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이로움을 회복하려면

브라이언 클라스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by 별들의강


1.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모든 날이 비슷비슷하고, 길을 걸어도 아무 감각 없이 지나친다.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복잡한데, 그 속에서 나는 그저 작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일상에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껴 본 지도 오래다. 이제는 자유로움마저 희미해진다. 그러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 무력감이다. 도대체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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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통은 혼란스러운 세상이 문제라고 여긴다. 하지만 브라이언 클라스 교수는 전혀 다른 지점을 가리킨다.


“통제할 수 없는 세계를 통제하려고 애쓰는 집착”


우리가 무기력한 것은 세상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관이다. 실패할 때마다 “내가 부족해서”, “계획이 틀려서”라고 자책하는 이유도 결국 이 믿음 때문이다.


주변에서 관찰되는 사람들의 믿음은 이렇다. 세상은 관리할 수 있다. 효율과 계획으로 원하는 방향을 만들 수 있다. 모든 결과는 노력의 합이다…


그러나 실제 세계는 예측할 수 없고, 복잡하며, 우연과 변동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은 원래부터 통제할 수 없는 곳인데, 우리는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바로 이 모순이 무력감의 깊은 뿌리다.


3.

그렇다면,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클라스는 이 질문에 두 개념을 제시한다.


우발성(contingency): 사소한 사건 하나가 방향을 크게 바꾸는 불규칙성

수렴성(convergence): 그렇게 터져 나온 우연을 다시 일정한 방향으로 모아내는 힘


세상은 이 두 흐름 사이에서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멀리서 보면 질서가 있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미세한 우연들이 끊임없이 틈을 만들고, 수정하고 재배열하며 전체의 흐름을 바꿔 놓는다. 클라스는 이 세계를 ‘우발적인 수렴성’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세계는 수렴성과 우발성 사이에서 움직이면서 구조와 질서라는 환상을 심어주다가, 하나의 사소한 수정으로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4.

우발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바로 잔물결 효과다. 당시에는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작은 선택 하나가 시간을 건너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결말을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원자폭탄이 떨어질 도시가 ‘교토’에서 ‘히로시마’로 바뀐 이유는 군사 전략이 아니라 1926년 스팀슨 부부의 여행 경험 때문이었다. 헨리 스팀슨은 교토를 깊이 사랑했고, 수십 년 뒤 목표 도시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교토를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그 한 번의 수정이 수십만 명의 생사와 일본 도시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이것이 잔물결 효과다.


작은 사건이 거대한 구조를 다시 쓰는 방식. 이는 우리가 매일, 의식하지 못한 채 경험하며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5.

세상은 겉으로는 질서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세한 요인들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커다란 변화로 나타난다. 심지어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우리는 이런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클라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우연성의 세계에 맞는 삶의 태도를 가져라.


“통제를 내려놓을 때 오히려 삶의 경이로움과 자유로움이 회복된다.”


독일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사는 “통제 불가능한 것들을 마주해야만 우리는 정말로 세상을 경험한다”라고 말했다.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미래를 최적화하려는 강박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의 고유성과 우발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삶은 거대한 교향곡이고, 우리는 지휘자가 아니라 연주자다. 이 인식이 겸손을 낳고, 우리 존재를 우주의 광대한 미지 속에 놓는다. 그때 필요한 말은 하나다. 나는 모른다.


6.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작은 사람처럼 느낀다. 세상의 크기와 복잡함 앞에서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말, 내 하루의 선택이 아무 영향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클라스는 여기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덧붙인다.


우발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행동이 잔물결을 남긴다. 그 잔물결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세계를 건드린다. 어떤 결정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결말로 이어진다. 이것은 누군가의 의도나 계획이 아니라, 우발성이 차곡차곡 쌓이며 만들어내는 결과다. 클라스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는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지만,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7.

지금 선택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하다. 거대한 계획이 아니어도, 완벽한 준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작은 시작, 느린 출발, 사소한 선택, 예상 밖의 태도, 이 모든 것이 잔물결을 만드는 행동이다.


한 줄의 글쓰기, 다른 길로 걷는 30분, 던져보는 질문 하나, 고독를 허락하는 1분, 누군가에게 보내는 짧은 격려. 이 작은 행동들은 세계에 파문을 남기고, 그 파문은 연대와 협력 속에서 또 다른 파문을 낳는다. 우리는 이렇게 실험하고 탐색하면서 조금씩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에게 엮여 있으며, 이는 엄청난 선물을 안겨준다.

즉,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중요하다. 지금 하기로 결심한 것이 무엇이든 중요하다.

이 책을 덮고, 우리가 집이라 부르는 이 경이롭고 미칠 것만 같으며

무한히 복잡한 세계를 탐험하러 나가자.”


덕분에, 내가 만들고 싶은 파문을 생각해 봤다. 이런 것이다.

삶에서 잃어버린 경이로움을 회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탐험할 것.

그리고 그 경험을 블로그와 브런치를 통해 잔물결처럼 퍼뜨릴 것.

이것이 내가 선택한 파문이다.


8.

어려운 책이다.

한참을 생각하며 되짚어 읽어도 두루뭉실 이해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책 <권력의 심리학>을 읽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이 책은 ‘과도한 J 성향’, 즉 통제와 계획에 익숙해

예측 가능성을 선호하고, 일정이 조금만 어긋나도 불편해지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관점을, 때로는 작은 해방감을 줄 것이다.


‘후루꾸’라는 말을 써 본 사람에게도 이 책, FLUKE가 유효할 것이다.

그들은 우연이 단순한 요행이 아니라,

삶의 경이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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