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읽으려 한다.
들뢰즈도 어려운데(몰라서)
그가 쓴 차이와 반복은 (아는 게 없어서)
더 어려우려니 한다.
그럼에도 <차이와 반복>은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서
그 핵심이 여기저기서 잘 요약되어 유통되고 있다.
그러니 들뢰즈 생각의 정수가 궁금하다면
아주 유명한 사람이 쓴
해설서를 읽어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처럼 내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의심 많은 사람에게
그 핵심이란 유명 레시피로 만든 된장찌개일 뿐이다.
자기 맛이 없다는 뜻이다.
보편타당한 맛있음 보다는
나 만의 손 맛과 MSG 조합,
각종 재료의 혼합으로 끓여내는
나의 된장찌개를 나는 사랑한다.
압축 버전이 아닌 읽는 이가
쥐어 짜내는 자기 해석,
대부분의 독자가 주목하지 않는 지점에서
눈이 번쩍 트이는 문장을 만나는
예상 못한 돌발 행위로써의 읽기.
그런 읽기라야 뭔가 하나는 해냈다는 뿌듯함을 가질 수 있다.
선풍기가 털털대며 돌고 있는 데
바람의 방향 때문인지
오래된 성능 때문인지 전혀 시원하지 않은
그런데 실내 온도가 이미 33도를 찍고 있는
이 엄청난 더위에 여기에라도 몰두해야
더위를 잊을 수 있겠거니 하며 <차이와 반복>을 읽으려 한다.
여름은 유유자적이고,
오늘은 낯선 문장을 만나기에 딱 좋은 날이다.
책을 손에 들어 묵직한 무게를 느껴보고,
손 끝으로 샤라락 넘기며 페이지 사이로 퍼지는 아무 향기 없는 종이 냄새 맡아보고,
반들반들 책표지를 넘겨 나타나는 ‘나, 질 들뢰즈’에 대한 출판사 편집자의 정보도 건너뛰고,
'차례' 앞 쪽에 나타나는 또 한 번의 제목 페이지에 ‘2025.7.2’라고 떼려 넣듯 도장 찍고서야,
들뢰즈라는 글쓴이의 생각 틀을 만났다.
(민음사 목차)
머리말
서론: 반복과 차이
1 차이 그 자체
2 대자적 반복
3 사유의 이미지
4 차이의 이념적 종합
5 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
결론 : 차이와 반복
참고문헌
들뢰즈 연보
옮긴이 해제: 들뢰즈 존재론의 기본 구도
찾아보기
목차 속 키워드는 세 가지.
반복, 차이, 사유.
이것으로 600페이지 분량의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는 철학서를 썼다는 게지?
그런데 차례가 두 갈래로 나뉜다.
요약한 차례와 요약을 풀어서 보여주는 상세한 차례.
요약 차례는 1쪽,
상세 차례는 무려 8쪽.
처음부터 헐~~~ 이다.
차례를 훑어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들뢰즈는 왜 이 책을 썼을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핵심을 포착할 수 있을까?
그의 생각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실용적일까?
세상을 구성하거나 구성된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될까?
등등등의 갖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나의 읽기 기준, 그리고 이 책을
계속 읽을지 말지의 기준은 딱 하나.
이 책이 내 삶을 새롭게 하는가?
그가 던지는 문장과 질문이 나를
새롭게 할 만큼 뭔가 움찔움찔 놀래키고,
한 줄이라도 더 읽고 싶은 호기심이 들게 하고,
옆 사람에게 자기 생각처럼 전하고 싶어
안달 나지 않는다면 언제든 이 책을 집어던지거나,
중고 책방에 내다 팔아버릴 것이다.
이제 머리말이다.
보통은 책의 머리말을 먼저 읽지 않는다.
스포일러 같다는 느낌에서다.
나는 ‘블러’처럼, 보일 듯 말 듯,
이곳도 저곳도 아닌 경계에서 작성하는 게
머리말이라 여기기에 읽어도 그만,
마지막에 읽어도 그만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른 책과 다른 보통책이 아닌지라,
워낙에 어렵다 어렵다 손사래 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호기심이 발동해 머리말부터 열어봤다.
그런데 그곳에 떡 하니 내 생각을 짐작했다는 듯
들뢰즈가 적어 둔 문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만, 그 놀람은 잠시 미루고 첫 문장부터
순차적으로 느낌을 적어보자.
이것도 놀랄만한 흥미로운 문장, 첫 문장이다.
책의 취약성 배후에는 종종 실현될 수 없는 헛된 의도들이 있다.
원문을 봐도 해석할 수 없으므로
한국말을 퀴즈 풀듯 매달릴 수밖에.
그러면 들뢰즈의 원 뜻과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또한 재미이고
독자에게는 언제나 오독할 권리가 있으니
-이유는 잠시 뒤에-
나름 해석해 보면 이런 말이지 싶다.
