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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아 Mar 06. 2019

내 머릿속 좀비 참새 26마리

짹!!!!!!!!!! 무섭다구 힝

제 머릿속엔 좀비 참새가 살아요.


참새 A, 참새 B, C, D, E... 제 눈으로 집계되지 않은 참새가 두뇌의 세포 수 만큼 많을 것으로 추정돼요.


참새는 저마다 성향이 달라요. 호전적인 친구, 소심한 친구, 주의가 산만한 친구, 집요한 친구가 있어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주의력결핍장애, 연극성 인격장애, 양극성정동장애를 보이는 친구도 하나씩 있고요. 낙천적인 친구도 있고, 노자적 사상을 지닌 친구도 있으며, 미신을 믿는 친구도 있어요. 공감을 잘하는 친구도 있고, 놀라울 만큼 무심한 친구도 있고요. 호연지기 대인배가 있는가 하면, 돌만 굴러가도 빈정이 상하는 소인배가 있어요. 관종 친구도 있고, 툭하면 잠수를 타는 친구도 있어요.


이 참새들은 매 순간 죽고, 매 순간 다시 살아나요. 죽고 살아나기를 무한히 반복해요.


저는 지금 조금 무서워요. 저 개성 강한 머릿속 좀비 참새 스물 여섯 마리가 요즘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거든요.


다같이 기가 죽어있어요.


- 잠시 제 얘기를 하자면, 저는 좀비 참새가 아니어요. 하기사, 저들이 본인들이 좀비 참새인지 모르는걸 보아서는, 나도 몰라서 그렇지 좀비 참새일 수 있겠다 싶긴 해요. 그런데 좀비가 좀비를 무서워하는 걸 본 적 있어요? 없죠? 저는 쟤들이 조금 많이 무서워요. 그러니 저는 좀비 참새가 아니... 아무쪼록 저는 지금 쟤들이 모르는 땅굴 속에 혼자 숨어 있어요. 그러니 쉿...!


쟤들이 요즘 기가 죽어있는 이유는 이래요.


참새 A가 "짹." 하고 나와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면요, 나머지 참새 스물 다섯 마리가 일제히 목을 꺾으며

"틀렸어!!!!!!! 짹!!!!!!!!!!!!" 해요. 그럼 참새 A는 겁에 질려 무리 속으로 퇴장해요.


그때 참새 B가 나와서 "짹?"하고 자기 의견을 이야기해요. 그러면 또 나머지 참새 스물 다섯 마리가 일제히 다리를 꺾으며 "닥쳐!!!!!!!! 짹!!!!!!!!!!" 해요. 그러면 참새 B는 또 의기소침해져 무리 속으로 퇴장해요.


그때 참새 C가 나와서 "짹@_@"하고 자기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나머지 스물 다섯 마리 참새는 일제히 척추를 120도 접으며 "뭐래!!!!!!!!! 짹!!!!!!!!!!!" 해요.


참새 D부터 참새 Z가 굴하지 않고 한 마리씩 나와서 자기 의견을 "짹!"하고 얘기하면, 나머지 스물 다섯 마리의 참새는 "개소리!!!!!! 짹!!!!!!!!!!" 하면서 말하는 참새에게 돌을 던져요. 종잇장이 되도록 때리고서, 다리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요.


이렇게 돌아가며 집단 폭행을 겪고서부터 참새 A부터 Z까지 스물 여섯 마리는 지금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어요. 서로 눈치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지나치게 고요해요. 이렇게 고요한 적이 없어요.


원래부터 얘들이 서로 사이가 아주 좋았던 건 아니지만,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어요. 가끔 이들은 정말 일사불란했어요. 리더가 생기면 참 잘 따랐어요. 가장 큰 목청으로 "내가 해 봐서 아는데!"하고 외치는 참새가 리더가 되고요. 리더가 못 된 참새들은 불만없이 자기 때를 기다렸어요. 꾀하는 일마다 쾌속으로 진행됐죠.


지금은 리더가 없어요. 조용해요. 적막해요.


그런데 시끄러워요. 들리지 않는데 시끄러워요.


느껴져요. 무력감 아래 끓어 올라차고 있는 불만이. 돌고래의 목소리로 원한을 실어 담아 아우성 치고 있는 게 분명해요. 모두가 똑같이 시끄러워서 리더는 없어요.


저는 하루 스물 네 시간, 주 칠일, 연 삼백 육십 오일 내내 이들을 지켜보고 있어요. 땅굴 속에 앉아서 제가 군데군데 설치해 놓은 감시 카메라 화면을 들여다 봐요. 보는 것보다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을 거란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보이는 것만 보고 있어도 정신이 나갈 것 같거든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은데, 실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어요. 목과, 다리와, 척추가 제멋대로 꺾여 화면을 향한 채 박제된 것 같아요.


땅굴 속에 박제돼 오직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어쩌면 실은 좀비 참새일지도 모르는 저는 지금 바깥이 너무 조용해서 무서워요. 누구도 발언하지 않아요. 모두 기가 죽어있어요.


그런데 머리가 아파요. 엄청난 소음이 있어요. 그런데 들리지 않아요.


이러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지뢰처럼 터질 지 몰라요. 그런데 차라리 터졌으면 좋겠어요. 완벽한 고요가, 완벽한 평형이, 완벽한 소음이 저는 가장 무서워요. 나 혼자 이렇게 멀뚱멀뚱, 내 숨소리만 들리는 것이 저는 가장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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