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대가는 주로 ‘돈’으로 보상된다.
가장 명확한 시스템은 ‘월급’이다.
약속한 노동과 서비스를 제공하면
회사는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방식으로 보상한다.
예측 가능성, 심리적 안전감, 재정 계획의 용이함—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제공하는 구조다.
자신이 투입한 시간을 가장 확실하게 되돌려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급 주체인 ‘회사’를 잃거나 떠나온 사람들은 부지런해야 한다.
아무리 열망과 능력이 있어도
자신이 제공한 서비스의 대가가 제때 돌아오지 않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무형에 가까운 가치를 제공하는 창작자들은 더욱 그렇다.
시인, 소설가, 작곡가, 연극인, 무용수, 화가, 사진작가,
유튜버, 인플루언서, 그리고 나처럼 브런치/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들까지.
이들은 ‘월급’과 거리가 멀다.
대신 들쭉날쭉한 일당, 불규칙한 수수료,
그리고 플랫폼 알고리즘의 기분에 따라 휘둘리는 성과 보상에 의존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쪽에는 ‘시간 기반 보상’의 월급이 있고
회사라는 울타리 바깥쪽에는 ‘결과 기반 보상’의 일당과 수수료가 있다.
울타리 안쪽은 안전의 경제이고 울타리 바깥은 모험의 경제다.
울타리 안쪽은 자기 시간을 타인에게 팔아서 받는 보상이고,
울타리 바깥은 자기 시간을 자기에게 팔아서 얻는 보상이다.
달리 말하면,
안쪽은 타인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시스템이고,
바깥쪽은 자기의 질서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시스템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
확실한 것은 언젠가는 누구나 울타리 바깥에 서게 된다는 사실이다.
회사를 떠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고,
회사보다 스스로를 믿어야 하는 시점이 올 수도 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장황하게 나열하는가 하면,
오늘 느닷없이 ‘월급’ 같은 느낌의 ‘수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카카오 창작자 정산센터에서 보내온 톡.
응원하기 정산 완료
수익발생월: 2025년 11월
입금일자: 12월 15일
와우!
순간 설렜다.
카카오가 내 글쓰기 열망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나에게 분명히 말해줬다.
“글을 쓰면 원고료가 나온다."
시급 1만 원 시대에
한 편 글 값이 2613원이라는 사실에 놀랐지만,
실망하기 어려운 설렘과 기쁨과 환호가 조금 더 컸다.
야호~
카카오가 이렇게 ‘응원하기’ 보상 제도를 앞세우는데,
네이버는 어떤가.
모르겠다!
쥐꼬리만한 애드포스트 수익이 있고,
실험할 만한 브랜드 커넥트 수익이 있는데
계산할 정도는 아니니 나중에 따져봐야겠다.
중요한 것은 ‘원고료’스런 보상을 받았다는 점이다.
원고료가 아닌 응원하기라는 표현이어도 상관없다.
“글을 썼더니 원고료가 나왔다.”
이게 중요하다.
울타리 바깥에서
시간을 나에게 쓰고, 불확실성을 감당한 뒤에 얻는 결과,
이게 소중했다.
이 구조의 본질은 자율성이다.
누구의 개입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아주 작지만 분명한 보상이 생겼다는 진실.
이 일은 자율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희열이지만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공포가 될 것이다.
나는 그 공포를 견뎌내고 희열을 얻었지만,
이 보상이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더 큰 공포를 느낀다.
희열과 공포가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세계-
창작자는 늘 그 경계에서 산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글을 열심히 써야 할까.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할까.
아니면 돈 버는 글을 열심히 써야 할까.
이런 염려를 하면서도
이런 장황한 글을 쓰는 것을 보면
답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는 셈이다.
나는 오늘도 울타리 밖에서
나의 시간을 나에게 팔고 있는 중이다.
아, 한 가지 더!
글쓰기에 지칠 때
또는 일 때문에 힘이 들 때면
브런치에 글 하나를 올린다.
그러면 핸드폰은 나에게 하루 종일
'띵동'이라는 맬로디를 들려준다.
나를 격하게 응원하는 저 아름다운 박수,
조용하지만 분명한 응원의 함성.
그 신호에 또다시 몽롱한 희열을 느끼고 도취에 빠진다.
읽었거나 안 읽었거나 상관없다.
하루 종일이라 해도 융단 폭격 같은 일은 아니다.
띵띠리딩띵~띵띵.........띵~~~~~~~~동...........................띵~~~~~~~~~~~~~~~~~~~~동.........
그럴지라도 내 마음은 설레고 얼굴은 발그레진다.
나는 오늘도 울타리 밖에서 혼자만 있지 않다.
바깥에는 나도 있으니, 함께 가자, 그대여!
그런 신호를 받는다.
글을 열심히 써야 할까... 고마워요, 조정래!
<홀로 쓰고, 함께 살다> 2020, 해냄출판사
대문 이미지: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