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치열하다고 한다
감히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없는 일상. 지금도 A는 새까만 밤, 쫓기고 또 쫓기다가 골목길에 숨어들었다. 건너편 벽면에 그를 찾는 손전등 줄기가 교차하고, 무리들의 움직임이 소란스럽다. 쫓기는 자의 주머니에 총 대신 수첩과 연필이 있으니 무얼 할까. A는 알고 있다. 그는 곧 잡힐 것이다.
배경이 바뀌고, 인물이 바뀌어도, 그의 삶의 장르는 누아르다. 아름다움을, 감사할 것을 보라는 한갓진 소리에 A는 달리다 번번이 차여 나뒹군다. 뱅그르르 돌면 허름한 빌라 윤곽 위 청아한 보름달이 휙, 붕어빵 수레도 휙, 어느 놀란 소년의 얼굴도 휙- 하여 젖은 아스팔트 위에 엎어지니 뺨이 찬데 달팽이. 누워진 시야에 달팽이 한 마리가 꿈처럼, 반쯤 깨어진 집을 이고서 더듬이를 꾸물거리고 있는 것이다. 신은 그렇게 엎어진 자를 위해 언제나 자신의 한갓진 소리에 책임을 진다는 것도, A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