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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있다.
학생들은,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이번 연휴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겠다.
오랜만에 주어지는 긴 여유, 참으로 소중하다.
특히 계절이 가을이고, 감각이 시월이고, 마음이 추석이니 더욱 그렇다.
추석 연휴라는 시간적 호사를 어떻게 보낼지 하는 설렘에
약간의 진지함을 얹는다면, 우리의 연휴는 분명
남다른 의미를 얻을 것이다.
여행을 하든, 맛집을 찾든, 반가운 사람을 만나든,
혹은 틈틈이 남는 시간이 주어지거든
그 모든 자유로움에 약간의 구속 같은
딱딱하고 긴장되는 집중의 '의식'을 가져보자.
다시 말해, 읽기와 쓰기를 해보시라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시간을 붙잡는 기술이다.
읽기는 이미 흘러간 시간 속 타인의 흔적을 내 안에 붙잡는 일이고,
쓰기는 지금 흘러가는 순간을 내 언어로 붙드는 일이다.
읽기와 쓰기는 ‘시월이고 가을이고 추석’이라는
하나의 덩어리 같은 시간을
풀어내고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기술이다.
그다지 화려한 기술 없이도 얼마든지
펼칠 수 있으니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 속 감각-기쁨, 슬픔, 행복, 아름다움 등-
가운데 하나를 반드시 깨운다.
새로운 감각과 시선으로 미처 보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던 그 무엇을 경험해 보자.
읽기와 쓰기가 당신을 천천히 흔들고 다듬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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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저것을 뒤지다 결국 메리 올리버로 ‘다시’ 이끌렸다.
맞다.
내가 찾은 게 아니라 그녀가 나를 끌어들인 것이다.
“메리 올리버는 변치 않은 시적 언어로 자연과 인간, 살아간다는 것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휘파람 부는 사람, 책 소개에서
글로 ‘살아간다는 것’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하니,
요즘처럼 유튜브가 대세인 시절에,
삶에 깃든 경이로움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다 하니, 읽지 않을 수 있는가.
시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여름날(The Summer Day)’을 읽어보자.
“누가 세상을 만들었을까?
누가 백조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검은 곰은?
누가 메뚜기를 만들었을까?
바로 이 메뚜기, 방금 풀밭에서 튀어나와
내 손바닥의 설탕을 먹고 있는 이 녀석을
위아래가 아니라 앞뒤로 턱을 움직이며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녀석을
이제 메뚜기는 연한 색 앞다리를 들어 올려
얼굴을 철저히 닦고 있다
그러고는 재빨리 날개를 펼쳐 멀리 날아간다”
-'여름날'의 번역은 인터넷을 뒤져 '류시화 옮김'으로 가져왔다
시인은 자연을 바라보되 매우 깊이 바라본다.
이 디테일이 존재를 대하는 시인의 태도다.
시인은 메뚜기조차 단지 ‘귀엽다’고 느끼는 수준을 넘어,
낱낱이 꼼꼼하게 마치 생물학자가 현미경으로 대상을 탐구하듯 주의 깊게 바라본다.
덕분에 우리는 시인의 ‘손바닥 위 메뚜기’에서 존재의 경이로움을 보게 된다.
어떤 이는 이 경이로움을 직접 느끼려고 실험을 감행할 것이다.
여러 번 곱씹어야 하는 중반의 '기도'를 지나
후반부는 경이로움에서 존재론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마침 여름날이 끝나가는 무렵이라 잘 어울리는 물음이다.
“말해 보라, 내가 달리 무엇을 했어야 하는가?
결국엔 모든 것이 죽지 않는가, 그것도 너무 일찍?”
Tell me, what else should I have done?
Doesn't everything die at last, and too soon?
풀밭을 뛰노는 메뚜기도, 백조도, 검은 곰도...
모든 것은 결국 죽는다. 그것도 너무 빨리.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시인은 마지막에서 묻는다.
“말해 보라, 당신의 계획이 무엇인지
당신의 하나뿐인 이 야생의 소중한 삶을 걸고
당신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Tell me, what is it you plan to do
With your one wild and precious life?
어떤 답을 할 것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연휴는 연휴보다 더 길어진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답이 물음이 되는 시,
고동침과 숨차오름과 세속적인 기쁨과 경이로움이 있는 글.
이번 연휴에는 메리 올리버를 읽어야겠다.
가슴속 고동치는 한 줄, 노트에 담아야겠다.
“나는 내 시가 무언가를 묻기를, 그리고 그 시의 절정에서 그 질문이 응답되지 않은 상태로 남기를 원한다. 질문에 답하는 건 독자의 몫임이 작가와 독자 간의 약속에 명시되어 있음을 분명히 해주기를 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내 시가 고동침을, 숨차오름을, 세속적인 기쁨의 순간을 담기를 원한다.”
-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