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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프 Jun 25. 2020

우린, 다 달라요. ​

그러니 같이 좀 살아요, 제발





             "아빠,  또 고양이가 있어요."





 

 태권도 학원 다녀오는 길에 아들램이 또 버려진듯한 고양이를 봤나 봅니다.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걸리는 그 길에서 새로운 고양이가 보이면 이렇게 집에 오자마자 알려주곤 하거든요.  종종 있는 일이라 아들램도 여간해선 일일이 다 말하진 않는데 이렇게 별도로 얘기를 할 경우엔 뭔가 특이사항이 있는 거죠.  길에서 살고 있는 냥이 같지 않더래요.  하얀 고양이인데 티 하나 묻은 거 없이 깨끗하고, 지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답니다.  심지어 당장 누가 안고 데려가도 얌전히 따라올 만큼 사람을 잘 따르는 거 같아서, 아들램은 그게 오히려 굉장히 마음에 걸렸던 거죠.  


  가끔씩 듣는 얘기라 그래, 어쩌지 하고 넘기려 했습니다만 우리 집 첫째 고양이와 많이 닮았다는 말이 가슴에 콕 와 닿았습니다.  집사람과 저 둘 다 그 얘기에 얼굴을 마주 보고 엷은 한숨을 지었어요.  이 아파트 화단에 숨어 지내는 길냥이들은 절대 그렇게 사람이 다니는 산책로에 모습을 훤히 드러내진 않습니다.  때 하나 묻지 않고 깨끗해 보이는 모습에, 누가 날 좀 데려가세요라는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경계심이 없는 녀석이라면 집에서 키워졌을 가능성이 크겠죠.  집을 뛰쳐나왔든지 아니면, 혹시 버림을 받은 건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 가족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2016년 초에 열세 살 된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냈던 이후로 가족 전체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다시피 해서 두번 다시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겠다 생각했는데 우연히 그해 가을 첫째 고양이 녀석과 또 인연이 되었던 거죠.  어제 아들램이 보고 왔다는 그 하얀 고양이처럼 이 녀석도 집에서 키운 고양이 티가 역력했었습니다.  사료를 얻어먹어도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는 일반적인 길냥이와는 달리 다가가서 팔을 뻗자마자 품 안에 제 발로 쏙 들어온 녀석이었어요.  병원 검사 결과 성묘긴 하지만 한두 살도 안된 어린 녀석이고, 집 나온지는 좀 되었는지 체중은 평균 이하로 쑥 빠진 편이었죠.  하악질 한번 없고 집안에 데려오자마자 모래통을 찾아갈 정도라서 분명 집에서 자란 녀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장된 식별 칩은 없으니 할 수없이 한동안 인근 벽에다 주인 찾는 전단을 붙여뒀습니다만 결국... 우리 식구가 되었어요. 

 



  

바로 접니당




  은근히 병치레를 했습니다 이 녀석이.  2년 전쯤엔 느닷없이 하지마비 증세를 보여서 2차 병원에까지 찾아갔더니 '척추종양'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하셨어요.  그 진행대로라면 석 달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들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마비가 풀려 훌훌 털고 일어나더니 지금은 바람처럼 날아다닙니다. 그래도 이것저것 확실히 병치레는 좀 있는 편이어서 오로지 이 녀석 하나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그렇게 다들 다짐을 했어요.


  두둥.  그러나,  인연이란 건 참 알 수 없죠.

  올 초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 2월 중순쯤, 평소 인근 길냥이들 캣맘이신 장모님께서 아직 태어난 지 반년도 안된 새끼 길냥이 얘기를 꺼내셨어요.  밥 주고 계신 어린 형제들 중 한 마리인데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하고 눈병이 심해 다른 캣맘 한분께서 얘를 일단 치료해주셨던 거죠.  5일 정도 입원시키고 다시 며칠을 집에서 보살폈더니... 이 녀석이 완전히 사람 손을 타버린 겁니다.  무리로 돌려보내도 끼지 못하고 계속 그 분만 다시 따라오는데  그 댁에 출산을 곧 앞두신 며느님이 계셔서 직접 키우기는 힘드신 상황이었던 거죠.  

졸지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그 새끼 냥이 얘기를 듣고 집사람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

그날 밤 그 두 번째 냥이가 우리 막둥이로 들어왔어요.  녀석은 첨부터 아파트 화단 숲에서 나서 자란 전형적인 한국 토종 시고르자브 종이었습니다.





첫날부터 제 집인양 편히 주무셨던 둘째 냥이




  막내 냥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울 집 두 남매가 가정 학습을 시작한 바람에  이 녀석은 정말 몇 달 동안 지극정성으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먼저 집에 있던 첫째 냥이와의 합사도 생각보단 수월했어요.  가장 합사가 어렵다는 수컷 두 마리였지만 나이 차, 덩치 차이가 이미 꽤 나는 데다 첫째 냥이가 비교적 쉽게 이 어린 녀석을 품어 줬습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함께 붙어 밥 먹고 자기 시작했으니까요.  오히려 순한 편인 첫째냥보다 이 작은 녀석이 길냥이 특유의 파이터 기질이 있어서 싸움을 뜯어말려야 했어요.





이제부터 겸상이다





좀 비좁은건 기분 탓인가





알고 보면 우린 같은 스트리트 출신이라고





  두 녀석 다 채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제각각 이렇게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만 당연히 두 냥이로 인해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강아지는 키워 봤어도 냥이는 이 두 녀석이 처음이라 키우면서 세세한 것들을 더 많이 깨닫고 있죠.  당연한 말이겠지만 두 녀석은 성격도 스타일도 각각 참 많이 달라요.  


