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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아 Nov 02. 2018

애플 에어팟, 사용 한 달 차 소회 (애틋 주의)

너와 나의 시한부 사랑

에어팟 사용 약 4주 차.


내가 처음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을 때 친구들이 말했다. "얘가 바꿨으니, 이제 전 국민이 다 스마트폰 쓰는 거다." 그만큼 나는 전자기기 및 각종 신기술에 대한 수용이 느린 편이다.


그럼에도 에어팟은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그것은 줄 달린 이어폰을 쓰는 동안 빈정상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평소 나는 손에 짐을 많이 들고 다니는 편이다. 그리고 주로 버스로 이동을 한다. 퇴근 시간대 만원 버스에서 양손에 짐을 든 채 간신히 하차벨을 누르고, 혹시나 못 내릴까 봐 집념을 발휘해 뒷문으로 나아가는 나를 누군가 뒤에서 홱!! 낚아 챈다??? 이어폰 줄이 의자 팔걸이에 걸린 것이다. 매우 빈정이 상한다.


한편 나는 이 닦고 세안하는 동안 꼭 음악을 듣는다. 물이 튀지 않게 핸드폰을 세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줄이 팽팽히 진 이어폰을 낀다. 씻다가 수건을 꺼내려고 수납장에 손을 뻗치는데 갑자기 훵! 핸드폰이 낙하하면서 끼고 있던 이어폰이 바닥으로 푸두둑 떨어지고 음악이 끊긴다. 몹시 빈정이 상한다.


그러던 차에 에어팟이 눈에 들어왔고, 유튜브 후기를 두어 개 들어본 후, 무려 직구 대행 사이트에서 즉시 질렀다. 그리고 이제 약 4주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부터 사용 소회.


다른 글에서 내가 갤럭시에서 아이폰으로 갈아탔을 때의 감격스러운 소회를 밝힌 바 있는데, 에어팟 역시 감격이었다.


1. 감격의 시작은, 콩나물 대가리가 안착돼 있는 그 희고 둥그런 케이스, 그것의 뚜껑을 열 때부터다. 통을 한 손안에 쏙 쥐고 엄지로 딸깍, 여는데, 그 자력의 세기가 예술이다. 자석의 세기가 조금 더 헐거웠으면 혹 그냥 열려 버리지 않을까 걱정됐을 것 같고, 더 빡빡했으면 열면서 빈정이 상했을 것 같다. 그 섬세한 적당함! 감격했다. 극진히 존중받는 느낌.


2. 두 번째 포인트. 귀에 끼면 고 콩나물 대가리가 '뒤링' 하면서 알아서 내 아이폰을 감지해 연동을 한다! 어떤 기기든 나는 '설정'에 들어가는 걸 가장 싫어하는데, 요건 그냥 1) 귀에 꽂고 2)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된다! 아이폰과 에어팟. 애플끼리의 고 찰떡같은 유대관계. 밖에서 보면 꼴사납고, 안에선 깨 볶는.


3. 세 번째 감격 포인트. Siri. 귀에 콩나물을 끼고 한 손으로 톡톡 두들기면 시리가 소환된다. 일단 그 자체가 신기하다. 램프의 요정 같잖아! 그리고 나는 긴 취침 준비 과정 동안 음악을 들으며 이젠 핸드폰을 침대 위에 멀찌감치 던져둔다. 하지만 볼륨을 조절하고 싶다면! 나는 지금 화장실이고, 핸드폰은 너무 멀리 있는데! 그럼 콩나물을 톡톡, 두들겨서 "시리야. 볼륨 낮춰줘." 하면 고 요망한 것이 볼륨을 낮춰 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듣는 곡이 지루해져 스킵하고 싶다면? 또 톡톡, 두들겨서 "시리야. 다음 곡 틀어 줘." 하면 고것이 또 다음 곡을 틀어주는 것이다! 고마워서 "시리야, 고마워." 하면 아주 건조하고 친근하게 "별말씀을요." 하는 것이다! 아, 나도 누군가의 주인님이다. '무언가의'라고 하지 않겠다. 시리는 그냥 '무엇'이 아냐.


그 밖에 여러 신박한 포인트들이 더 있다.

- 한 번 충전해 놓으면 제법 길게 쓸 수 있다. 나는 한 일주일 정도 쓰는 것 같다. 보통 출근길, 귀갓길, 취침준비 시 듣는다.

- 기존 아이폰 유선 이어폰이 귀에 잘 맞았다면, 에어팟이 귀에서 떨어지는 염려는 전혀 할 필요 없다.

- 한쪽 귀에서 콩나물을 떼면 음악이 멈춘다. 한 번엔 하나씩만 하라는 깊은 뜻.

- 그리고 핸드폰과 에어팟이 멀리 떨어져도 연결이 잘 안 끊긴다. 벽과 닫힌 문도 잘 통과하고, 꽤 멀리 갈 수 있어 놀랐다. 최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진 않았지만, 하여튼 우리 집 현관 앞 방에서 부엌 베란다까지 가는 데 문제없이 잘 들렸다는 정도의 정보는 드릴 수 있겠다.




그런데............



근심 총량의 법칙이 있는가. 셀프 포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대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었으니. 분실에 대한 초조함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둘째가라면 길길이 날뛸 분실의 여왕이다. 며칠 전에도 1002번(성남) 버스에 아끼던 옥색 스카프를 두고 내려 속이 쓰리다. 부디 좋은 분이 거둬 소중히 쓰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에어팟은 그 사이즈가 아주 나보고 “잃어버리세요. 잃어버리세요. 잃어버리실 겁니다.” 하고 주문을 거는 것 같다. 실제 그새 몇 번의 위기를 겪었다.


이게, 음악을 꺼놓고 있으면 내가 끼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어느 하루도 그렇게 잊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머리를 묶는데 귀에서 툭 떨어진 것이다. 아니 내 소중한 에어팟이 화장실 바닥에!!! 안타까움에 몸서리치며 ‘아, 잃어버린다면 이런 식이겠구나’하고 미래를 본 듯했다. 이런 유사한 경우가 몇 번 더 있었다. 빼면서 손에서 미끄러지기도 한다.


그리고 급하게 빼야 할 땐 케이스에 넣지 못하고 일단 옷 주머니 속에 아무렇게나 넣게 되는데, 나 같이 칠칠치 못한 것은 그것도 잊고서 옷걸이에 옷 걸다 모르는 새 휙 떨어뜨린다거나, 아니면 사실 옷 주머니에 있는데 잃어버린 줄 알고 혼자 추리, 미스터리, 공포물을 찍는다거나, 주머니에 구멍이 나서 하나만 쏙 빠져나간다든가, 하여튼 무한대의 분실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에어팟에 전화를 해 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케이스를 들여다 보고, 귀를 만져보고, 제대로 있나 안부를 확인하는데, 이것도 4주 차가 되니까 스스로 조금씩 소홀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언젠가 분명히 에어팟을 잃어버릴 것이다. 확실하다. 내가 이걸 잃어버리지 않는 게 말이 안 된다. 언젠가 반드시 이별할 너. 하, 너무 소중하다. 그 이별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내가 너를 악착같이 챙기리라. 귓구멍에 잘 얹혀 있나 두 번 세 번 체크하고, 정신없을 땐 무리하게 널 꺼내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둔 거 케이스에 다시 모셔뒀는지 확인하고. 침대 옆에 빼놓고 그냥 자지 않고. 어차피 넌 떠날 테니까. 네가 내 곁에 있는 동안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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