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조

– 헤매고 비고, 비우고

by 별들의강


일요일, 탁구대회가 있었다.


헤매는 것,

그게 이날의 전조였다.


버스가 갑자기 우회전하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달린다.

이럴 땐 “아뿔싸!”라고 해야 하나, “이런~”이라고 나오는 대로 뱉어야 하나.

결국 택시로 대회장에 도착했다.

버스를 잘못 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점심식사를 제공한다.

걸어서 6분 걸리는 식당을 찾지 못해 빙빙 돌았다.

한참을 걸으며 왁자지껄 떠들어도 속마음까지 딸려 나오지는 않았다.

반바지 차림에도 춥지 않았다.


물어 물어 도착한 식당, 식판 가득 음식을 담았다.

주걱으로 푹 찔러 하얀 쌀밥을 퍼내고,

그 옆에 빛깔 좋은 김치, 새우 들어간 마늘쫑 볶음,

목이버섯과 양파, 당근이 어울린 잡채, 단골메뉴 제육볶음까지 쌓았다.

빈틈 하나 없는 접시가 만족스러웠다.

함께 한 일행들 식판은 휑하니 비어 있다.


갑자기 ‘비어 있음’이 떠올랐다.

가까운 옛날,

동료는 회의실 앞에 걸어 둔 푯말 “비어 있음”을 “beer 있음”으로 읽었다.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 말이 동시에 쓰였다.


예선 1위로 통과한 본선 첫 경기, 3대 2로 다시 역전패!


허전하게 텅텅 비어 버린 내 마음을 알아챈

싹싹한 후배가 트렁크에 beer 있다고 말한다.


육포를 뜯으며 500ml 캔 두 개를 비웠다.

이유가 뭘까. 이유가 뭘까. 이유가…

나의 탁구조차 길 위에서 헤매는 중이다.


장내 방송은 다음 출전자를 부르고
와— 하는 탄성이 경기장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이제 내 이름은 불리지 않을 것이다.


눈을 감고 누웠다.

09:40 무렵, 내 이름이 불렸다.

5번탁에 출전해 여자 1, 남자 1과 아등바등하며 경기를 즐긴다.

서브 미스가 있어도 커트 드라이브와 백 푸시가 잘 먹힌다.

그래, 그거면 됐다.


잠시 누웠을 뿐인데

옆에서 지켜본 사람 말로는 코까지 골며 잤단다.

하—

한 대 얻어맞고 나면 정신이 얼얼해 나머지는 감각조차 흐려지는 법이다.


길을 못 찾아 헤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라는 게 제때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그때까지 어김없이 아프고,

뒤늦게 이유를 알고 나서 더 아프다.


내가 아플 때는 뭐가 뭔지 모를 때다.

이유 없기에 아프고,

이유를 알 수 없어 고달프다.

미주알고주알 들려주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헤매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두고

결과를 고요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버스에서 식당으로, 탁구로.

어느덧 내 삶까지 길 위에서 헤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남긴 하루였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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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자!

박현욱 산문, <탁구를 읽자>

"작고 하얀 공 하나가 높이 올라가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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