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기다리는 사람

2026.03.05. 어제 16:59

by 별들의강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앉아서 궁리하고 궁리하면 글은 써진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아무리 모질게 마음먹어도 써지지 않는 그런 날.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몸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오늘은 간단히 끝내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벌써 여섯 줄이나 썼다.

이 글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탁구장 가는 길부터 이야기해 보자.


얼마 전 탁구장이 집에서 먼 곳으로 이사했다.

덕분에 걸어가기에는 부담되는 거리가 되었다.


차가 없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어제는 비까지 내려 또 어쩔 수 없이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이고 비까지 내리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뜨끈한 국물에 시원한 쏘맥 한잔을 부르는 가게들이다.


거리에는 저마다의 이름을 단 간판들이 빛나고 있었다.


칼국수, 수제비, 만두국.

모든 메뉴 포장, 배달 가능하다는 두꺼비집.

그 옆에 떡하니 붙어있는 배달음식전문점 KING FOOD.

미리 불 밝히고 갈치짜글이를 내세운 사거리 게장백반.

밑반찬이 푸짐한 아구찜, 복탕 전문 서해 생선탕.

장어 1kg에 25,000원이라는 세상에 없던(?) 풍천장어숯불구이.

벌써 손님이 들어가는 황태가맥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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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많은 가게들이 있고

그곳에는 흥미진진한 이름들이 가득하다.


나름 널리 알려진 이름도 있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도 있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도 있다.


저 가게들 가운데는 오래 한자리를 지키며

이름을 알려온 곳도 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믿고 그곳을 찾는다.


그런데 가게를 오픈한 첫날,

가게도 사장님도 무명이었다.


사장님은 그런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탁구장에서 흘린 땀을 씻기 전에

VIBE부터 틀어 ‘주목할 최신곡’을 눌렀다.

최신곡이라 익숙지 않으니

1초, 2초, 길어야 3초 만에 판가름이 난다.


귀를 홀리지 못하는 곡이 있고

마음을 사로잡는 곡이 있다.


그 가운데 유독 귀를 붙드는 곡이 있었다.


단순한 반주,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

묘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매혹적인 가사.


“무명에서 꿈이란 건
운명이래
때론 이유 없이
길을 그저 걷고 싶을 뿐이야”

(미담이냥, 무명일지)



우리가 소개하는 작가들에게도

우리가 환호하는 가수들에게도

우리가 응원하는 배우들에게도


무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들은 오로지 그 길을 가고 싶었을 뿐일까.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길을 잃어서가 아니다.


우리를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누가 부르지 않아도

자기 이름으로 걷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름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름을 만드는 사람인가.


“때론 이유 없이
길을 그저 걷고 싶을 뿐이야.”


어쩌면 그 말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