들뢰즈는 철학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책이 ‘의도(=기획)’를 두고 쓰인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그 의도란 실제로는 실현되지 않는 약속,
수행되지 않는 목표, 즉 ‘헛된 의도’이다.
이것을 그는 “책의 취약성”이라 말한다.
의도와 다른 글쓰기. 즉 글 쓰는 이는
“나는 이 책에서 X를 증명할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Y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의도를 선언하지만 들뢰즈는 대부분의 책이
그 선언된 목표에 닿지 못하는,
닿을 수 없는, 허구적 계획에 그친다고 말한다.
참, 흥미롭다.
들뢰즈 같은 사상가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것도 자신의 책에서 말이다.
그 덕분에 내가 오래전부터 품은 발칙한 상상의
근거를 발견해서 좋았다.
이미 앞에서 말한, 가령 이런 것이다.
독자의 오독할 권리-
들뢰즈가 책 그 자체는 의도한 것을 말하지 못하고,
때로는 의도와 전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고
밝힌다면, 이것은 독자에 의한 엉뚱한 해석이 가능함을 말하는 것이고,
결국 나의 오독은 나의 잘못도 아니고 지나치지도 않은
어쩌면 당연한 행동 아닌가 싶다.
(물론, 읽는 이의 오독이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자기만족에 그치거나 삶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곳에 쓰이는
-가령, 술안주로-것은 논외로 치자)
그런데, 더 이해가 어려운 것은
“의도를 선언한다는 것은 … 겸손”이라는 두 번째 문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도를 선언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책에 대한 진정한 겸손을 나타낸다.
들뢰즈가 말하는 이 겸손이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의도를 충족시킬 수
없으니, 그런 부족함을 양해 구한다”라는 뜻일까?
그런데 ‘겸손’ 앞에 수식되는 말이 있으니,
바로 “이상적인 책에 대한 진정한 겸손”이다.
아~~~.
이상적인 책=진정한 겸손.
이 사이의 간극이란 얼마나 넓고 깊은가.
결코 채워지기 어려운 지점을 연결하기.
무엇이 고리가 될까.
문학적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면…
책의 취약성 법칙에 따라 어떤 책도
의도를 채울 수 없으니,
이상적인 책은 하나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 들뢰즈는 그러한 자각을 겸손이라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이 책이 어떤 의미의 완전함을 독자에게
제공하지 못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의도를 밝히는 것은 이러한
불완전함에서 뭔가 다른 사유가 생성되지 않을까 하는
여지를 두고 싶다....
그러한 태도로서의 겸손일까?
놀라움은 세 번째로 시작되는 문장에도 있다.
“서문은 맨 마지막에 가서야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통념의 인용이다. 이어서
“거꾸로 결론은 때로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
통념을 뒤집은 제안이다. 바로 이어서
“결론을 읽으면 나머지 부분의 독서가 불필요해질지도 모르는 우리네 책의 경우 이는 옳은 말이다.”
정리하면,
서문은 마지막에, 결론은 처음에 읽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서문은 맨 마지막에 가서야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거꾸로 결론은 때로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 결론을 읽으면 나머지 부분의 독서가 불필요해질지도 모르는 우리네 책의 경우 이는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머리말에 그것도
가장 앞에 놓이는 것은 들뢰즈가 독자들에게
단순 독서팁을 전하려고 쓴 글은 아닐 것이다.
가장 대별되는 것은 앞선 내용이 “책의 취약성”에
대한 것이라면, 이번 문장은 “읽기의 취약성”에 관한
어떤 의미를 주는 게 아닌지 싶다.
서론-본론-결론에 이른 읽기의 선형성 논리,
의도조차 실현시키지 못하는 글이므로
기존 체계와 그 글에 포섭되지 말고,
오히려 결론에서부터 시작하여 글 쓴이의
의도와 구조를 의심하고,
생각의 경로를 탐색하는 경험을 가지라는
'읽기의 전복?' 같은 걸 말하나?
대부분의 책은 결론만 읽어도 충분하지만
내 책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인가?
아무튼, 어쨌거나,
난 여기까지 읽고 머리말의 나머지
그리고 서론은 읽지 않기로 했다.
그가 제안하는 읽기 방식에 따라
결론부터 읽어야겠다.
물론, "나머지 부분의 독서"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결론 읽기가 아니라,
들뢰즈 사유의 생성 경로를 쫓으며,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탐문하며
생각의 뒤를 밟아볼 요량으로,
이 찜통 같은 여름을 유유자적하기 위해 뒷길부터 걸어야겠다.
들뢰즈의 말은 맞았다.
원래 이 글의 의도는 간단했다.
“지금부터 <차이와 반복>을 읽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의도였고 계획이었는데
쓰다 보니 글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엎어지고 넘어지며 A4 4쪽을 달린다.
이렇게 읽다가는 <차이와 반복>만으로 올해가 다 지날 판이다.
※참고: 실험, 이 글을 블로그와 브런치에 함께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