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암, 세상 편하다.
카카오톡에 도착한
친구의 느닷없는 ‘선물’을
들여다보며 든 생각이다.
그런데 ‘스타벅스’ 이용권이다.
하아~ 스타벅스라.
내가 사는 동네에 스타벅스는 없다.
설마 25만 명이 사는 市에 별다방이 없다고?
그렇다, 이곳 구도심에는 없고
별다방에 가려면 2km 이상 이동해야 한다.
집과 탁구장,
술집과 서해랑길을 왕복하는 나에게
자가용 없고 자전거만 있는 나에게
2km는 군산서 전주 가는 거리만큼 멀다.
어쩌면 이것은 마음이 먼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 다닐 때에도 별다방은 토털 한 두 번 갔을까?
이상하게도 체인점 카페는 마음이 가지 않았고
독립적인 분위기의 카페, 찻집을 선호했다.
이 때문인지 한때는 카페라는 공간의 매력을 탐구하며
여기저기의 카페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친구가 보내온 선물 덕분에 카페를 생각하며
<카페를 사랑한 그들>과 하워드 슐츠의 <스타벅스>
그리고 그동안 다녔던 몇 곳의 카페 탐험 기록을 들춰 봤다.
여러 탐방기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은 곳이 천호동의 커피와글이다.
<카페를 사랑한 그들>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다.
그래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추천한다.
세계 최초는 아니었어도 프랑스 최초의 ‘커피 마시는 집’
카페 프로코프가 1680년에 파리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숱한 예술가들이 카페를 찾았다.
책은 그들이 카페를 방문하는 이유를 꼼꼼하게 설명한다.
그들은 카페에서 다채로운 삶과 그로부터 새로운 영감의 숨결을 느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 그러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장면...
그 모든 것이 연구대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그들은 군중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몸으로 체험할 필요가 있었다.
카페가 아니면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 줄 곳이 없었다.
카페에는 살아 있는 대화와 역동적인 삶이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
이러한 예술가의 전형이었다.
"오늘은 내가 묵고 있는 카페의 내부를 그려볼 생각이다. 불이 밝혀진 저녁의 모습을. 제목은 <밤의 카페>가 적당하겠지. 밤새 문을 열어두는 이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밤을 배회하는 사람들은 밤이슬을 피할 돈이 없을 때, 너무나 취해 다른 곳에서 문전박대를 받을 때 이곳에서 안식처를 찾는다”
<카페를 사랑한 그들> 중에서
헤밍웨이.
그는 <노인과 바다>의 일부를 카페 뒤 코메르스에서 썼을 것이다.
“즐거움이 있는 카페였다. 깔끔하고 따뜻하며 인간미가 살아있는 카페였다.
나는 낡은 비옷을 걸쳐두고 물기를 말렸다. 색 바랜 펠트모자는 긴 의자의 모자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밀크커피를 주문했다.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리는 축제다>”
<카페를 사랑한 그들> 중에서
이러한 ‘작업 공간’으로서의 카페를 생각하면
자기에게 딱 맞는 공간 하나 갖는다는 게 얼마나 필요하고 부러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구도심에는 스타벅스처럼 빤짝빤짝 빛나지 않더라도
나름 유명하고 괜찮은 카페들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게을러져서 그런 곳을 찾지도 찾아내지도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듯
노란 박스에 들어있는 믹스커피 한 개를 뜯어
종이컵에 붓고 뜨거운 물 넘실넘실 채워 휘휘 저은 다음
한 입 쪽 빨아 빈껍질을 버리고 홀짝홀짝 마시는
달달씁쓸함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서 그렇다.
그렇게 스벅이 필요 없어지자,
스타벅스 없는 동네는 불편함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것들과 적당히 멀어진 삶’을 선택하거나,
그런 삶에 익숙해진 이들이 사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이제 시간이 조금 더 느리고,
사람들 얼굴이 조금 더 자주 보여서, 진짜 별이 더 잘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