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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Jul 05. 2020

삶이 당신의 발 밑에서 미소 지을 때.

영화 "고양이 케디". (Kedi)



2016년 12월 22일.   녀석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찾아오다






  무시무시한 한파가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직전이었던 2016년 12월 22일 밤.  캣맘이셨던 장모님의 품 안에 안겨서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저희 집에 들어왔습니다.  유달리 눈에 밟히는 녀석이었는데 가까이 손 내미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쏙 안겨오더라시네요.  그땐 고양이를 어떻게 들고 안아야 할지도 몰라서 저는 당황했습니다.  빙 둘러싼 온 식구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녀석은 침대 밑에 들어가 몇 분 동안 눈치를 살피더군요.  그러다 슬며시 걸어 나와 신기하게도 가족들이 둘러앉은 한가운데에 얌전히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처음 들어오는 낯선 공간,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10분도 안되어서 원래 제 집인 양 그렇게 편하게 자리 잡았어요.


  이 당시 열 달 전쯤, 열세 살짜리 코카스패니얼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할 거 같아 먹이 그릇 하나 남겨두지 않고 다 치워버린 상태였습니다.  엉겁결에 맞게 된 이 길냥이 새 식구로 인해서 가족들 모두 느닷없는 비상사태였어요.  장모님과 꼬맹이들은 녀석을 바로 욕실로 데려가 목욕을 시키기 시작했고 집사람과 저는 부리나케 마트로 달려가 고양이 용품들을 급히 구입했습니다.  마트 직원분께 여쭤보고 구입한 그 용품들을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이 사교성 좋은 녀석은 벌써 꼬맹이들의 품에 안겨 장난을 치고 있더군요.  사 가지고 온 사료를 한 그릇 순식간에 비우고는 화장실 용기에 깔아 놓은 모래에다 깔끔히 첫 용변을 보기도 했어요.  들어온 지 한 시간여만이었죠.


 순식간에 후다닥 정신없이 지나갔던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운 집사람과 저를 뻔히 올려보던 녀석은 고양이다운 사뿐한 점프로 침대에 휙 올라왔습니다.  안돼, 내려가라며 살짝 손으로 밀어내려는 순간 녀석이 누워있던 제 가슴에 상체를 기대고 고개를 파묻고는 나지막이 골골골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앞발을 모아 제 가슴을 살짝살짝 꾹꾹 눌러 댔습니다.  근 십여분 가까이 그랬어요.  

"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닐까?"라고 집사람에게 물으니 그릉그릉 거리는 그 소리는 일명 고양이들의 '골골송',  앞발로 살짝살짝 리드미컬하게 누르는 그 동작은 '꾹꾹이'라고 한답니다.  이른바 고양이들이 가장 기분 좋을 때 하는 애정의 표시라고 말이죠.


  뭔가 잘 모르지만... 그 첫날밤, 낯선 곳에서 느끼는 녀석의 안도감과 편안함이 그 몸짓과 소리를 통해 제 몸으로도 포근히 전해져 오는 느낌이긴 했어요.  그러고 보니 막상 그땐 잘 몰랐습니다.  이후로 제가 이 녀석의 '골골송'과 '꾹꾹이'를 아침저녁으로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게 될지, 그리고 이 녀석으로 인해 우리 가족의 일상이 얼마나 풍요로워질지 말이에요.  





         

       



귀여운 사기꾼 '사리'



'사리'의  네 마리 아깽이들









  2017년 미국 뉴욕, 단 한 개의 상영관에서 '케디'(Kedi)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어요.  터키 이스탄불 태생의 여성 감독 제다 토룬이 촬영감독인 남편과 함께 완성시킨 이 장편 다큐멘터리는 그 열악한 개봉 상황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평단,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큰 호평을 받기 시작했죠.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의 신선도 지수는 무려 98%,  영화 전문지 인디와이어로부터는 21세기 최고의 다큐멘터리 BEST25중 한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고양이 케디'라는 제목으로 2017년 9월에 개봉했었어요.


  다큐 영화로서 이렇게 만만찮은 반응을 불러왔던 작품이라 깊이 있는 학술적 내용들로 딱딱하게 진행되진 않을까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위 대문사진에서 보이는 느낌, 딱 그대로예요.  포근하고 부드럽고 따스합니다.  실제로 터키 이스탄불에서 11살 때까지 고양이들과 함께 자랐던 제다 토룬 감독은,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스탄불 시민들과 길고양이들의 모습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시종일관 이 작품 속에 쭉 담아내고 있죠.

       

  사리, 뱅귀, 아슬란, 쁘시꼬바, 데니즈, 감시즈, 두만.  제각각 다른 삶의 방식으로 시민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살아가고 있는 7마리 길고양이들이 극 중 주인공으로 차례차례 등장합니다.  일반적인 여행지로서도 매력적인 도시 이스탄불이지만 거리를 사뿐사뿐 오가는 그 고양이들의 눈높이와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그 풍경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색다르게 와 닿기도 하죠.  

처음 감상했을 땐,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다양한 그 고양이들만 주로 눈에 들어왔어요.  그 모습만 내내 들여다봐도 물론 충분히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귀엽습니다.  한데 그런 장면들로만 쭉 일관된다면 사실 이 다큐멘터리는 인터넷에서도 매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심쿵 고양이 영상'들의 나열에 불과하겠죠.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어조로 생명의 소중함, 생태계 보호와 같은 구호들을 굳이 강요하진 않습니다.  그저 삶의 순간들을 그 길고양이들과 함께 더 기쁘게,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그 미소 띤 얼굴들을 통해 '공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죠.  맞습니다.  두 번째 감상에선 길냥이들과 함께 하는 이스탄불 시민들의 그 환한 표정들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어요.






