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열흘 연속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지요.
군산도 더워요.
방금 전 군산시에서 보내온
문자조차 뜨거워요.
폭염, 온열질환…
그럼에도 시원한 게 있어요
큰 아이가 제주도로 피서 가며 건네는 안부 전화,
한 분의 아름다운 배려에 일제히 폭죽을 쏘아대는 단체 카톡방,
뽀얗고 찰진 밥을 짓느라 맹렬히 스스로 온도를 끓어 올리는 전기밥솥,
이 정도 더위 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 떠냐는 듯
무심히 묵묵히 덜덜덜 바람을 쏟아내는 Hanil선풍기,
그 바람을 홀로 맞으며 무얼 쓸까 고민고민 키보드를 누르는 이 시간,
머리에 번뜩 떠오른 한 생각,
“책 읽기 딱 좋은 날씨네”
그런데 책 말고 이 더위를 물리쳐줄 어떤 것도 갖지 못한 나로서는
책을 펼치며 창밖 구름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어허~ 오늘도 책 읽기 좋은 날이야 할 밖에.
오늘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 오늘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하늘이 흙빛처럼 깜깜한 날에도
낯이든 밤이든 책을 읽으면 어떤 시간은 우주가 멈춘 듯,
또 어떤 때는 파란 파도 너머 넘실거리는 그리움과 애절함만 가득해도,
그 어떤 요지경이 그곳에서 펼쳐져도
책을 바라보는 날은 다 좋은 날이에요.
날씨가 좋아서 책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읽으면 그날 날씨는 그냥 좋아진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책 읽기란 내 안의 날씨를 바꾸는 기후 장치예요.
그 엄청난 장비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어요.
그러니 이 무더위가 지나기 전에 서둘러 하나 장만하세요.
사러 가는 김에 제 책도 사가시면 좋으련만
제 책은 이미 인기리에 다 팔려 절판되고 말았네요.
랜탈보다는 소장이 집안 인테리어도에 도움 되더라고요.
그럴까요, 하지 마시고, 제 말 한번 믿고 실험해 보세요.
지난 주말, 그러니까 7월 5일.
코리아둘레길 지킴이 봉사활동을 다녀왔어요.
12km의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푹푹 찌는 날씨 한 복판을 걷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요.
춘장대 해변에서 선도리 갯벌체험마을까지 걷는 길인데
자가용이 없는 나로서는 군산에서 서천으로,
서천에서 춘장대까지 이어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요.
버스 안에서 80되신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어요.
1번 버스는 마량리항에서 한참 머무른다고
먼저 말문을 여셔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그 분과 이야기 나누며
한 사람은 한 권의 책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전부터 가진 생각인데 사람들,
특히 오래 사신 분들의 이야기에는 분명 서문이 있고, 본론이 있고, 맺어가는 이야기들이 가득해요.
이날 할아버지는 저에게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 하나,
얼마 전 작고한 친구와의 마지막 술자리 이야기 하나,
이렇게 아주 짧은 이야기, 단편을 들려주셨어요.
그러다 당뇨가 있는데, 서둘러 집을 나서느라 핸드폰도 지갑도 갖고
있지 않다며 물이라도 하나 사야 는데 은근히 걱정하시기에
그분 손에 얼른 2천 원을 쥐여줬어요. 그러면서 그랬죠.
“어르신이 한때 군산에 사셨으니, 이것도 인연이네요”
그분이 버스에서 내려 춘장대 해수욕장 개장식 구경 가시네요.
“안녕히 가세요” 그분이 저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네요.
“어르신, 건강하세요” 저도 황급히 인사를 드렸어요.
그분의 삶을 풀어쓰면 80페이지가 될까, 800페이지가 될까, 잠깐 생각했어요.
이 날도 역시 책 읽기 좋은 날씨였어요.
그래서 좋은 책 한 권의 아주 작은 꼭지를 읽었어요.
나머지는 읽을 수 없게 되어서,
이 세상 가장 유일한 책 한 권을 보내드려서
아쉬움이 크게 남았지만, 어쩔 수 없자나요.
대신 이 분 덕분에 이날은 내 책의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분이 마지막 페이지를 잘 쓰기를 바라며 편의점에 들어갔어요. 배가 고팠거든요.
그동안 ‘~다’체로 쓰다
오늘은 ‘~요’체를 쓰니 쪼금 쑥스럽네요.
앞으로도 대부분의 글은 다체를 쓸 거예요.
그러다 또 마음이 동하면 요체도 써 볼게요.
글 쓰는데 어떤 기준 같은 게 없자나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책 읽기 좋은 날에 제 글까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마치기 전에, 좋은 '기후 장치'하나 소개 드릴게요.
(온라인) 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한 책이에요.
정지현, 책의 계절
(부제: 북 디자이너가 발견한 책의 도시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817677
어지간해서는 어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나를 유혹하는 책이네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가운데 하나는
어떤 일에 몰두하는 이의 모습이에요.
제 기준에 말이죠….
저자 역시 책 읽기에 몰두한 사람의 표정에 반했나 보네요.
내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책을 읽는 이의 모습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모습에 자석처럼 이끌려왔다. 책 읽기에 몰두한 사람의 표정을 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는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거나, 배경은 삭제된 채 오로지 그 사람만 확대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읽고 있는 책의 감상은 어떤지 옆에 앉아서 종알종알 ‘북토크’라도 하고 싶어진다.
_97페이지
이 책이 읽고 싶어 졌네요.
이 좋은 날씨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