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이 문장에 붙들리고 말았다.
결국 다음 줄로 넘어가지 못하고 며칠째 주변을 맴돈다.
쉽게 읽을 책인데, 왜 이 문장에서 발이 묶였을까.
저자와 책 이름은 나중에 밝히기로 하고,
지금은 이 문장에 사로잡힌 감정부터 정리하고 가야겠다.
이 문장은 지나치게 담담하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
그는 자기 일을 분명히 말한다.
자신의 일이 ‘책을 쓰는 일’이라고 밝힌다.
글쓰기 전반이 아니다.
기록도, 일기도, SNS도, 기고도 아니다.
취미나 습작은 더더욱 아니다.
‘책’이라는 완결된 결과물을 내는 일.
아마추어가 아니라
책이라는 단위를 끝까지 완성하는 작가.
그러니 그의 말은 생계 수단의 설명이라기 보다
자기 정체성의 선언으로 들린다.
그는 한 줄로 말한다.
내 일은 책을 쓰는 일,
내 직업은 작가라고.
이 지점에서 내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묻게 된다.
나는 왜 나를 스스로 선언하지 못하는가.
무엇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그 본격적인 이야기를 한참 적다가, 방금 전 지웠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나는 나를 인정하지 못한다.
내 장점을 충분히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불인하고 불감하는 나의 이 고질적 질환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낫지 않았다.
나는 나를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살아왔다.
15년 전, 나를 이미 해방시켜 준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절벽이 두려워 날아오르지 못했다.
지금도 날지 못한다.
날개를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도 날개를 잃는다.
자신의 날개를 떼어 버리는 새는 없어도,
인간은 그렇게 한다.
부리로 쪼아
자신의 날개를 떼어 내고
피 묻은 깃 위에서 잠든다
나는 것을 갈망하며
길을 걷다가 날개를 주워다
내 날개였다
(류시화,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55쪽)
나는 안다.
그가 책 쓰는 일을 ‘내 일’이라 부를 수 있기까지,
그는 이 일을 오랫동안 붙들어 왔다는 것을.
그 일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의 성공을 거뒀다는 것을.
그는 책을 썼고,
읽혔고,
이름이 남았으며,
다시 쓸 기회를 얻었다.
이 모든 것을 성공이라 불러도 무리는 없다.
또한, 나는 안다.
이 문장을 아무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사람은,
글을 쓰고 책을 쓰는 동안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버렸는지
이미 스스로 정리를 마친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직 이 문장을 쓰지 못한다.
“내 일”이라는 말 뒤에 이어질 다음 문장을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나의 일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글로 책을 쓰고,
그 결과를 성공이라 부르기에는
나는 아직 그 단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지금은 글로 책을 쓰는 시대가 아니라고.
성공에는 여러 갈래 길이 있다고.
반박하지 않겠다.
다만,
그 모든 말을 알고도
여전히 이 문장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하다.
나는 아직 이 문장을 쓰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까지, 나에게는
성공보다 먼저,
책쓰기보다 먼저,
다시 글을 붙들어야 할 이유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내 일, 즉 책을 쓰는 일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는 류시화 시인의 문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