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기술 2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틀고 청소기를 돌린다. 마침 나오는 노래는 거북이의 빙고다. 밝고 경쾌한 리듬에 가사도 음미할만하다. 바이브의 ‘두둠칫’ 알고리즘이 나를 파악했는지 얼마 전부터는 이 노래를 첫 곡으로 띄운다.
회사 다닐 때의 일요일이 생각났다. 해방의 금요일, 갈증과 망설임의 토요일을 보내고 맞이하는 조용한 아침, 역시 소란한 청소기, 대충의 점심, 먼지 털어내듯 집을 벗어나 거니는 산책, 어느덧 오후 3시…
내일의 복귀를 알리는 타이머가 작동하는 시간. 해결해야 할 업무 생각이 떠오르고, 아이의 준비물과 숙제를 다시 확인하고, 가족과 저녁 시간을 보내며 “이 주말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아쉬움, 그리고 일요일 밤.
그 시간은 새로운 한 주를 버티기 위해 억지로라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순간이었다.
“그래. 또 한 주를 살아내야지.” 하는 혼자의 속삭임에는 분명, 이런 믿음이 있었다.
틀에 박힌 관념 다 버리고 맨 주먹 정신으로 다시 또 시작하자~
다시 또 시작하면 나 이루리라 다~
https://youtu.be/S66dYJMM0Wk?si=EU3MvlZQvnXx_xcT
그럼에도 일요일 밤은, 일요일 밤이었다.
영국의 한 식품 회사가 설문 조사를 했다. 회사는 일주일 가운데 가장 살찌기 쉬운 요일과 시간을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일요일 저녁을 꼽았다. 이들은 일요일 저녁 7시~10시에 과자나 케이크 등의 간식을 먹는다고 답했다. 회사는 이와 같은 행동이 월요일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지구 건너편 사람들의 특별한 일이라고 외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일요일 저녁은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차분하고 평온할 것만 같았던 일요일 저녁은 앞다투어 일어나는 허무하고 아쉬운 마음에 무릎 꿇는다. 일요일이 깊어 갈수록 낯익은 불안이 어김없이 몰려온다. 느긋하고 편안하게 주말을 보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대가치고는 가혹한 순간이다.
월요일 아침을 즐거운 그 무엇으로 상상해도 일요일 밤의 쓰디쓴 감정을 물리쳤다고 말할 사람은 적다. 서서히 드러나는 월요일의 불안을 SNS의 한 이웃은 이렇게 표현했다.
“왜 일요일 밤은 잠이 안 올까? 끝나가는 나만의 시간이 아쉬운 것인지 아니면 다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두렵기 때문인지? 얼른 자야 내일 지각은 면할 텐데…”
그의 마음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시작되는 월요일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자유가 끝나가는 일요일이 아쉬운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닫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럴 때면 ‘내 삶에도 변화가 필요해!’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물면 화석이 되어 바깥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해’라고 말하는 찰스 핸디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도 한다. 그는 이미 ‘벼룩의 삶’과 ‘포트폴리오 인생’으로 성공한 자유인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위해 안정을 내팽개치고 무모한 모험의 세계를 택했다는 찰스 핸디의 말은 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 또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충고한다. 이들의 말 역시 마음에 메아리처럼 남는다.
삶을 자기 뜻대로 살기란 쉽지 않다. 현실의 벽은 높고 미래는 막막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실의 부담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유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그 벽 앞에 가로막혀 주저앉거나 발걸음을 돌리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안전지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무모하지만 모험 지대로 나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 Matrix>의 주인공 네오가 빨간색과 파란색 약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장면과 같다. 파란색 약은 매트릭스라는 ‘가짜 현실’에서 편히 살게 해준다. 하지만 네오는 ‘진짜 현실’을 보기 위해 빨간색 약을 선택한다. 빨간색 약은 진짜 현실이 품고 있는 무모해 보이는 모험의 세계이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불확실한 세계이다. 네오는 그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모험에 뛰어든다. 진짜 삶에 대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결심한다. 그 진짜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흥미로워진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면 그에 맞는 대가가 따른다. 무언가에 대한 책임이 되거나 희생이 될 것이다. 가까스로 이룬 현재의 안정을 뿌리쳐야 하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새로운 의지로 도전해야 한다. 불확실하기만 한 결과를 위해 과감히 선택해야 한다. 불편한 월요일에서 벗어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이 또한 같다.
삶은 때로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를 깨운다. 그 깨어남은 결코 극적인 순간이 아니다. 대부분은 아주 작고 사소한 불일치에서 시작된다. 더는 이대로 살 수 없겠다는 감각, 조금은 낯선 감정의 떨림, 익숙한 루틴이 더 이상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느낌. 그 감각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느끼는 일, 그게 진짜 삶을 향한 준비다.
지금의 안락함을 당장 버릴 필요는 없지만, 그 안에 잠든 나를 깨우는 일만큼은 미룰 수 없다. 무언가를 쟁취하려 하기 전에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니 묻는다. 지금, 나는 무엇에 응답하고 있는가? 나의 열정은 아직 살아 있는가? 이것이 진짜 삶으로 나를 이끌 수 있을까? 다시 또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을 ‘버팀’이 아닌 ‘살아냄’으로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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