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가니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는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나의 일’에 관한 것이고, 압축하면 “글쓰기”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정리한 바 있다.
이제, 그다음을 생각해 보려 한다. 역시 나의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현재의 글쓰기를 점검하며, 앞으로의 글쓰기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 나만의 기준을 정리해 두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1월부터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다른 일도 해야 한다. A트랙과 B트랙을 동시에 뛰어야 한다. A 트랙은 생활을 유지하는 일이고, B 트랙은 나를 다음 국면으로 데려갈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모두 붙들고 가야 한다. 하나로 해결하려 하면 둘 다 무너질 수 있다.
글쓰기(B트랙)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활을 위해 단시간 근로(A트랙)를 택한다. 이것은 오래전 <월든>의 소로가 제안했던 삶의 힌트이고, 많은 작가들이 실제로 선택해 온 방식이다. 여기에는 작은 기대도 포함된다. 즉 A 트랙의 경험이 B트랙의 재료가 되리라는 기대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 작가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책을 보고, 생각하고, 그 생각이 나와 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기록하고자 할 뿐이다. 나를 나이게 만드는 이 시간이 내게는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렇다면 나의 글쓰기는 고상한 취미에 불과한가. 아니다. 목적은 분명하다. 나의 글쓰기는 독자의 심장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다. 내가 오래 붙들고 있는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번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독자의 가슴 한 복판에 불이 옮겨 붙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글의 힘이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 ‘견딤’이라는 생각이 글로 나왔다. 그런 글을 써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 이야기를 하느라 전야(前夜)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시간을 대하는 한 철학자의 태도도 빌려왔다.
시간과 다투지 말 것.
시간이 주는 압력을 견딜 것.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로 모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1. 계속 쓰자
뾰족한 수는 없다. 다른 답도 찾기 어렵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결국 글을 써야 한다. 이것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에 가깝다. 일로서 글쓰기를 택했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나를 설명하고, 나의 생각을 남기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글보다 말이 중요해 보인다. 영상의 시대에는 말이 더 환영받는다. 그러나 생각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말은 흘러가지만, 글은 머문다. 생각은 말보다 글에서 더 오래 머물고, 더 깊어진다. 그래서 표현의 근간은 여전히 글이다. (여기서는 “왜 글인가”라는 질문은 더 다루지 않겠다.)
글을 쓰기로 했다면,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겠다. “잘 써야, 계속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자. 사실은 정반대다. “계속 써야, 잘 쓰게 된다.” 그런데 이 말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반복해서 고백해 온 말이다. 그러니 글을 쓰고자 한다면, 다른 조건은 붙이지 말자. 결국 답은 하나다. 계속 쓰는 것.
2. 매일 앉자
계속 쓰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이제 할 일은 하나다. 앉는 것이다. 바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쉬고 싶은 게 당연하다. 잘 안 써져서, 피곤해서, 그저 쉬는 시간이 간절해서 책상 앞에 앉기를 미루게 된다. 그럼에도 두 눈을 질끈 감고 의자를 당겨 앉는다. 컴퓨터를 켜고, 파일을 열고, 타이머를 맞춘다.
글의 분량은 아주 작게 잡는다. 번뜩이는 영감이 없어도 괜찮다. 정해진 시간 동안의 산출물에만 집중한다. 매일 30분, 매일 10줄. A4 반절. 중요한 것은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가 아니다. “오늘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크기도, 잘 쓰는 것도 그다음 문제다. 지금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상 앞에 앉는 일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3. 쌓이는 글을 쓰자
쓰겠다는 의지는 불타오르는데, 막상 무엇을 쓸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쓰라고 조언한다. 오늘은 회사 이야기, 내일은 가족 이야기, 모레는 사회 비판… 그렇게 쓰다 보면 글은 늘어나지만, 쌓이지는 않는다. 모이지 않고 흩어질 뿐이다.
쌓이는 글을 쓰자. 쌓이는 글은 ‘내가 품은 물음’에서 나온다. 그것은 내가 오래 붙들고 생각해 온 것, 해답도 정답도 쉽지 않지만 내 가슴이 자꾸 돌아보라 지시하는 문제다. 그러니 나의 글쓰기는 “무엇을 쓰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계속 생각해 왔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내 물음은 오래전부터 ‘변화’였다. 시간의 변화, 사람의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의 변화.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도 나는 ‘변화관리’라는 일을 즐겁게 했다. 당시 나는 변화를 Y에 두고,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X를 찾는 일을 했다. 요즘의 X 가운데 하나는 ‘읽기’다.
읽기란 무엇인가.
이를 삶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로부터 나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삶을 새롭게 하려면, 읽기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물음들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변화만 가득한 이 세계에서, 나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은 2026년에 조금 더 현실적인 얼굴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나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까. 내 글은 언제나 이 질문으로 돌아올 것이다.
쌓이는 글은 글감이 많아서 생기지 않는다. 질문이 하나이기 때문에 생긴다. 소재는 달라도 질문이 같아야 글이 쌓인다. 같은 질문을 매번 다르게, 조금씩 더 깊게 써보는 일. 그 반복 속에서 글은 축적된다.
자기 합리화일 수 있겠으나,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나로서는 데카르트의 이 말을 강하게 신뢰하게 되었다.
우연히 선택한 길일지라도, 그 길을 바꾸지 말고 곧장 나아가라.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내년에도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앉아 있을 것이다.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가며, 내가 품어온 질문을 놓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