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은 낡는다
등산화에 빗물이 스며들더니
비바람에 깎인 벽돌이 바스락거린다
혁신과 최신으로 태어났던 단어와 구호들
우상偶像이 되어버린 진리들
제도와 규칙, 정의와 사랑이 무엇이었더냐
첫 경험의 강렬함이
섬세했던 수줍음이, 결국 무뎌지지 않더냐
낡음은 어느 날 다가온 생의 증거
거친 풍파를 견디고 이겨낸 존재의 아우라
우리가 보낸 수많은 낮과 밤의 화석이다
낡음은 시간에 대한 향수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품은 그리움
기필코 달아나버린 청춘의 배신이다
낡음은 소멸이 아니라고 말해도
낡음은 시간의 정직한 기록을 낱낱이 들이밀기에
사람들은 더 이상 낡은 것을 바라보지 않았다
꽃을 떨군 벚나무는 낡지 않았다
푸르렀다가 앙상했다가 꽃을 피운다
벚나무가 오래되었다고 바꾸라 하지 않았다
다시 꽃이 피고
눈부신 낡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듯
꽃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낡음이 늙음이 아니라 말하며
또 다른 새싹을 기다렸다
낡음은 닳고 닳아 비로소 드러난 속살
모든 날카로움조차 지워버린 둥글음
어느새 내 몸과 마음이 낡고 있었다
*온라인에 올린 모든 글은 초안이며 퇴고의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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