도도한 냥블리, '쁘시꼬바'.




  









  'TV 동물농장'과 같은 다양한 관련 프로그램들 속에서 마치 작은 인형 같은 동물들의 그 '귀여움'들을 지켜보는 건 언제나 즐겁죠.  하지만 가끔씩은 차마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불편한 현실들을 바라봐야 할 때도 있어요.  유기되거나, 방치되거나, 학대받거나 심지어 도살되는 모습들.

특히 고양이들을 불길함의 상징이나 혐오스러운 존재로 보는 시선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지금도 길냥이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강해요.  더럽고, 불결하고, 음식 쓰레기 봉지를 뜯어서 거리를 어지럽히고,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로드킬의 대상이 되곤 하는 '해충' 같은 느낌?  그들에게 일정한 먹이와 쉼터를 제공하는 이른바 '캣맘'들을 바라보는 시선들 또한 아직까지는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이럴 시간 있으면 집에 가서 밥이나 차리라는 핀잔도 가끔 들어야 하는... 그저 참 유별난 사람들이라고도 말이죠.  


  냉정히 따져보면, 이런 길냥이들을 포함한 동물들을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라는 문제는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구속이나 강요의 차원으로 보기는 힘들어 보여요.  누군가는 화초를 사랑해서 직접 가꾸지만 또 누군가는 아무 감흥이 없을 수 있듯이, 어쩌면 개인적 취향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더 현실적일 수도 있습니다.  극성스럽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도 자유지만 혐오감을 느껴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집마다 반려동물을 키워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죠.  동물을 좋아한다고 무조건 더 선하고 착한 사람인 걸까요?  동물에 대한 태도가 인간의 선함과 악함을 가늠해보는 수많은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믿고 싶습니다만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듭니다.  정말로 그저 '취향'의 문제에 불과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대상을 거리낌 없이 파괴해도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우리 곁엔 여전히 있어요.  굳이 길냥이의 문제에만 국한되진 않아 보입니다만 혐오스럽거나 불쾌하다는 이유로, 심지어 재미로, 공공연히 '끔찍한 일'을 목격하게 되는 일들이 아직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특히나 길냥이들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선 방치나 학대, 끔찍한 로드킬의 모습들이 불가피하게라도 종종 다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 작품 '고양이 케디'도 그래서 처음엔 감상을 살짝 망설였었죠.

한데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긴장시키거나 억지로 강요하지 않아요.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더불어 함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따뜻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당신의 발 밑에서 야옹 하며

           고양이가 올려다보면

           그건 삶이 당신에게 미소 짓는 거랍니다.

           행운이 찾아왔음을 느끼는 순간이고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죠."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일곱 마리 길냥이들.  더불어 함께 등장하는 이스탄불 거리의 수많은 길냥이들 역시 우리가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저 '흔한' 녀석들과 다르지 않게 생겼습니다.  누군가에게 선택되어 안락한 집안에서 살아 있는 인형처럼 예쁨 받고 SNS 사진들을 통해 '좋아요'의 대상이 되는 그 집냥이들과 똑같은 '생명'들이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종인 인간과 길고양이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는 저 멀리 터키 이스탄불의 거리 풍경들은 새삼 더 의미 있어 보이기도 해요.  

물론 그곳에서도 개인의 '취향'이 존재할 것이고, 그래서 거리의 모두가 그 길냥이들에게 각별함을 느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가던 길을 돌아와 그 작은 몸통을 발로 냅다 차 버리거나 애써 몰아 쫓아 버리려 하지는 않아요.  또 누군가는 그 '존재'들로 인해 특별한 삶의 의미를 되찾는 모습들도 보여지죠.  사업이 번창하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반자로, 잃었던 건강을 되찾게 해 주거나 또 어떤 이에겐 깊은 외로움과 고독을 치유해주는 친구 같은 그런 존재들로 말이에요.  그렇게 서로 의미를 부여하며 따스한 일상의 찰나들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저들은 더 이상 불결하고,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털 달린 '해충' 같은 존재만은 결코 아닐 겁니다.  이러한 마음들이... 과연 이 '길고양이'들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감정들일까요?  다른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보면 달라 보이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 모든 감정들에 관한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봐요. 


  지금은 하늘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코카스패니얼 강아지와의 지난 시간들이 그러했듯이, 어느 날 불쑥 찾아와 가족이 되어버린 이 길냥이 녀석으로 인해 달라진 일상의 순간들은 생각보다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부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중 하나는 매일 아침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는 녀석의 그 아침 '꾹꾹이' 에요.  정확히 오전 6시쯤이면 소리 없이 침대로 훌쩍 뛰어올라 그 따뜻한 몸을 기대어 고개를 제 가슴에 푹 파묻고 그르릉거리며 동그란 두발로 살짝살짝 꾹꾹 눌러주는 그 몸짓.  온몸으로 그렇게 '꾹꾹이'를 해주는 녀석을 꼭 안고 천천히 쓰다듬어주고 있다 보면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머릿속을 기분 나쁘게 채우던 상념들이 마치 봄날 꽃가루 휘날리듯 스르륵 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그 느낌 때문에 매일 아침 누운 채로 이 녀석이 올라오길 먼저 기다리고 있기도 해요.  식상한 말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더 많이 웃게 되고 더 많이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 작은 순간들을 통해서 말이에요.

이 작고 하얀 고양이도, 몇 달 전 우리집 막내가 된 회색 빛깔 작은 고양이도 길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던 저 수많은 녀석들 중 하나였어요.  비단 저 멀리 낯선 이국땅 터키의 이스탄불 거리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생명'들은 바로 저 대문 밖 길거리에 지금도,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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