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회복 소비쿠폰 포인트 2660원 사용기한이 곧 종료됩니다.”
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바로 앞에 있는 마트에 들렀다.
선반 위 하이트 500ml 캔 앞에 2600원이라고 적혀 있다.
30분만 더 걸으면 2150원이다.
30분과 450원을 저울질하다 멈췄다
나는 지금 남은 민생쿠폰을 다 소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물건이 2600원이다.
하이트 캔 맥주를 계산했더니
바로 메시지가 날아온다.
사용 2600원, 잔여 60원
민생회복을 위해 0원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60원짜리 물건이 없다.
잔액은 환불되지 않고 자동 소멸된다고 한다.
천 원도 만 원도 돈이 아니라며
한탄하는 시대에, 60원은 과연 무엇인가.
주머니에서 지폐가 사라진 지 오래고,
찰랑찰랑 절그럭절그럭 대는 동전은 그보다 더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다.
내 호주머니에서 동전이 먼저 사라진 건지,
마트 선반에서 물건이 먼저 사라진 건지 구분조차 어렵다.
천냥 백화점이 있고 다이소가 있지만 십 원짜리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판기, 버스, 지하철은 모두 100원 단위로 맞춰졌고,
껌과 새우깡, 하드는 어느새 1000원을 훌쩍 넘어섰다.
공중전화박스에 십 원짜리를 넣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10원짜리, 50원짜리, 심지어 1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며
초조하게 남은 동전을 매만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십 원짜리들의 추억 때문인지
그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저 ‘자동 소멸’이라는 단어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저 단어가 주는 위압감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소멸되도록 설계된 구조— 이것이 무섭다.
60원은 거대 시스템이 밀어내는 작은 것들의 표본이다.
동네 구멍가게는 대형 마트의 브랜드 앞에서 사라지고,
작은 목소리는 거대 담론에 파묻히고,
소소한 행복은 람보르기니 뒤로 숨어버린다.
오늘 가까스로 포착된 한 감정은 숏츠 알고리즘 앞에서 휘발된다.
하다 못해
그것은 내 안에 있던 깨알 같은 것들의 소멸이기도 하다.
이건 꼭 해야겠다 저장해 둔 자잘한 기억,
냉장고 구석진 데서 꺼내겠다고 문을 열다 사라진 생각,
짧지만 의미 있었던 눈인사,
키보드를 달리는 손 위에서 번쩍 스치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다음 문장들.
‘60원’은 ‘존재하나 호출되지 않은 가치’들의 은유다.
60원은 우리 사회에서 밀려난 모든 작은 가치들의 무덤,
그 작은 것들이 남기고 간 마지막 유언이다.
11월 30일, 60원은 자동 소멸한다.
그러나 나의 물음은 여전히 주변을 떠돈다.
내 삶에서 자동 소멸되는 ‘60원’은 무엇인가.
세상이 버리라 하는 것들 중, 나는 무엇을 끝내 지키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