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문의 3절 읽는 중
퇴근길 지하철에서 염미정은 고백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긴 시간 이렇게 보내다간
말라 죽을 거 같아 ….
그녀를 짓누르는 것은 비극적 사건이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이 영원해질지 모른다는 공포다.
말라 죽을 것 같고, 질식 직전의 상태,
무언가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압박과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그녀의 영혼은 서서히 메말라간다.
염미정은 너무 많이 참고,
너무 오래 견뎌온 일상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래서 당신을 생각해 낸 거에요.”
그런데 이 ‘당신’은 실존하지 않는다.
아직 만나지 않았고, 어디에 있는지도, 누군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평범하게 만들지 않을 당신이다.
당신만이 “나의” 탈출구, “나의 해방”이다.
염미정은 지겹도록 지겨운 일상 속에서 누군지도 모를 ‘당신’을 발명한다.
그리고 그에게 추앙을 요구한다.
미정은 세상을 향해 선언한다.
“나는 당신들의 방식대로 사랑하지 않겠다”라고.
미정의 해방일지는 묻는다.
해방이란 세상에서 벗어나는 일인가,
아니면 세상이 나를 규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일인가.
니체에게도 ‘당신’이 있다.
그는 그것을 ‘자유정신’이라 불렀고,
그 탄생의 순간을 ‘위대한 해방’이라 불렀다.
그러나 해방은 단순한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를 지탱해 왔던 세계와 결별해야 하는 사건이다.
니체는 우리를 말라 죽게 만드는 것들에 경고한다.
모두에게 주입된 가치,
너무 오래 믿고 견뎌온 도덕,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진리라는 이름의 기둥들.
그는 우리가 이 “귀퉁이와 기둥”에 영원히 묶여 있지 않기를 바랐다.
염미정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을 발명하듯,
니체의 해방 또한 지진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던 세계가 무너지는 고통인 동시에,
비로소 나로서 존재하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해방일지와 니체는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을 말라죽게 하는 기둥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을 부수기 위해 어떤 '당신'을 발명하고 있는가.
해방은 감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다.
감옥 벽을 직접 허물고 나갈 '의지'를 스스로 빚어내는 과정이다.
미정이 찾은 '당신'은 결국,
기둥 밖 광야에서 혹독한 고독을 견디며 성숙해진 '또 다른 미정'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녀의 정신은 충분히 성숙했고, 비로소 자신만의 향기를 내기 시작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서문의 3절은 ‘자유정신’이 탄생하는 순간을 묘사한다.
니체는 한 인간이 어떻게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결별하여
독립적인 사유를 시작하게 되는지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서술한다.
그는 이 드라마를 이렇게 압축한다.
“우리는 ‘자유정신’의 유형이
언젠가 완전해질 때까지 성숙하고 단맛을 낼 수 있도록
정신이 어떤 위대한 해방 속에서 결정적인 사건을 겪었으며
그 사건이 전에는 얼마나 속박된 정신이었고
귀퉁이와 기둥에 영원히 묶여 있었을 것처럼 보였는지 추측할 수 있다.”
(서문 3절, 12쪽)
부디,
우리에게도 위대한 해방이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