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사람 때문에 힘들 때
사람의 속마음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관계에서는 다가가기보다,
‘거리 두기’를 통해 속마음을 천천히 읽어 나가는 방법이 나을 때가 있다.
특히, 직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랜만에 탁구장에 갔다.
얼마 전 취업에 성공한 A를 만났다.
넉살이 좋고 성격도 착해 항상 사랑받는
A가 세 살 많은 회사 선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다.
가령 이런 일이다.
협력이 필요한 일에서도 선배는 늘 빠져나간다.
A는 같은 직급이니 ‘일은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선배는 늘 ‘이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긋는다.
먼저 입사했어도 A가 대신 일을 처리해 준 적도 많다.
그러나 정작 A가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모른척하는 선배를 볼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A의 스트레스는 “선배가 협조하지 않는다”는 단일 사건에서 오지 않는다.
책임은 흐리고, 거부는 허용되며, 조정은 개인에게 맡기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A를 지치게 하는 상황이다.
아직 팀장의 개입도 없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A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나는 A에게 “호의적 무관심”을 권한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 상황에서 ‘적대적 관심’은 가장 피해야 할 선택이다.
호의적 무관심이란
필요한 순간에만 개입하는 절제된 태도다.
상대를 무시하지 않되, 사사로운 평가와 감정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좀 더 풀어 말하면 이렇다.
상대의 존재를 인지하고 예의를 지키되,
사생활이나 감정의 영역까지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차가움이 아니라 신뢰를 전제로 한 거리 유지다.
현대 직장 생활에서 가장 세련된 매너이기도 하다.
반대로 적대적 관심은
우호적이지 않은 상대에게 과도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꼬투리를 잡거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한다.
이 에너지는 결국 본인에게 독으로 돌아온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몰입하느라 자신의 성장에 써야 할 에너지가 고갈되고,
조직 내에 냉소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부정적인 관심을 건강한 거리 두기로
전환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다.
첫째, 정보를 차단하라.
관심은 정보를 먹고 자란다.
동료들이 그 사람의 뒷담화를 시작하면
슬쩍 자리를 피하거나 다른 업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라.
비난도 관심을 공유하는 행위이므로, 비난에 참여할수록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진다.
SNS는 숨김 처리하거나 차단하라.
상대의 개인적인 일상을 알게 되면 '적대적 관심'은 더 커진다.
둘째, '그레이 락(Gray Rock)' 기법을 사용하라.
상대가 자극할 때, 감정 없는 회색 바위처럼 반응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상대에게 어떠한 감정적 피드백도 주지 않는 것이다.
가령,
은근히 비꼬거나 무시하는 말을 할 때 (비아냥)
선 넘는 사생활 질문이나 간섭을 할 때 (오지랖)
원치 않는 훈수를 두거나 가르치려 들 때 (참견) ….
상대의 어떤 질문/비난/공격/불평/조언이 난무해도
길게 설명하지 않고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네",
"아니요",
"아,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 과정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색하나 반복하다 보면
그 사람이 내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분명히 줄어든다.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무관심 앞에는 반드시 ‘호의적’이라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기 위해서다.
시간이 지나 관계는 달라질 수 있고,
예상과 다른 면을 보게 될 가능성도 남겨 두어야 한다.
이를 니체의 말로 풀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문 8절에도 나오는
“세련되고 자유분방한 감각”이다.
니체에게 자유분방함이란 아무렇게나의 허용이 아니다.
그것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면서도 굳이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는 힘,
사람에 대한 판단을 미루는 불편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의 체력이다.
하나의 해석에 매달려 사람을 단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태도,
가능성을 닫지 않은 채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
나는 이것이 직장 내 대인관계에서 말하는 '호의적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A에게도 니체의 “위대한 해방”이 함께 하기를...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앞서 말한 내용을 2X2 매트릭스로 정리해 보았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관심의 정도'와 '감정의 태도'라는 두 축으로 나누어 보면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1. 호의적 관심
“우리는 훌륭한 파트너입니다"
상대의 장점을 발견하고 업무적 성장을 돕는다. 건강한 피드백이 오가는 상태다.
사수와 부사수 관계, 혹은 신뢰가 두터운 동료 사이에서 나타난다.
지나치면 도움이 아니라 '참견'이 된다. 상대의 수용도를 살피는 감각이 필요하다.
2. 호의적 무관심
"당신을 존중하기에 선을 지킵니다" (지향점)
상대가 무엇을 하든 예의를 갖추되, 사생활이나 감정의 영역까지는 침범하지 않는다.
가장 적은 에너지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평판과 협업 가능성을 등시에 지키는 상태다.
"모르는 게 아니라, 몰라주는 척하는 배려"
3. 적대적 관심
"당신이 틀리는지 지켜보겠어" (경계 대상)
상대의 말과 행동을 과도하게 관찰하며 실수나 약점을 찾아내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상태다. 관심이 상대에게 종속되어, 정작 자신의 성장과 업무 집중이 멈춘다.
위에서 언급한 '그레이 락' 기법 등을 통해 2번 혹은 4번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4. 적대적 무관심
"당신은 내게 없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신경을 끄는 것을 넘어, 고의적으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상대를 투명인간 취급(왕따)하는 태도.
조직 내 갈등을 심화시키며, 괴롭힘이나 배제 이슈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가장 위험한 상태다.
전략적 이동 경로
직장 생활의 심리적 평온을 확보하려면, 나의 위치는 다음과 같이 이동하는 편이 낫다.
3 적대적 관심 → 2 호의적 무관심:
가장 시급한 이동이다. 미워하는 에너지를 거두고, '예의 바른 타인'이 되는 연습이 필요하다.
4 적대적 무관심 → 2 호의적 무관심:
감정의 골을 메우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의 업무적 예의와 소통을 회복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단계다.
1 호의적 관심 → 2 호의적 무관심:
가끔 너무 가까워져서 생기는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확보하는 하나의 '심리적 휴식'이다.
결국, 직장 내 대인 관계의 고수는
'적대적 관심'을 끊어내고 '호의적 무관심'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삶에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내 업무와 성장에 집중하되,
동료에게는 "언제든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정도의 온기만 남겨 두는 것.
그 정도의 거리가, 가장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