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어디서 살 수 있나요 (2)

7. 열정

by 별들의강


사람은 종종 지금의 일에서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언젠가 찾아올 막연한 행복을 좇는다. 이를 ‘파랑새 증후군(Bluebird Syndrome)’이라 부른다. 이 말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에서 비롯되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날, 어린 남매 틸틸과 미틸은 병든 아이를 행복하게 해 달라는 요정의 부탁으로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숲을 지나고, 기억의 방과 미래의 나라까지 헤매지만,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한 채 지쳐 돌아와 잠이 든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이 증후군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신입 사원의 이직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더 좋은 곳’을 찾는데 적극적이고 그렇게 찾아낸 직장으로 쉽게 옮겨 간다. 이직을 고려하는 여러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입사 초기에 가졌던 초심을 잃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힘겨운 취업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가야 할 길인지를 생각할 겨를 없이 회사문을 두드리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는 입사 전 꿈꿨던 것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러한 현실을 확인하며 많은 이들이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인사 담당자는 그런 퇴사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러나 신입 사원 입장에서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 나은 근무 환경, 더 많은 자기 계발의 기회를 찾아 이직을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자신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리더를 떠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일이다. 하지만, 단지 더 좋은 조건만을 좇는 이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희망과 행복이 다른 환경에, 조금 더 나은 조건에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착각일 수 있다.


직장만 놓고 본다면, 그곳은 희망을 주는 장소가 아니다. 직장이 한 개인에게 열정을 선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장은 누군가의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개인의 시간을 빌려 쓰는 곳이다. 일을 맡은 사람은 일을 끝내야 한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도 있고, 때로는 자신을 조금 내어줘야 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직장은 언제나 쉽지 않다.


결국, 희망과 행복은 조직의 구조 안이 아니라, 나 자신 안에 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지금의 일과 직장은 최악이 되기도, 최고가 되기도 한다. 행복 연구로 유명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외부의 사물에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의 말처럼, 세상이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직장 또한 다르지 않다. ‘어떤 곳’이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열정을 결정한다.


마테를링크는 『파랑새』의 마지막 장면에서 행복이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주인공 틸틸은 ‘파랑새’가 집에서 키웠던 새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자신의 오두막집이 전보다 훨씬 아름다워졌다고 느낀다. 틸틸은 행복과 파랑새가 늘 자기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자신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마테를링크가 말한 행복은 새로운 장소나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그는 묻는다.


“당신은 이미 가진 것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믿는 열정도 다르지 않다. 열정은 파랑새를 쫓듯, 어딘가 멀리서 ‘특별한 일’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내가 매일 맞이하는 하루, 내가 걸어온 길, 그 모든 평범한 시간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애정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오늘이다. 삶에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만이 비로소 삶의 빛을 본다.


같지만 다르게 보기


열정을 불태울 대상은 언제나 지금의 삶이다. 물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때로 감당하기 어렵다.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느끼는 일을 억지로 이어가야 할 때도 있다.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마음은 이미 떠나고, 모든 것이 귀찮아지며,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최악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지금의 일이란, 애초부터 열정을 허락하지 않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때로는 열정을 내려놓는 용기, 그 자체가 한 인간의 정당한 생존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순간을 밀어내지 말자. 최악을 망각하거나 흘려버리지도 말자. 현실이 최악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 순간을 읽어야 한다. 시시포스처럼 말이다. 이 말은 버티거나, 끝없는 노력을 강요하자는 뜻이 아니다. 이 순간을 다르게 보자는 것이다.


다르게 보는 힘, 그것이야말로 이겨내는 힘이다. 그 힘으로 삶의 틈을 만들어야 한다. 그 틈을 통해, 우리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교두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거기까지 나아가도록 우리를 끌어주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힘이다. 삶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고, 같은 일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힘이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읽기다. 책은 영감(inspiration)의 출처다. 깨달음의 근원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책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왔다. 지금의 일과 삶에서 돌파구를 만드는 것도 새로운 영감을 얻을 때 가능해진다. 우리의 일과 삶에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을 제공하여 현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영감이다.


영감은 행동을 바꾸게 한다. 주저하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고, 익숙한 길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같은 일이라도 그것을 대하는 생각과 시선을 바꾸어 과감히 나갈 수 있게 자극한다. 지금의 일에서 사랑하고 열중할 수 있는 무엇을 찾도록 작동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목표를 얻을 수 있고, 당연하게 여겨오던 일상을 다르게 해석해 낸다. 그렇게 우리는 목표를 위해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목표를 바꾸는 법을 배운다.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은 거창한 결심보다, 단 하나의 ‘낱말’에서 시작할 때가 있다. 읽는 이의 마음을 ‘쿵’ 울리고 ‘확’ 사로잡는 바로 그 단어. 그 작은 울림이 잠들어 있던 감각을 흔들고, 멈춰 있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하나의 단어가 열중할 만한 일을 비추고, 그 일은 다시 우리를 변화로 이끈다. 이것이 열정이 피어나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읽어야 한다. 책은 영감의 통로이자,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두 번째 눈이다. 읽을 때마다 우리는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자신을 새롭게 이해한다. 나는 『길 끝에서 길 찾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를 깨우는 것, 그것이 책이다. 그래서 열정을 잃었다면, 그것을 되찾고자 한다면 읽어야 한다. 그 힘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자기 자신을 읽고 세상을 읽어야 한다. 책은 나와 세상을 읽게 만들어 결국 무언가를 다시 하게 한다. 이 읽기가 내가 머무르는 세계를 돌파하려는 몸부림이다.”

(이효정, 길 끝에서 길 찾기, 초록물고기)


책은 세상을 읽는 법을 가르치는 동시에, 나 자신을 다시 읽게 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멈춰 있던 세계의 문을 조용히 밀고 나아간다.


열정이 함께하는 ‘자신의 일’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읽기다. 책이 영감의 출처라는 사실은 숱한 위인들의 삶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의미와 순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니 삶이 뿌연 안개에 덮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읽어야 한다. 이미 자신의 일을 찾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읽기는 그 일을 더 단단하게, 더 깊게 만든다.


삶을 제대로 읽기 위해, 우리는 다시 읽기 자체에 힘을 들여야 한다. 읽기는 생활의 기술이며,
잘 살아내는 법을 익히는 연습이다. 그것이 익숙해질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그 안에서 즐거움이 자라난다. 실험해 보시라.




※ 이 글은 2015년 3월에 낸 『언더라인』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현재, 『언더라인』 개정판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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