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누구나 작가다.”
-이승우,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판 1쇄, 2006년 3월 10일
-이 글은 책의 맨 앞 5쪽에, 그리고 프롤로그의 25쪽에 있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고 있다니, 이승우 작가의 이 말은 응원이자 격려처럼 들린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한 편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우리가 ‘작가’라면, 우리가 매일 내리는 선택, 만나는 사람, 갈등과 실패와 기쁨, 이 모든 것은 이야기의 재료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연결하고, 때로는 덜어내고, 엮어서 ‘이야기’를 구성하며 서사를 창조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작가다.
삶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해석하며, 현재를 감각하는 주체.
이 ‘주체로움(주체성의 생활적 버전)’ 그리고 ‘작가성’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블로그에 기록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인스타에 사진을 올린다. 자기를 표현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는 좀 더 적극적인 ‘작가’들이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작가인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좀 더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다.
이 보다 더 전진하는 사람들, 직업으로서의 작가들이 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 이야기를 타인에게 공유하고, 때로는 출간/유통을 통해 독자를 만들어내는 ‘전업작가’들이다. 모든 사람은 삶의 작가이지만, 직업 작가는 글쓰기를 매개로 세계와 ‘대화하는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바로 여기에 나(어쩌면 우리)의 관심과 물음이 있다. 존재론적 작가에서 직업적 작가로 넘어가려면, 어떤 실천적 노력이 필요할까? 지금까지의 경험상 세 가지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첫째, 읽어야 쓸 수 있다. 이 말의 중요성으로 내 블로그는 이름조차 ‘전업독자’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미 많은 작가들이 이 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정래, 제임스 마치너, 스티븐 킹, 헤르만 헤세의 사례는 이미 말했다. 그리고 오늘, 이승우 작가 역시 분명히 말한다. “잘 쓰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잘 읽어야 한다.”(27쪽)
둘째, 나에서 독자로 전환하기. 나의 블로그 글만 해도 그렇다. 예전 내용을 돌아보면 '나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마치 일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제는 나에게 충실한 글에 머무르지 않고, '너에게 닿을 수 있느냐'를 늘 염두에 둔다. ‘타인의 읽기’를 고려한 나의 말 고르기가 커다란 과제이다. “내가 의미 있다 느낀 바로 그것을 어떻게 하면 너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나의 고민이다.
셋째, 지속적으로 글쓰기. 글쓰기의 단계를 높이는 방법은 앞서 말한 읽기, 그리고 쓰기가 전부일 수 있다. 글을 지속적으로 쓰고, 그 글을 세상에 건네며,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다시 고쳐 쓰기. 이러한 실천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글로 세계와 접속하려면 그러한 글을 '계속' 써야 한다. “잘하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이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다.”(이승우, 고요한 읽기)
이 밖에도 글쓰기에 관한 좀 더 내밀한 방식, ‘쓰는 자’로서의 태도와 세계관, 밥벌이로서의 글쓰기가 남아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 항목의 '지속적인 글쓰기'이다. 혹자는 그냥 글을 쓰면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글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글을 쓸 수 있으면서도 못 쓰는 경우라면 더 복잡하고 섬세한 대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작가의 소명에 관한 것, 운명과 정체성, 이에 대한 각성과 열정 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 미지의 세계야말로 내가 글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곳이며,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다.
그 문턱에 선 나는, 그저 믿을 뿐이다. 글을 통해 존재는 새로워질 수 있다고. 그렇기에 오늘도 읽고 쓰며, 그 경계 위를 걷겠노라고. 그리고 이 믿음을 실험하며, 오늘도 ‘블로그’에 생각 하나를 조심스레 띄운다. 언젠가 닿을지도 모를 당신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