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루쉰

by 별들의강

# 다니루

나는 주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편이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는 듯하지만,

읽기의 주제와 방향은 3가지로 정해져 있다.

다윈과 니체와 루쉰을 읽고

https://blog.naver.com/riverofstars/220714551199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쓴 글을 중심으로 읽는다.

이것이 나의 독법이고,

1,1,1 독서법, 스노볼 리딩으로 부른다.


# 루쉰

오늘은 알라딘이 보내온 뉴스레터가 눈에 띄었다.

‘루쉰’ 관련 책 소개다.

k802030298_1.jpg 조관희(옮긴이), 니케북스(출판)


<매일 읽는 루쉰>의 큰글자 도서가 나오며

신간 알림으로 뜬 것인데,

일반판은 2024년 2월에 출간되었다.

루쉰 작품에서 선별한 365개 문장을

일자별로 소개하는 형식이다.

루쉰의 글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므로,

이들 낯선 문장을 통해 그의 책 혹은

루쉰을 처음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래에 루쉰의 대표적인 글을 발췌했다.

이 문장들이 왜 나를 사로잡는지 생각해 보자.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것은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고향」, 『외침』(1921년 1월)


'죽음을 슬퍼하며'는 '상서'로 알려져 있다.


"세상에는 분투하지 않는 자를 위해 활로를 열어주는 일은 결코 없다." - 「죽음을 슬퍼하며」, 『방황』(1925년 10월 21일)


위화의 소설 <인생>을 옮긴 백원담 교수의 해설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루쉰이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제자이자 연인인 쉬광핑에게 보낸 편지(『양지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갈 때 가장 흔히 만나는 것은 두 가지 난관입니다. 그 하나는 ‘갈림길’에 섰을 때입니다. 묵적墨翟 선생(묵자)의 경우는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울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을 것입니다. 먼저 갈림길에 앉아 잠시 쉬거나 한숨 자고 나서 갈만하다고 보이는 길을 선택해 다시 걸어갑니다. 만일 호인을 만나게 되면 그의 먹을 것을 빼앗아 허기를 달래겠지만 길을 묻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 헤아림으로는 그 역시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막다른 길窮途’입니다. 완적阮籍 선생도 크게 울고 돌아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성큼성큼 나아갈 것입니다. 가시덤불 속을 한동안 걸을 것입니다. 하지만 걸을 만한 곳이 전혀 없는 완전한 가시밭길은 아직까지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애당초 이른바 ‘막다른 길’이라는 건 없는지도 모릅니다." - 『두 곳으로부터의 편지』(1925년 3월 11일)


"고통이란 삶의 동반자라고 생각하오." (루쉰)


살다 보면 갈림길도 막다른 길도 만난다는

이 자명한 이치를 풀어내는 루쉰.

그는 어떤 길도 자신의 여정을 방해할 수 없으므로

돌아서거나 피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길이란 본래 없었기 때문이고,

분투하지 않는 자를 위해 활로를 열어주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라는 냉철한 생각.


루쉰은 늘 이상주의적 낙관론을 거부하고

참담한 현실에 발붙인 비관적 행동주의로 나아간다.


# 저우수런

루쉰의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주수인)이며,

1881년 중국 저장성 사오싱에서 태어나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향년 55세.

루쉰(魯迅)은 가장 널리 알려진 필명이다.


그의 인생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가

일본 센다이 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이후 문학으로 전향한 일이다.

그는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

격동의 근대화를 경험한 세대의 중심인물로,

초기에는 의학을 통해 민중을 구원하려 했으나,

이후 "육체보다 정신이 병들었다"라는 자각에 이르러

문학을 통한 민족 개조로 방향을 전환한다.

20250710_135356.jpg 루쉰 소설 전집 (김시준 옮김, 을유문화사 출판)



# 루쉰과 글쓰기

좋은 저자를 만나면, 쓰고 싶어진다.

읽기가 곧 쓰기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잘 쓰고 싶으면 '많이' 읽으라고 들려주고 싶다.

여기에서 말하는 '많이'는 권수를 말하는 것일까.

그 '많이'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내가 하는 말이라면, 신빙성이 떨어지려니….

조정래 선생을 호출해야겠다.


좋은 글쓰기 방법으로는 다독(多讀)과 다상량(多商量), 다작(多作)을 강조했다. 조 씨는 "세상에서 좋다는 글들을 우선 많이 읽고, 읽은 시간만큼 생각하는 거다. 그다음에 많이 쓰라"고 조언했다. 이어 "시간의 배율은 4:4:2로 하라"며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고 했다.
아시아경제 인터뷰 (2015.09.22)


방법은 명확해졌다.

자기의 결에 잘 맞는 ‘사부’ 한 분 모시고,

그의 글을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기(필사, 리라이팅 등)

이 방법이 최고이지 싶다.


나에게는 그 사람이 ‘루쉰’이다.


# 모쪼록

읽고 쓰는 우리의 여정에서

갈림길을 만나던 막다른 길을 만나던

어떠하든지 간에

놀라지도 울지도 말고

루쉰이 빌려준 지혜를 떠올리며

건독하고 건필하시길...


에어컨을 틀지 않으니

열린 창문으로 들어서는 푸른 달빛을 만나는 밤,

어쩌면 '줸성'도 저런 달을 바라보며 '쯔쥔'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20250710_002249.jpg


더운 날씨,

읽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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