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탄 공동 여자 화장실과 '그녀'
내가 살던 P고시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이 글의 제목 <고시원의 그녀>의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지역 번화가의 상가 건물 4층에 위치한 우리 고시원은 새 입실객이 끊이지 않았다. 새롭게 드나드는 손님들은 주로 20대 여성이었는데, 거의 인근 대형 병원에 잠시 실습하러 온 간호대생들이었다. 걸어서 5분이면 병원에 갈 수 있는 데다, 3분 거리 안에 지하철역, 시내버스, 광역버스 정류장을 포함해 웬만한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었으니 잠깐 지내다 가기론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한 번 들어오면 2주-3달 정도 머물렀고, 퇴실 후 빈 방이 다시 차는 데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런 간호대생 중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고시원의 공동 여자 화장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이 화장실로 말할 것 같으면, 가로, 세로 양팔을 벌리면 양쪽 벽에 손끝이 닿을 것 같은 정사각형 공간에, 좌측에 변기 두 개, 우측에 샤워부스 3개, 입구에 세면대 1개가 들어차 있는데, 변기 칸막이의 문을 열면 샤워 부스 문을 열 수 없고, 샤워부스 안에서 허리 굽혀 ‘안녕하세요,’ 하면 수도꼭지에 이마를 박을 구조였다. 두 변기 중 좌측 변기 칸의 문이 잘 잠기지 않았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문을 닫아 놓고 앉아 있으면 폐쇄공포가 엄습해서, 어차피 문을 반쯤 열어두고 볼일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숨 막히는 공간이었지만, 나 혼자 쓴다면야 샤워부스도 열어 놓으면 되고, 변기 칸 문도 활짝 열어놓고 쓰면 되니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나는 이 고시원에 홀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세면, 4시 반에 방 청소, 5시에 소등. 새벽에 가끔 어슬렁거리는 아저씨들은 있었지만, 여성 입실객들은 늦어도 새벽 1시면 자러 들어갔다. 즉, 이후 공동화장실은 완전히 내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어느 겨울 밤. 당시의 여느 날처럼 눈이 벌게지도록 아이돌 덕질을 하고서 보니 또 새벽 네시가 되었다. 세 시에 자기로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또 지키지 못한 데에 묵직한 가책을 느끼며, 세면도구를 챙겨 복도를 나섰는데, 이게 웬 일. 늘 컴컴했던 저 대각선 방이 한낮의 백화점처럼 환한 게 아닌가.
‘누구야, 저렇게 새벽에 불 켜놓고 방문 열어놓는 매너 없는 인간은.’
하며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자그만 두루미 같은 여자애가 “아깜짝야” 하며 과연 놀란 두루미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었다. 얼굴에 클렌징 폼 거품이 석고처럼 발렸고, 분홍색 머리띠의 리본이 안테나처럼 솟아 있었다.
나 역시도 준비됐던 황새 눈을 하여, 원시적 견제감, 또래와 마주친 반가움, 그리고 진로가 가로막힌 데서 온 욱신한 불만을 머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를 그녀가 차지하고 있으니 별 수 없이 샤워 부스로 들어가야 했다. 세면도구를 뻘쭘하게 바닥에 내려놓고,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수도꼭지 레버를 돌렸다. 둔탁하게 쏟아지는 차가운 물이 타일 바닥을 치고, 종아리로 튀어 올랐다.