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열정
강의하다 보면 꼭 마주치는 사람, 강의 후에도 더 많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강의 참석자가 대학생, 취업 준비생, 입사 2~3년 차의 직장인인 경우에는 ‘이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그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죽이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 기울이고 열심히 메모하거나, 핸드폰으로 강의 슬라이드를 찍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 이야기에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묵묵히 듣지만 여전히 답답하다는 속내를 얼굴 가득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그 표정의 사람들은 강의에서 말하는 핵심 키워드에 솔깃하지 않는다. 그 말들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그 말과 현실의 연결을 궁금해한다. 가령, 열정이라는 이야기가 그렇다.
열정, 중요한 말이다. 청춘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열정 없이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들은 행운조차 열정의 결과라고 말한다. 열정은 무언가를 이루는 사람들의 공통된 언어이고, 그들의 삶은 말보다 앞서 열정을 증명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열정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열정의 중요성을 되풀이할 뿐이다. 문제는, 그 누구도 열정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그것을 마음대로 불러올 수 없다는 데 있다. 열정은 안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마치 공부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책을 펼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는 열정의 필요를 알지만 그 마음을 꺼내 쓰지 못한다.
왜 그럴까? 열정이란,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감 넘치게 행동하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가? 아니면 그보다 더 조용하고 깊은 무언가일까?
사전은 열정을 이렇게 풀이한다.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결국 사랑과 집중, 이 두 단어가 열정의 본질이다. 하지만 그 앞에 더 근본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일’, 즉, 내가 사랑하고 집중할 만한 대상이다. 우리 삶에서 열정이 사라지는 이유는 대체로 그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무엇에 내 애정과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순간의 열정은 자주 목격된다. 운동 경기에서, 면접장 안에서, 신입 사원 환영회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패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순간, 혹은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선 아이디어로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눈빛을 번뜩인다. 승부욕과 확신, 결단이 한데 어우러져 불꽃처럼 타오른다. 그때만큼은 누구나 열정적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은 다르다. 누가 시켜주지 않은 일,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자기 삶의 문제들 앞에서 그 열정은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그 마음을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기란 더더욱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은 서서히 식어가는 물컵 같다. 아침의 다짐은 점심 무렵 식고, 저녁이 되면 하루가 도대체 흥미롭지 않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그 열심에는 온기가 없다. 열정은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 듯, 텅 빈자리에 습기만 남는다.
내가 강의장에서 자주 만나고 더 많이 관심 기울이는 이들의 삶이기도 하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열정의 중요성은 잘 압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 애정을 기울이고 열중해야 할지 그걸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열정을 품기엔 맞지 않는 일 같습니다.”
그 말은 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너무 사적인 고민이라 사람들 앞에서 털어놓기엔 쑥스럽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속으로만 수없이 되뇌며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그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의외로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강의장을 벗어나도, 회사 복도에서도, 카페 창가에서도, 비슷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열정을 잃고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얼굴들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찾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르는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일’을 강조하는 말들은 시대와 언어를 넘어 늘 반복되어 왔다.
토마스 칼라일은 말했다.
“자신의 일을 찾은 사람은 행복하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덧붙였다.
“자신의 일을 하라! 그러면 당신 자신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근원을 일에서 찾았다.
“견실한 목적이 행복한 인생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수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견실한 목적은 대개 일을 통해서 구현된다.”
결국, 자신의 일을 찾으려는 고민은 결코 헛되지 않다. 때늦은 일도 아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 하나다. 우리는 ‘그 일’을 너무 멀리서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관심 가는 일을 탐색하는 것은 좋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열정과 무관하다고 단정해버리는 태도—그게 안타깝다. 열렬히 사랑하고 몰입할 대상을 멀리 바깥에서 찾는 동안, 정작 내 앞의 일상은 손끝에서 식어버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를 열정적이게 만드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말을 들어보자. 그녀는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에서 열정과 삶의 관계를 이렇게 적었다.
“누구나 특별한 삶을 꿈꾸지만 사실 특별한 삶이란 없습니다.
보통의 삶을 특별한 열정으로 살면 그것이 바로 특별한 삶이 되는 거죠.”
그녀의 말은 단순하지만 깊다. 특별한 일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일을 특별하게 만든다. 결국 열정이란, 먼 곳의 불씨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피워 올릴 수 있는 작은 불빛이다.
(2에서 계속...)
※ 이 글은 2015년 3월에 낸 『언더라인』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현재, 『언더라인』 개정판을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