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책의 띠지에 적힌 이 문장을 봤다.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진정한 당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다."(카를 융)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마음에 지진이 일어나고,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진정한 나로 살아가라고,
나의 마흔에도 그 신호가 분명히 있었다.
첫 신호는 우연히 잡혔다. 마흔의 9월.
주말을 맞아 한가롭게 신문을 뒤적이는데 칼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략)
※ 이 글은 다음 주 화요일(7.15)에 브런치 통해 소개 예정
앞선 글에 등장하는 ‘띠지 두른 책’은 <The middle passage> (1993)─국내에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로 출판─이고, 저자는 미국 태생의 제임스 홀리스(James Hollis, 1940~ )이다. 융 심리학자로 잘 알려진 그의 주요 관심사는 중년의 위기, 자기 발견, 개인적 권위, 삶의 의미 찾기 등이다.
저자는 ‘중간항로(The middle passage)’를 전반기의 삶(1차 성인기: 적응, 기대 충족, 외부 규범의 수용)에서 후반기의 삶(2차 성인기: 의미 중심, 내적 정직성, 자기의 발견)으로 이행하는 심리적 이행 과정이라 정의한다. 중간항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중간항로라는) 이 길을 의식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삶을 더 의미 있게 구축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삶은 화려할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갇힌 채 살 수밖에 없다.” (9)
그가 이토록 중간항로를 강조하는 이유는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 외부 세계의 기준(돈, 명예, 사회적 역할, '좋은 사람 되기')만을 따라갈 경우, 삶은 점점 텅 빈 껍질이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Hollis는 ‘의식적으로 사는 삶’을 제안한다. 가령, 묻는 것이다.
“중간항로는 우리가 ‘지금까지의 내 삶과 역할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 (38)
하지만, 바쁘게 살다 보면 이런 질문들을 건너뛰거나 미루거나 잊기 십상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제까지의 소소한 경험에 비춰만 봐도, 삶은 우리를 다시 그 질문 앞에 세우더라. 그러니 삶의 어느 순간에든 뭔가 심각한 물음이 내 안에서 지진처럼 요동친다면, 조용히 그 물음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일부러 질문을 던지지 않더라도, 삶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가장 민감한 시기를 Hollis는 통과 의례의 중간항로로 포착했다.
중요한 것은 삶이 던지는 이 물음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보여주는 삶, 비교되는 삶, 죽으라고 뛰어야 만 살아남는 붉은 여왕의 시대에 이게 가능할까? 느린 질문과 답장, 숙고하는 삶, 자기 이해의 과정은 자칫 비효율, 비생산, 적응에 실패한 패배자처럼 비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는 분명 도전과 용기, 중심 이동과 선언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늘 선택, 그 무기를 언제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 Hollis는 약 12세에서 40세까지의 기간을 1차 성인기라 부른다.
제임스 홀리스의 책
Living Between Worlds (2020) – 오십, 어떻게 살아야 할까
What Matters Most (2009)-나를 숙고하는 삶
The Middle Passage (1993)-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을 읽으며 그의 생각을 생각해 보니
2025년 2월, 21세기북스에서 낸
Finding Meaning in the Second Half of Life (2005)
(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의 내용이 대략 그려진다.
제임스 홀리스,
어쩌면 카를 융 심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읽고 싶다면,
나라면 원서를 낸 순서
1993 → 2005 → 2009 → 2020으로 읽겠다.
지금은 여름,
마흔은 인생의 여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도 지나간다.
계절이든 삶이든
중간항로에 들어선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아직 초복에도 이르지 않았지만
이 여름을 계절의 중간항로,
전환점을 맞이하는 통로라 여기면
세상만사 늘어지게 만드는 이 더위가
오히려 좀 더 의식적인 시간을 제공하지 않을까?
그 덕분으로 좀 더 의식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면에 있는 것이 억압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프고 자기소외를 겪는다. 내면에 있는 것을 긍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나 찾아 헤매던 올바른 길이 바로 거기 있음을 깨닫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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