  첫째냥은 시크하고 매서운 눈빛과는 달리 얌전하고 순합니다.  너무 과한 스킨십은 곤란해하고 은근히 치대는 걸 좋아하죠.  한데 또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쉽게 곁을 내줍니다.  기분 좋을 땐 몸으로 부딪혀 오는 걸 좋아하고 꾹꾹이도 잘해줘요.  

반면에 막내냥은 순진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영리하고... 어떨 땐 살짝 영악할 정도로 상황 파악이 빨라요.  나면서부터 길에서 커서 그런지 눈치를 참 많이 보고 작은 터치에도 아직 깜짝깜짝 혼자 놀랄 때가 있습니다.  대신에 완전 애교 덩어리예요.  기분이 좋을 땐 엉덩이를 치켜들고 꼬리를 직각으로 털면서 탁탁 곧추 세우죠.  얼굴 박치기로 애정 표현하길 좋아하고, 같이 붙어 자는 걸 싫어하는 형아냥하고는 다르게 겨드랑이 밑, 목 옆, 두 다리 사이에 끼어서 가족들과 함께 자는걸 엄청 좋아해요.  한데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낯선 사람은 유달리 더 경계합니다.


  이렇게 두 마리로 늘어나면서  사료비, 간식비, 병원비 등 적잖이 부담이 늘어나서 세 마리 네 마리 많이 키우시는 다묘 가정이 정말 대단하시단 생각을 새삼 많이 했습니다.  한데 이렇게 두 마리 각각도 이렇게 '달라서' 다 이쁜데... 또 다른 녀석들은 얼마나 또 '다르게' 이쁠지 막 상상해보기도 했어요.  키울 수 만 있다면, 당연히 세제곱 네제곱으로 행복할 겁니다.  그러고도 남겠죠.






팔 저리니까 좀 떨어져 봐

 



   

  아들램이 태권도 학원 다녀오는 길에 봤다는 그 '철없는' 흰색 고양이가,  그래서 더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특히나 우리 첫째 냥이랑 많이 닮았더란 그 말에 더 마음이 먹먹해지죠.  나가서 사료 한 끼와 물 한 그릇을 챙겨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만 그렇게 그 아이를 보게 되면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그 걸음 한 번에 그 녀석의 생사가 달려 있을지도 몰라 더 조심스럽습니다.  가서 데리고 들어올 결심이 아니라면 섣불리 그 아이를 눈에 담기가 힘들어서... 결국 집사람과 함께 한숨만 쉬다가 뭔가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아들램에게 그냥 씻고 옷 갈아입으란 말을 했을 뿐이죠.  굳이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 아마 집사람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지난달쯤,  발정기가 온 냥이들이 있었던 건지 새벽이면 간간히 꼭 애기 울음 같은 소리들이 들리곤 했어요.  고양이를 싫어하시는 분들에겐 특히 더 거슬리시는 바로 그 소리였죠.  내심 불안했습니다.  이 근방에서 몇 번, 이유 없이 고양이들이 길가 잘 보이는데 쓰러져 죽어 있는 경우들이 있었거든요.  주민들의 추측으로는 누군가 사료에 쥐약을 섞어 죽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관할 구청에는 진정이 좀 들어간 모양입니다만 특별히 고발로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그리 적극적으로 조치에 나서는 것 같진 않아요.  인근 캣맘분들은 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이십니다.  특별히 증거가 없으니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거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발정기 울음소리가 좀 유달리 들리던 그 직후에 또 인근 낯익은 길냥이들이 숲에 몇 마리 쓰러져 죽어 있더래요.   더 마음 아픈 건, 지금 우리 집에 들어온 둘째 냥이의 어미, 형제 애기들도 이번에 다... 죽어버렸더래요.  저 녀석, 그때 기관지염 걸려서 따로 치료받은 바람에 혼자만 지금 살아남은 겁니다.  물론 녀석은 알 길이 없겠지만 말이에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당연히 싫어하시는 분들의 권리도 소중합니다.  그 발정기 울음소리를 바로 옆에서 혹시 들으셔야 했다면 정말 괴로우셨겠죠.  제가 들어도 어떨 땐 거슬리고 소름 끼치기도 하니까요.  한데 그런 이유로 혹시 어느 분이실지 그 쥐약으로 인근 냥이들을 다 죽이신 거라면, 그래서 한동안 그곳에서 그 짐승들이 한동안은 안보이신다면, 그걸로 지금 마음이 충분히 후련하고 행복해지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여름밤이면 새벽 내내 굉음을 울리며 아파트 주민들 잠을 일부러 다 깨우고 다니는 스쿠터 오토바이들 소리도 연례행사처럼 들으실 텐데 어떻게 그때도 그 쥐약 생각이 좀 드실지 그것도 궁금하네요.  다들 그러는 것처럼,  차마 내다보고 그 사람들한테 뭐라 하진 못하고 그냥 집안에서 파출소에 전화 한 통 거시며 못 이루는 새벽잠을 참고 견디시겠죠.  이 동네 사는 우린 다 매년 여름이면, 그거 참 잘도 참고 견뎌오지 않았나요.


  오늘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램에게 어제 봤던 그 흰 고양이가 다시 보이느냐고 물어봤어요.  천만 다행히도 전혀 안 보이더랍니다.  녀석이 더 깊숙하게, 사람에게 더 경계심을 품고 더 꽁꽁 잘 숨었으면 좋겠어요.  길지 않을 그 길 위의 생이래도... 그렇게 굳세게 잘 살아주기를, 부디 간절히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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