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비범

마리나 반 주일렌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by 별들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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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이라... 책 제목이 근사하다. 하여, 독자는 평범한 우리네 삶이 어떻게 찬란할 수 있는지 그에 관한 솔루션을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도대체 ‘평범하여 찬란한 삶’이란 게 뭐야? 나에게도 찬란한 삶이 펼쳐지려나?


책의 원제는 “Éloge des vertus minuscules(2023)”이다. "작고 사소한 덕에 대한 찬사"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국내에서 낸 책 제목과 느낌이 다르다. 제목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일상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덕목들, 즉 삶에서 간과되기 쉬운 덕목들을 예찬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려나 보다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독자는 삶을 ‘찬란하게’ 만들 덕목을 궁금해하며 첫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이후의 느낌은? 다음 페이지를 기다리는 기대감인가, 저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모호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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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평범하다'는 말은 ‘그만하면 괜찮다’, ‘적당하다’, ‘보통’이라는 말과 같다. 이처럼 말하는 것은 평범함에 덧씌워진 오명을 벗겨주기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 저자는 평범함을 ‘그만하면 괜찮다’라는 미덕으로 바꾸어 이야기를 꾸려 간다. 이 과정에 여러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 쇼펜하우어, 스피노자, 볼테르 등)와 작가(프루스트, 체호프, 톨스토이, 버지니아 울프, 조지 엘리엇, 애덤 필립스, 엘레나 페란테, 에마뉘엘 보브, 레비나스까지)가 등장한다. 이들의 생각을 끌어 모아 만든 “조각보”는 한마디로 ‘사람과 성공을 새롭게 보려는 의지’이다.


"나는 다만 바랄 뿐이다.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동안 깨닫게 되기를.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이란,

헛된 야망의 실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떠들썩한 성공 뒤에 숨어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라는 것을." (29)



평범한 일상을 찬란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을 새롭게 보려는 의지’이고, 성공 뒤에 숨어 있는 ‘덕목들의 재발견’이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기대하는 바다. 이는 자신의 삶을 ‘찬란하게’ 바꿔줄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다.


가령, 고등학생 시절 촌스러운 옷에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친구, 대학 시절에는 존재감 없는 책벌레에 불과했던 친구,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짜잔하고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나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보다 내가 더 눈에 띄지 않는 하찮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성공에 대한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러므로 가장 끔찍한 일은 ‘그렇게 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나’를 원망하는 일이다.”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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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그만하면 괜찮다’와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가 현재의 이데올로기이고 신화이고 우리의 욕망이다. 지금보다 나은... 연봉, 평수, 자가용, 통장, 자산, 좋아요와 구독자 수가 승리와 성공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아무래도 이 비좁고 길다란 골목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오늘도 사회는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뛰어난’, ‘화려한’, ‘1등’의 존재들이 펼치는 엘리트주의,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착착착 돌아간다. 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불행이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타인의 평가에 얽매인 채 끝없이 괴로워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괜찮다’ 그룹에 머물거나 그곳을 배회하는 사람들에게는 별 야망이 없는 현실 안주, 비겁한 타협, 경쟁에서 발을 빼기 위한 핑계이자 회피라는 딱지가 붙는다. 심지어 ‘루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 합리화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따라서 당신이 이제 ‘겨우’ 성공의 가닥을 잡고 명예를 얻어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는데 어떤 사람이 슬며시 다가와 이제 ‘그럭저럭 괜찮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 어떻겠는가? 또는 그 자신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선언한다면, 그것은 흔히 말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일까?


“엘리트 사회에서 평범하다는 것은 심각한 핸디캡이자 수준 높은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나아가 사회적 사형 선고와도 같다” (69)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각자의 몫이지만 저자는 우리가 ‘그만하면 괜찮다’에 서기를 바란다. 그쪽만이 미덕과 가치를 생각하고 기대와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저에게 어떤 삶이 괜찮은 삶인지 교수님이 어떻게 아시죠?”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그만하면 괜찮다’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평범함에 덧씌워진 오명을 벗겨내는 작업에 동참하는 일, 완벽주의에 대한 비판, 결과가 아닌 과정에 충실한 삶,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는 적극적 행동이다. 비록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적당한 성취에 머물지라도 바로 그것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평범한 이들의 비범한 삶이란 타인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취를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보다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비범함이다.”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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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빛을 발하며 찬란해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겸손과 관용, 자기 만족 같은 ‘작고 사소한 미덕’의 습관적 실천이었다. 여기에 저자도 강조한 스피노자의 생각을 곁들여진다. 스피노자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재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재능을 키우는 것)

그것은 엄청난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재능이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이 되고

트레이드 마크가 될 때까지 열심히 갈고 닦는 것이다.” (335)


이러한 노력을 ‘탁월함의 실천’으로 읽는다면, 이 생각은 책의 전반에 흐르고,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 모인다. 그에게 탁월함(arete)이란 ‘무언가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인간 궁극의 목적인 행복(eudaimonia)의 핵심 조건이기도 하다. 바로 이 탁월함을 실현하는 방법이 중용(mesotes)이고, 저자가 주장하는 ‘그만하면 충분하다(enough)’의 삶이다. 이렇게 요약된다.


그만하면 괜찮다=중용(mesotes)의 실천 → 탁월함(arete)의 발휘 → 행복(eudamonia)의 추구


‘그만하면 괜찮다’의 중용적 삶이 탁월함의 발휘이고, 이로써 인간의 궁극인 행복에 이른다. 이것이 ‘그만하면 괜찮다’라는 '평범'이 찬란한 삶으로 변화하는 공식, 저자가 밝히려는 이야기가 아닐까. 어쩌면 저자는 여기에 이르고자 여러 길을 빙빙빙 돌고 돌았는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인의 성공과 행복의 이상을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했단 한들,
현실을 무시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평범한 삶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70)
SE-4140cec5-f25b-488b-8cb6-da5621b5ed46.jpg 특별함이란 있는 것의 발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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