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문의 8절 읽는 중
"이 책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 책은 지나친 의무의 압박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나 적합한 것입니다.
이 책은 세련되고 자유분방한 감각을 원하며, 여유를 요구합니다.
시간의 여유, 하늘과 마음의 넘치는 명쾌함,
가장 대담한 의미에서의 여유로운 한가함을 요구합니다
─오늘날 우리 독일인은 오직 좋은 것들뿐인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줄 수도 없습니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문 8절, 20쪽)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문의 마지막에
이와 같은 독자 반응을 실었다.
독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지나친 의무의 압박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여유를 소유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책이 요구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이 반응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혹은 니체가 일부러 구성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반응을 서문의 마지막에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니체의 의도를 비교적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즉, 니체는 독자에게 “이렇게 생각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본 적이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독자가 끝내 살아 내지 못한 니체의 요구는 무엇일까.
니체는 이 책에서 더 많은 지식이나 탁월한 이해력, 정교한 논리 훈련을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요구했다.
지나친 의무의 압박에서 벗어나라고.
19세기의 의무는 지금과 다를 것이나 그것은 어쩌면,
항상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압박,
쓸모 있어야 한다는 강박,
설명 가능해야 한다는 요구,
그리고 즉각 반응해야 한다는 습관이기도 하다.
니체는 이 모든 것에서 인간의 영혼이 자유롭기를 바랐다.
또한, 그는 세련되고 자유분방한 감각을 요구했다.
이 감각은 단일한 도덕, 하나의 진리, 최종 결론을 맹목적으로 좇지 않는다.
하나의 해석에 매달리지 않고, 눈앞의 불편함을 신속히 봉합하려 들지도 않는다.
니체에게 세련되고 자유분방한 감각이란,
생각을 빨리 결정짓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는 정신의 체력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시적이고 이상적인 여유,
오티움(Otium)을 요구했다.
시간의 여유,
하늘과 마음의 넘치는 명쾌함,
가장 대담한 의미에서의 여유로운 한가함.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사유와 독서, 성찰
그리고 자기 자신에 머무는 고독이 가능해지는 삶의 형식을 가리킨다.
니체가 호출한 오티움은 특권의 상징이 아니라,
사유를 위해 자신을 잠시 사회로부터 유보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는 독자들이 미덕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신념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삶을 멈추기를 바랐다.
이러한 노력에도 독자의 태도는 확고하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 요구를 감당할 삶의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
시간의 여유,
하늘과 마음의 넘치는 명쾌함,
가장 대담한 의미에서의 여유로운 한가함과 거리가 멀지 않은가.
설마, 19세기나 지금이나 별 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보다 지금이 훨씬 더 우리 삶에서 ‘여유’는 멸종 직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니체는 어떤 선택을 했는가.
자기의 철학을 좀 더 아래로 내려야 할까.
어떻게 사는 삶이 바람직할지 의심하게 만들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팍팍한 현실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 세세한 처세술을 제시해야 할까?
그가 선택한 길은 이렇다.
“이러한 정중한 대답에 나의 철학은 내게 침묵하고 더 이상 묻지 말라고 충고한다. 충고가 시사하듯이 특정한 경우들에서는– 침묵함으로써 철학자는 존재하는 것이니까.” (20쪽)
독자들이 "우리는 당신의 철학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을 때,
니체는 그 말이 너무나 정확해서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진단이 맞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뼈아픈 고독이 되어 돌아왔을 테니 말이다.
결국, 니체는 침묵함으로써 존재하는 철학자로 남겠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그의 침묵은 오늘까지도 여전하다.
독자들은 아무리 니체를 읽어도 침묵한 철학자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고
그 너머의 시선까지 찾아내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가 연주한 “음악과 피리” 소리를 듣지 못한다.
사실 이 서문은 1878년 초판 발행 당시에는 없었다.
니체는 이 글을 초판이 나온 지 8년 후인 1886년에 새로 써서 덧붙였다.
1886년은 그가 자신의 철학적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미 완성한 시기이다.
니체는 높은 산 정상에 오른 사람이 아래를 내려다보듯,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왜 그런 글을 썼어야만 했는가"를 설명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의 냉철한 판단이었다.
그는 서문의 마지막에 이렇게 서명했다.
1886년 봄, 니스가 내뿜는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 아래를 걷거나 앉아 있을 니체를 상상한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만성적인 두통과 안질에 시달리며 반쯤 눈이 먼 상태였고,
정신적으로는 자신의 야심작들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고립 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형벌 같은 고독의 냉혹함과 불안”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대화가 끊기고 니체의 침묵은 그대로다. 그는 오늘도 침묵함으로써 존재하는 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