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

8. 관점

by 별들의강


읽기는 결국 관찰과 사색의 기술이다. 마음속에 번쩍 스치는 섬광을 붙잡기 위해 잠시 멈추는 일, 그리고 그 섬광의 의미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세상을 예리하게 읽는 사람들이 그 첫걸음을 책에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은 보는 힘과 생각하는 힘을 동시에 단련시키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는 ‘보는 힘’을 중심으로 살폈다. 이제는 그 힘이 어떻게 ‘생각하는 힘’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굳이 책이 아니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다고. 이는 독서의 매력을 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잘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생각은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사전에 따르면 생각은 ‘머리를 써서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이다. 즉, 생각은 해석과 판단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생각한다. 오늘 점심을 무엇으로 할지, 십 년 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사랑하는 사람의 말뜻과 행동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등을 쉼 없이 고민한다.


이처럼 생각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읽기가 신호에 대한 해독과 판단인 것처럼 신호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생각이 함께 한다. 생각과 읽기는 늘 함께 간다.


가장 어려운 지점은 ‘관계 속의 생각’이다. 건너편 사람에게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일 때, 사회적 가치와 개인의 가치가 충돌할 때, 우리는 평소보다 깊은 사유를 요구받는다. 예컨대 뒤따르던 구급차가 내 차를 들이받았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판단이 먼저 떠오를까. ‘내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즉각적인 반응일까, 아니면 ‘저 차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급했을까’라는 물음일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혼수상태의 아이를 태운 구급차가 병원으로 급히 이동하던 중 앞 차와 접촉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자 앞 차의 운전자는 구급차를 가로막고 사고 처리를 요구했다. 여론은 크게 들끓었다. 사람들은 그의 판단을 나무랐다. 그는 표면적인 ‘접촉 사고’만 읽고, 구급차 안의 절박한 사정을 읽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히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순간적인 판단 앞에 무력해질 때가 있다. 대니얼 카너먼이 설명했듯 인간의 사고는 언제나 느린 사고(slow thinking)의 시스템 2보다 빠른 사고(fast thinking)의 시스템 1이 먼저 튀어나오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반응이 깊은 사유를 앞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구조다.


이쯤에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떠오른다. “이 사례가 독서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 정도 판단은 책을 읽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독서의 의미가 드러난다.


구급차 이야기는 운전자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책 읽기가 왜 ‘생각하는 힘’을 확장시키는지 살펴보기 위한 작은 창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을 읽는 일이자 동시에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 즉 ‘헤아림’을 연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핑커의 연구는 이러한 독서의 효과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 역사 속 폭력이 점차 감소해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로 독서의 확산을 제시한다. 그의 논지는 단순하다. 독서는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연민과 감정 이입을 키우며,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술을 길러준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독서는 관점 취하기(perspective-taking)의 기술이다.

남의 글을 읽는 버릇은 남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버릇을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은 저자와 인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의 기쁨과 고통, 태도와 반응을 잠시나마 공유한다. 이 반복된 공유가 ‘공감의 근육’을 키운다. 그리고 이 근육 덕분에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느끼고, 자신이 저지르는 폭력의 가능성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책 없이도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구급차 안의 엄마가 느꼈을 절박함, 가라앉는 배 안에서 어린 학생들이 느꼈을 공포, 저항조차 못하고 쓰러지는 아이의 두려움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상상을 놓치는 일이 너무 잦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점 취하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버릇이 되어야 한다. “남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버릇”이 없다면 우리 내면의 천사는 사라진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즉 관점 취하기는 나의 생각을 성숙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숙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덜 어둡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 이 글은 2015년 3월에 낸 『언더라인』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언더라인'의 기대 독자층은 '2초3초(20대초~30대초)'이고 '청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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