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문의 3, 4절 읽는 중
자유정신이라 불리는 위대한 해방,
그것은 속박된 것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다.
신념, 도덕, 가치, 소속, 심지어 과거의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지탱해 왔던 기존의 사슬에서 이탈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자유정신은 무언가가 되어가는 ‘생성’이 아니라,
기존의 세계와 결별하는 ‘분리’에 가깝다.
위대한 해방은 자유를 얻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묶여 있지 않게 되는 일이다.
위대한 해방은 일회적이 아니다.
사건 하나로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출발점으로서의 단절이며,
동시에 그 단절 이후를 살아내야 하는 시간의 문제다.
해방은 속박에서 벗어난 이후를 견디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어느 한 가치에도 복종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렇게 떨어져 나가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불신, 고독, 방황, 자기 의심.
이 모든 것이 극대화되는 시험기를 거쳐야 한다.
“시험에 삶을 걸고 모험에 몸을” 맡겨야 한다.
새로운 리듬과 거리 감각을 익히는 회복기(4절)도 지나야 한다.
니체가 보기에, 위대한 해방은 속박에서 방금 풀려난 존재의 상태다.
아직 자유를 다루는 법도 모른 채, 자유를 과시하고 시험하고 남용하는 단계.
그래서 그는 이 상태를 ‘질병’이라 부른다.
“풀려난 자, 해방된 자가
이제부터 자신이 사물을 지배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할 때
그의 거침없는 시도와 기묘한 행동에는 얼마나 많은 질병이 나타날 것인가!
그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 무섭게 배회한다.” (13)
이 질병을 회피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니체의 답이다.
“질병은 인식의 수단이며 인식을 낚는 낚싯바늘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14)
그렇다면, 이 질병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질병이니 치료제가 있을 것이라 여길 수 있다.
니체의 대답은 단순하다.
고치려 들지 말 것,
되돌아가지 말 것,
도덕으로 다시 봉합하지 말 것
이 상태를 견디지 못해 예전의 ‘건강한 도덕 인간’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치료가 아니라 퇴행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치료가 아닌 통과를 권한다.
질병을 끝까지 살아낼 것.
그 혼돈 속에서 사물과 자신을 즉각 지배하거나 규정하지 않는 새로운 조율을 배울 것.
자유를 증명하려는 조급한 욕망이 식을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견딜 것.
그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버텨라.
그 상태를 끝까지 통과하라.
너무 빨리 이름 붙이지 말고,
너무 빨리 방향을 정하지 말라.”
이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했을 때
도달하는 상태는 병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병을 다시 겪더라도 결코 자신을 잃지 않는 상태다.
고통과 방황이 다시 찾아와도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시련을 통해 더 깊은 인식을 길어 올릴 수 있는 힘.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건강’(서문 4절 15쪽)이다.
진짜 건강은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픔을 통과해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유연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