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국내에서 출판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제목이다. 하지만 원제는 “邊境・近境”(Henkyo, Kinkyo)이다. 제목만 놓고 보아도 어느 쪽이 작가의 생각을 더 직접적으로 건드리는지 감이 온다. 책에는 하루키가 여행한 세계 각지의 변두리(邊境, 변경)와 일상 속의 낯선 경계(近境, 근경)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1998년 출간된 책이니 여행기로는 이미 한물간 책이다. 아무리 하루키라 한들, 30년 전 그가 다녀온 여행지가 지금 독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일까. 이스트햄프턴이 유명 작가와 배우들이 모여 사는 부자 동네라는 사실이 지금 와서 새로울까. 그가 극찬한 가가와 현의 ‘나카무라 우동집’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미국 대륙을 2주 넘게 횡단하면서도 특별한 사건 없이 밋밋하게 끝나는 이야기들. 자극적인 에피소드도, 실용적인 여행 정보도 없다.
그래서 독자는 이 책으로 얻을 게 없다거나, 읽는 재미가 지극히 낮다며 책장을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닐 수 있다. 이 여행기의 숨은 매력은 장소가 아니라 관점에 있다. 하루키가 말하는 ‘변경’의 의미가 그렇고,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을 통해 글쓰기의 본질을 슬쩍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러한 하루키의 생각을 들어보자.
이 말은 소설가 지망생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글을 쓰는 우리에게 더 깊이 와닿는다. 여행의 본질을 따라가며 그것을 글로 옮기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쌓아가는 일. 그것은 곧 ‘자기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이며, 우리가 갈망하는 주체적인 삶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소설이 독자를 만나 비로소 완성되듯, ‘나만의 여행기’ 역시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하루키는 강조한다.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소설을 쓰는 것과, ‘아아,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을 쓰는 일은 다르지 않다고. 어떻게든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프로의 글쓰기라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주는 가장 실질적인 가치는 국내판 제목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렇게 이어진다. ‘나만의 여행기’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하루키처럼 쓰면 된다. 하루키는 어떻게 썼는데?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를 읽어 보시라.
당연하게도 하루키 글에는 메뉴판, 영업시간, 주차장 정보 같은 건 없다. 그렇다고 검색 알고리즘을 겨냥한 글쓰기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과 출판을 전제로 한 글, 정보 공유를 위한 글과 의식을 흔드는 글은 그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할 뿐이다.
블로그용 글이라 해서 그 플랫폼에만 맞춰 써야 할 이유도 없다. 미국 대륙 횡단 여행이든 군산의 짬뽕집 순례든, 그 안에서 자기만의 ‘변경’을 발견하고 묘사할 수 있다면, 그 글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것이 하루키가 우리에게 건네는 제안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조금은 ‘하루키적’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떻게든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를 펼쳐보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여행 정보 속에서 정작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면, 혹은 글쓰기의 본질적인 의미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은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블로그나 인스타에 여행기를 올리지 않는 사람이 드문 요즘에, 하루키가 제안하는 여행법과 글쓰기는 여전히 새롭고 현재적이고 도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