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미 착착착 돌아가고 있었다

by 별들의강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이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도

그나마 착착착 돌아가는 나만의 소소한 일상이 있다고 믿었다.


그 작은 질서가 여전히 작동하리라 생각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도서관을 향했었다.



“예? 대출을 할 수 없다고요?”


나의 절망적인 “대출” 발언에

맞은편에서 오던 여자가 ‘쯔쯔쯔’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핸드폰 너머로 담당자는 3월 6일부터 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시스템에 따를 수밖에 없단다.


납득이 가지 않아 동네 도서관 사서에게 묻지 않고

시립도서관 담당자에게까지 확인했는데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시스템에 그렇게 입력되어, 그렇게 뜨니 어쩔 수 없다고.


자초지종은 이렇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2일 늦게 반납했다.

도서관 운영 규정은 “연체일수만큼 대출중지”.

나의 계산법은 명쾌했다.


[나의 계산]

연체(2일) = 정지(2일)

3월 3일(반납 당일) 정지 1일차 → 3월 4일 정지 2일차 → 3월 5일(목) 대출 가능!


그야말로 ‘착착착’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의 계산은 달랐다.

오늘부터 2일이 아니라, 내일부터 2일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의 계산]

연체(2일) = 사실상 정지(3일)

3월 3일(반납 당일) 정지 아님 → 3월 4일 정지 1일차 → 3월 5일 정지 2일차 → 3월 6일(금) 대출 가능.


이게 말이 되는가.


반납하는 3월 3일도 책을 못 빌리고,

4일도 안 되고, 5일도 안 된다면

이건 정지 3일 아닌가.


나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상식적이지 못하다 느낀 사회와 시스템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이내 한숨부터 내쉬게 되었다.


그 유명한 원칙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일불산입(初日不算入).

기간을 ‘일, 월, 연’로 계산할 때는 첫날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최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에서도 이 계산법은 등장했다.

‘날(day)’로 계산해야 할 것을 구속 기간을,

‘시(時)’로 쪼개어 계산하며 내란 수괴를 풀어준 어느 판사의 이야기 말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법기술을 지켜보았으면서도,

정작 나의 일상에서는 기간 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동안 적지 않은 계약을 맺으며 이 원칙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유독 생소하게 느껴진 것은 나의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빌릴 때 받았던 ‘플러스 1일’의 혜택은 당연한 권리로 누리고,

제때 반납하지 못해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한 처분처럼 느꼈던 나의 편의주의적 사고.


그 순진한 계산법이 부끄러워 당분간은 도서관 근처에 얼씬도 말아야겠다.


내가 아쉬움을 토로할 때 사서가 보여준 그 담담한 미소는,

어쩌면 이 사회가 나보다 훨씬 더 차갑고 정교한 논리로

굴러가고 있다는 확인서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미 착착착 돌아가고 있었는데

나의 착착착만 엉뚱한 곳에서 겉돌고 있었나 보다.


이토록 사소한 규칙 하나에도 씁쓸해하는 나는 참으로 순진한 시민이다.

반면 세상의 어떤 이들은 법의 구석구석을 현미경으로 훑으며

자신들의 파렴치를 덜어내고 면죄부를 만들어낸다.


나의 무지는 고작 2일의 대출 정지로 돌아오지만,

그들의 노련한 법기술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어떻게든 ‘착착착’ 돌아가는 일상.

그 냉정한 작동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