁니다. 한데 굳이 그 '토토로 일당'들이 등장하지 않아도 이 작품의 그 '별일 없어 보이는' 매 장면들이 하나하나 힐링으로 다가오기 시작해요. 레드썬 낡은 시골집이지만 아이들은 설레서 마냥 뛰어다니고, 동네 이웃들은 무심한 듯 따뜻하게 이 아이들을 챙기고 있어요. 결국 따져보면 시골 수호신 도깨비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어린 두 자매가, 한 뼘씩 더 마음의 키가 자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열한 살 언니는 아빠의 도시락을 매일 직접 싸며 미운 네살 어린 여동생을 살뜰히 챙겨요. 늘 아빠의 일이 잘 되길 빌고 있고, 비가 오면 먼 길을 걸어 아빠가 돌아오실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몇 시간이고 기다리죠. 아파서 계속 입원 중인 엄마가 그리우면서도 제대로 내색 한번 않고 터져 나오는 울음조차 내내 참고 있어요. 이 작품을 다시 보며 순간순간 목이 슬며시 메이는 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저 신비의 존재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있을지 모른다는 아련함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숱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우린 모두 저 시절들을 거쳐 이렇게 자라와 여전히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시골 마을 두 아이의 저 소박한 모험을 통해 다시 떠올려볼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의 아이들도, 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만의 신비로운 세계 속에서 쑥쑥 자라, 언젠가 이렇게 그 아련함을 떠올리게 될 겁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램은, 이제 더 이상 누나에게 방문 앞까지 함께 달라고 조르지 않아요. 그러지 않은지 꽤 되었죠. 처음 이 '이웃집 토토로'를 유치원생 무렵에 봤을 땐 즐겁게 보고도 뭐가 무서웠던지 방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었습니다. 귀신을 무서워 하지 않게 된다는 건... 더 이상 착한 천사나 요정을 믿지 않는다는 것과 같겠죠. 이제 아들램의 관심은 수많은 청불 딱지 영화들과 엽기코드 가득한 예능 프로들, 더 많이 죽여야 이길 수 있는 그 온라인 게임들에 더욱 가 있을 겁니다.
실은 정말 오랜만에 제가 이 작품을 꺼내 보고 있던 지난주에 아들램도 학원에서 돌아와 앉아 잠시 함께 감상했었어요. 밭에 심은 도토리가 한밤중에 쑥쑥 큰 나무로 자라나는 그 장면쯤에서부터 고양이 버스가 나오는 장면까지 물끄러미 지켜보더군요. 남자 둘이서 그렇게 한동안 지켜보다가 아들램은 스르륵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어요. 여전히 흥미는 있어 보였지만 그다지 큰 감흥은 없어 보였습니다. 지금이 딱 그럴 시기죠. 이제 세상에 저런 존재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막상 그 세상이 어떤 곳인지는 알지 못하는... 바로 그 딱 중간쯤의 시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것, 느끼지 못했던 것, 이제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그건 지금도 존재한다고 마음속 깊이 믿으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라고 말이죠. 혼자 울컥울컥하며 나머지 장면들을 다 감상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오랫동안 딸램과 아들램은 이 애니메이션을 잊고 지낼 거예요. 그러다 대학교에 다닐 무렵쯤에 불현듯 떠오를 겁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 자신들을 닮은 꼬맹이들이 어린이집에 갈 무렵쯤이 되면 또 꺼내 함께 보겠죠. 그러다 수많은 삶의 부침을 지나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 해질 무렵, 꼭 다시 한번쯤은 꺼내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곤 울컥 하겠죠, 저처럼.
왜 그런 줄 아세요?
토토로는 말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1,300살이 넘는 도깨비래요.
그래서 저 멀리 도토리나무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그렇게 나와 당신, 우리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