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내 가난한 소통

이승우 소설집을 읽으며

by 별들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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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글을 쓰는가.


써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글쓰기가 자신의 소명임을,

가장 자기 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그는 써야만 살 수 있다.

글이 곧 자신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 묻혀 있을

문장을 길어 올리며 진실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글 쓰는 사람의 사명이다.

박노해 시인이 말한다.


“작가의 사명은 쓰는 것,

잘 쓰는 것보다 유일무이하게 쓰는 것

하여, 고유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


멋있어 보이는가.

정반대다.

고유하고 진실한 삶의 현장은

옹색한 살림, 지겹고 지겨운 가난의 연속이다.

글을 쓴다는 건

살아간다는 일과 자꾸 충돌한다.

그러니 글로만 살아낼 수 없다.

밥벌이를 위해, 팔리는 글을 위해

그렇게 쓰는 게 맞는가를 되물으며 쓴다.

가난은 문장보다 빠르게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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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글 쓰는 사람의 삶과 일,

즉 살림과 글쓰기를 보여주는 이 한 줄 문장 때문이다.

그는 이 한 줄로 글 쓰는 삶의 가난을 단박에 보여줬다.

그럼에도 글 쓰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단호함까지 포함해서.


“소설은 세상을 향한 내 가난한 소통의 수단이다.

나는 절필하지 않을 것이다.”

-이승우,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어쩌다가, 이승우의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라는

오래된 소설이 눈에 띄었는지 모르겠다.


이 책 저 책을 뒤지다가

아니, 글 쓰는 사람의 일과 삶을 한눈에 보여줄 자료를 탐색하다

우연히 그의 작품에 이르렀고, 세 권을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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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부터 읽을 것이다.

그에 앞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의 말’부터 읽어보자.

글 쓰는 여러분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 시인이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진흙탕과 시멘트 벽 사이 좁은 틈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한 남자 이야기. 진흙탕에 빠지지도 않고 시멘트 벽에 긁히지도 않고 용케 걸어가더라고 했다. 그는 부러워했지만 나는 의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진흙탕에 몸 더럽히지 않고 시멘트벽에 상처 입지 않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지나갈 수 있을까. 진흙탕에도 시멘트 벽에도 닿지 않고? 거긴 허공 아닌가. 그렇다면 그는 육체가 없는 거로군. 육체가 없는 것은 신뢰할 수 없지. 왜냐하면 신뢰는 육체에 깃들고 육체에 몸담으니까. 나는 그를 부러워하지 않기 위해 폄훼했다. 얼마 후에 나도 꿈을 꾸었다. 내 꿈속에서도 남자는 진흙탕과 시멘트 벽 사이 좁은 틈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갔다. 나는 그가 진흙탕에 몸 더럽히지 않고 시멘트 벽에도 상처 입지 않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간 줄 알았다. 마술처럼 허공으로. 그러므로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었고 신뢰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문득 그의 몸이 보였다. 그의 몸은 흙투성이였고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온몸이 흙이 없고 상처였다. 흙과 상처의 육체였다. 육체였으므로 나는 그를 의심할 수 없었고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소설은 세상을 향한 내 가난한 소통의 수단이다. 나는 절필하지 않을 것이다. 2002년 4월 이승우”


절필이란, 단지 펜을 놓는 일이 아니다.

그건 나를 버리는 일이고, 내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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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가 이 글을 2002년에 적었으니

그가 등단(1981년) 후 20년이 지난 셈이다.

그 인고의 세월을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그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작가의 일이 삶을 살릴 수 없을지라도

일로 생을 ‘아주 오래’ 살아갈 것이란 다짐.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까지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그것은

단 한 명의 독자도 없을지라도,

단 한 개의 좋아요가 없을지라도…

그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웅장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더라도

계속 쓰라는 암시일지도 모른다.

그게 나의 일,

나의 생존 방식이라 말하는 듯하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끈질기게 버티는 능력’?


글쎄다.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피할 수 없는 것은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에세)


니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불가피한 것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하라. 운명애. Amor fati.”


세상은 내 글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한 문장을 썼다.
그건 세상이 나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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